[선명상아카데미템플스테이] 총무원장 진우스님 법문 내용 요약
2024. 8. 24
[선명상 아카데미 템플스테이] 법문 내용 요약
다시 뵈어 대단히 반갑다. 마무리 말씀 한 가지 드린다. 그동안 아카데미에 함께한 수강생분들 대단히 감사하다. 조계종 미래본부가 준비해 오늘 이르기까지 잘 마무리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강의를 통해 제가 말씀 드리고 고자 했던 것은, 단순하다. 명상의 근본 뜻은 무엇인가. 명상은 선(禪)과 다르지 않다. 선이 곧 명상이다. 그런데 잘못 해석하는 분 가운데, 선과 명상이 극명하게 차이가 있는 것 인양 생각한다. 우리 종단 종지는 참선, 간화선이다. 화두를 잡고 수행하는 간화선 입장에서 보면, 다른 여타 방법론적인 선, 명상은 크게 사실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화두 하나 딱 들어 버리면 모든 것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타파가 되고 해결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어도 끊어진 상태, 언어로서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언어도단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진 알음알이도 끊어진다.
문제는 우리는 생각과 감정으로 상대적인 분별, 알음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배운,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추듯이 멈추질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생각이다. 거기에 감정이 붙고, 감정이 윤회하며 자꾸 돌아갑니다. 이를 육도윤회라 한다. 거기에서 괴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계속 재생산된다.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고, 이고득락 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를 극명하게 뚫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선이다. 그 중에서도 간화선이 으뜸이다. 우리 조계종의 핵심 종지이다. 다만 우리 스님들도 어려워하고 있다. 수행으로서 바로 해결하는 근기가 되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런 힘이 없다. 어린 아이에게 어른들이 가진 생각이나 행동을 따라 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러 가지 명상 방법을 통해 사람들을 수행의 길로 근접시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문 시켜서 최고의 수행 정점이라 하는 간화선까지 하면 가장 좋다. 살아가는 이 순간을 좀 더 편안하게 스스로 좀 더 괴로움을 떨칠 수 있는 스킬, 기술을 익히자는 뜻에서 이름을 선명상이라고 붙였다. 선명상에 대한 방법은 앞으로 앞에 있는 여러 스님을 통해서, 그동안 명상을 지도해온 전문가들을 통해 제시될 것이다.
저는 그 붐을 일으키는데 증폭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불교 중흥조 경허스님 이후, 만공스님 만암스님 등 큰 스님이 많았다. 그 분들도 간화선을 대중화 시키려 많은 노력을 했다. 조금 붐이 일어났지만,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보급되지 못했다. 현대인의 정서 사고, 언어에 맞게 풀어가기 위해서 선명상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불교는 이미 경률론을 통해 완벽하게 이론과 논리를 정연하고 완벽하게 정리돼 있다. 역사적으로 시대에 맞게 시대의 고민, 시대의 정신에 맞게 전달이 돼 왔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선 현대 사람들의 사고나 언어 정서에 부합되도록 하는 일은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본다. 젊은이들에게 불교의 완벽한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선명상 보급에 나서게 됐다.
모든 중생은 괴로움이 없어야 한다. 괴로움을 여의는 것이 곧 해탈이고 성불이기 때문이다. 부처는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 보살이다. 괴로움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알고, 그 턱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 아라한 들이라고 한다. 역대 조사 스님들은 화두타파를 통해 괴로움을 완전히 여의었다.
지금 이순간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못마땅한 것이 없고 불안한 것이 없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나 과거 현재 시간 언제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 있으나 시공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한 점이라도 불편함 있거나 괴로움 있거나 슬픔 있거나 하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괴로움 없는 사람이 없다. 육도는 마치 마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진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의 괴로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괴로움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산업혁명이 계속 되더라도 인간의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선사, 조사 스님들은 괴로움이 사라졌다. 깨달음을 얻었다. 열반 해탈했다.
지금 현재 괴로움을 느끼는 중생들은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괴로움을 빨리 사라지게 해야한다. 과학 문명만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복지나 물질적인 것이 충족된다 해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문명은 계속 발달하고 있는 이때, 요즘 사람들은 감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뇌과학 분야를 통해서다. 지금까지 잘 몰랐던 사실들이 나온 것은 소위 뇌가 뇌 신경 세포가 약 860억개에 달한다. 그 중 감정과 감각,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한 처리를 하는 세포가 절반에 달한다. 50-60% 차지한다.
