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 6강 내용 정리(지금부터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2024. 8. 13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 6강 정리


<주제: 지금부터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첫 강의부터 다섯 번째 강의까지, 마음의 구조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현상계에 대해 설명했다. 불교 유식으로 보면 안이비설신의 육근으로 대상을 보는 것을 육경이라고 한다. 제가 여러분을 보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을 식이라고 하고, 알음알이라고 한다.


육근, 육경, 육식을 합하면 18계가 된다. 18계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18계 안에 시방이라고 하는 시간이 존재하고, 공간이라는 현상계가 존재한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삼세로 나누기도 하고, 구세, 십세로 나누기도 한다. 과거에도 과거 현재미 래가 존재하고, 현재나 미래도 마찬가지라 그것을 구세라고 한다. 현재 찰나, 즉시즉시를 십세 안에 포함 시켰다.


법성게를 보면 구세 십세는 허상이고 상호작용을 한다고 돼 있고 내가 보는 이 현상계, 대상이 소위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한다. 제가 지금 여러분을 보고 있지만, 이미 과거로부터 갖고 있던 습관, 버릇이 지금 작용된다는 의미다. 과거의 것이 습이 돼, 내 DNA 속에 있다가 지금 나온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느낌이 들고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에도 연결된다. 즉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양중, 물고 물리면서 인과가 생긴다.


우리가 “내생이 있다 없다”는 얘기를 한다. 시간 적으로 보면 지금 있으니까 당연히 다음 시간이 있다. 다음 시간에 내가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미지수이다.


과거의 것이 현재에 나타나도록 하는 내 생각이나 마음을 통틀어 업이라고 한다. 업은 현재 나타나는 것인데, 지금 당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물리적으로 보면 부모 유전이고, 부모 유전은 선대 유전이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지금 현재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 덩어리, 업이라고 하는 카르마, 아뢰야식의 원리를 보면,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는 없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업식 덩어리, 감정이든 생각이든, 나의 신체가 됐든 이게 과거에 이어 현재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미래로도 이어진다.


물리적인 물체, 나의 신체는 이합집산 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비교해보면, 유유상종이라고 한다. 같은 성질의 것들이 끼리끼리 모인다. 일체유심조론에서 보면 내가 생각하거나 느낌, 감정을 갖게 되면, 거기에 따라 연결된 어떤 것들이 서로 모이게 돼 있다. 물리적으로 보면, 소위 원자설이라고 한다. 모든 물질은 원자가 모여서 형성돼 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원자 덩어리다. 원자라는 게 우리 생각보다 너무 작다. 작다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현미경으로 겨우 본다.


원자가 운동장만 하다고 하자. 운동장 안에 작은 구슬, 원자핵이고, 원자핵 주변에는 더 작은 전자가 돌아다닌다. 그게 관측하는 즉시 사라진다고 해서 파동이라고 한다. 관측하는 즉시 파동이 입자로 변한다는 게 지금 현상계를 이루고 있다. 태양계에 태양이 있으면 수성, 금성 지구 등을 전자로 보면 된다.


원효스님, 의상스님은 지금 현대 물리학, 양자역학이 밝혀내는 물리적 세계를 그 당시에 기신론, 법성게로 설명했다. 제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 그래 봤자 생로병사하고 성주괴공을 면치 못한다. 원자는 지금도 계속 움직인다. 우리 몸도 지금 원자들이 모여서 형성됐으나, 이조차도 과거, 전생에 지은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물리적으로 유유상종해서 된 것이다.


만법유식이라고 했다. 만법은 시공간을 비롯해 움직이는 현상 자체, 내가 생각하는 의식이나 마음 감정을 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조차도 전부, 오롯이 내가 인식하고 짓는 것이다. 불교를 좀 공부한 분들은 교리를 조금만 이해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현상계는 사실 별것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눈으로 보고 듣고, 육근으로 육경을 대하는 데 있어서 내가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짓는다 함은 내 기분 따라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는 말이다. 내 기분이라는 게 쉬운 말로 기분이라고 했는데, 기분을 크게 나누면 하나는 좋은 것이고 하나는 싫은 것이다. 이를 고락이라고 하고, 싫지도 좋지도 않은 사수이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고락의 감정을 빼버려야 한다.


인간은 감정에 좌우된다. 내가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로 귀결된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도 어쨌거나, 말하는 저나 듣는 여러분이나 나에게 가장 유리하고 가장 기분이 좋다고 결정된 것이다. 내가 듣는 게 싫고 나쁘다 하면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다른 것을 택할 것이다.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저 역시 진짜 기분이 나쁘고 안 좋으면 말을 안 할 수도 있다. 이 순간순간, 찰나찰나가 기분에 좌우된다. 고락 감정에 좌우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삶의 경로는 저마다 다르다. 저는 출가를 선택했다. 제게 출가는 제가 할 수 있는 인생의 범위에서 유리하고, 가장 기쁘지 않겠다고 판단해서 출가한 것이다. 여러분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직업, 삶의 경로를 선택한 것은, 나에게 가장 유리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을 선택한 것이다.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학업을 하든, 어쨌든 그 모든 것은 내가 가장 유리하다고 선택한 부분이다.