보는 것, 귀로 듣는 소리, 냄새, 미각, 감정 상태, 좋고 싫고 편안하고 괴로움 등 감정을 처리하는 분야가 뇌세포 중에 거의 반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시각적인 부분이 200억개에 달한다. 인간이 지금 보고 들으며, 관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선연 악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 이 것들이 다 나의 뇌에서 세포들의 작용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든 경험에 의해 모든 것을 인지하고 인식한다. 경험을 통해 쌓은 뇌 세포는 과거 경험의 내용들을 저장화 했고, 저장한 내용이 불교적으로 보면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이를 ‘업식’이라 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잘 알고 해결해야 결과도 바꿀 수 있다. 자꾸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힘만 쓰고 있다.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근본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근본은 그대로 두고 그림자만 해결하려 하니 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괴로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일체유심조 만법유식은 지금 물리적인 양자역학, 뇌과학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결국 내가 가진 감정 감각상태를 내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괴로움이라는 나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러분 세상을 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을 능력을 준다면, 그런다고 괴로움이 사라지느냐. 아니다. 극락이 생기면 지옥도 반드시 같이 생긴다. 그것을 감수하는 힘을 가져야 하고 ‘차생고피생 차멸고피멸’ 해야, 그야말로 중도가 된다. 괴로움과 생사가 사라져 해탈이 되어 마음이 평안해 진다.
그래서 감정은 최대한 증폭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방하착, 쉘패스 명상도 좋고, 어떤 경우든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일여하게 만들라. 하루 5분이라도 조금씩이라도 스스로의 마음, 감정을 편안하게 하는 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조용히 걷기도 하고, 좌선하고, 수식관이라고 하는 수행도 하며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항상 편안한 마음을 갖고, 감정의 기복을 없애자. 그런 것을 선명상의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하면 된다. 살아가면서 이야기 하고 말할 때, 말할 때 기분 행동할 때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순간의 나의 기분 상태가 어떤가. 기복이 없어야 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삼업청정이라 한다. 어떤 일을 하던 스스로 감정의 기복이 없어야 한다. 현상에 대해 절대 끌려 다니지 말라. 이것이 핵심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계속 끌려 다닌다. 원하는 것이 성취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감정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나의 현상일 뿐 물거품 그림자 일 뿐인데, 보고 듣고 하는 그곳에 집착해 내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분리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은 육도윤회하고 괴로움과 기분 나쁨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발가락이 골절된 상황을 떠올리면, 굉장히 아프다. 뇌과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발가락이 다친 그 현상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고, 다만 아픔을 느끼는 것은 머리다. 통증을 느끼는 것은 발가락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뇌라는 것이다. 뇌세포는 업식이다. 고통과 괴로움의 인자가 나의 세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나의 뇌, 업식을 바꾸면 내 몸도 고칠 수 있다. 몸에 의해서 괴로운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업식 바꾸려면 삼업을 청정히 해야한다. 행동도 조심하고 말을 곱게 써야 한다. 육바라밀 안에 괴로움을 없애는 행동규범이 다 들어가 있다. 보시와 인욕, 쉘패스 지나간다 지나간다 하고 참아버리면 고통스러워도 참으면 인욕행을 통해 업식을 없애면 다음 과보를 받지 않는다.
과보를 받지 않는 행동 규범이 바로 계(戒)를 지키는 것이다. 계속 실천하고 노력하고, 선명상 하고, 저절로 지혜가 나온다. 지혜로운 행동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나의 업식을 바꿀 수 있다. 나의 뇌 세포를 내가 바꿀 수 있다. 몸을 내 스스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무애하면 자비가 나와 무애자비행이 저절로 나온다.
어쨌든 선명상을 통해서 개개인 스스로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고급 마음의 기술을 잘 습득해 앞으로의 인생을 잘 가꿔 나가시라. 짧은 인생이지만 괴로움을 없애는 깨달음을 얻으면 몸이 사라진다 해도 괴로움 없는 식(識)작용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스님들이 여러 가지 명상 방법을 알려주면 선택해 실천하라. 여러 개 같이 해도 된다. 좋은 인생, 마음을 깨치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모든 사람들이 하게 될 때 인류도 구제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돼 달라.
(사진, 내용정리: 불교신문)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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