과거에 이어 어떤 습관이 작용한 것이고 인과의 업이 작용된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제가 지금까지 마음의 구조에 대해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렸다. 마음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말씀드렸는데, 결국엔 마음도 내가 기분이 좋으냐 싫으냐로 귀결된다. 현상 자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서로 인연에 의해 생기는데, 연기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것도 연기의 일환이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도 연기의 일환이다.


문제는 여러분이나 저나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이다. 기분이 좋고 나쁨을 고락 인과라고 했고, 업이라고 했다. 결국엔 기분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차생고피생이다. 세상 구조가 그렇다. 생겨나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높은데 올라가면 그만큼 내려와야 한다. 밀물이 들어오면 썰물이 돼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감정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다만 언제 기분 좋고 나쁜 게 나타나느냐. 그것을 시절 인연이라고 한다. 때가 되면 기분이 좋을 수 있고, 나쁠 수밖에 없다. 해 뜨는 시간에 뜨고, 지는 시간에 지듯이 우리 마음, 우리 감정도 좋을 때가 되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되고, 옆에서 보면 별일 없는데 혼자서 좋아하기도한다. 감정이 좋을 때가 된 것이다. 누가 봐도 기분 나쁜 일이 생겼으나, 내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을 때도 있다. 인과의 작용이다.


기분 좋은 현상이 일어나면, 기분 나쁘고 싫은 현상이 똑같이 동반된다. 조금 아까 기분 좋았는데 바로 기분 나쁠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인과가 나타난 경우다. 금반지를 주워 정말 좋았는데, 넘어져서 반지를 떨어트려 사라져버렸다. 순간적으로 고락 인과가 나타난 경우다. 한 시간 안에 나타날 수도, 하루 안에 벌어질 수도 있다. 한 달 안에도 마찬가지고 1년 안에 나타날 수도 있다. 젊을 때와 나이 먹을 때까지 시차가 나기도 한다.


능력에 비해 운이 좋은 사람을 볼 때,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고 하기도 한다. 전생에서부터 인과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것들이 겹쳐서 업이 작용하는 것을 양중인과라 하며 중중무진이라고 한다. 양자역학에서 얽힘 현상이라고 한다. 인드라망이라고 하고, 삼라만상이라고 한 게 과학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는 연기 현상이 나타난다. 나 혼자 뭔가를 했다기보다, 우주 전체가 연결해서 도와주거나, 영향을 주고 받는 현상 속에서 내가 현재 존재한다는 것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감정, 고락의 감정은 인과적으로 질량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잘나가는 분들은 과거 업의 인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능력에비해, 혹은 별 이유 없이 잘못돼 괴로움을 당하는 이도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무슨 죄로 전쟁 피해를 입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불교적으로 보면 그에 따른 인과 작용이 얽혀있다고 보면 된다.


고락의 인과작용, 감정을 완전히 제로(zero)화 시켜야 소위 견성이라고 하고 성불이라고 한다. 어떤 현상을 보고 듣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은, 업장을 소멸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기분 나쁜 일이 지금 나타날 수도 있고, 다음 생에 나타날 수도 있다. 양자컴퓨터가 1억만 비트 정도 되면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적으로는 신통이라고 하는데, 육신통 중에 숙명통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통을 가졌다고 해도 내가 기분이 나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러분이 살면서 기분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생긴다. 일단 내가 당면한 일들이나, 과거에 자기 업식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할 때 현재만 보면 더 기분 나쁠 수 있다. 상대가 나에게 사기를 치고, 모함했다면 기분 나쁠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시간, 공간 등 연결된 상황들이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단순히 나에게 몹쓸 짓을 해서 기분 나쁜 것은 둘 간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나, 과거의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조사 스님들은 안이비설신의로 느끼는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기분 나쁜 업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 안에 기분 좋고 나쁜 업식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연기에 의해 상대가 나에게 몹쓸 짓을 했을지언정, 내가 좋고 나쁜 게 없어야 한다. 반야심경에도 그렇고 금강경에서도 현상에 대해 시비하지 말고 마음을 뺏기지 말라고 한다. 즉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를 눈으로 보고 시비하고, 귀로 들으며 시비한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상은 결국 현상일 뿐이다. 파동처럼 흐를 뿐, 현상 자체에는 옳고 그른 게 없다.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고 기분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건 내 업장이다. 내 업장과 내 업식이라고 하는 기분 좋고 나쁜 감정 덩어리를 없애야 기분 나쁜 일도 안 생긴다. 설사 남이 보기에 기분 나쁜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기분 나쁘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기분 나쁘고 좋은 인과의 업을 없애는 것이다. 절에서 참선, 염불, 간경, 독경 등 다양한 수행을 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고락사 삼수작용이라고 하는 감정 덩어리를 내 스스로 제어하는 것이다. 제어할만한 것도 없을 경지까지 가야 한다.


불보살님이 우리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육근을 청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으로 봐도 기분 나쁘지 않고, 귀로 들어도 괴롭고 고통스럽지 않아야 하고,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청정하다고 한다. 기분 나쁜 게 생겨버리면, 상대 말투와 행동 또는 사회를 보는 눈이라든가 내 눈과 귀와 코와 혀, 생각을 못마땅하거나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면 그것은 내 업이고 내 몫이다.


이것을 없애는 방법은 탐진치 삼독심을 없애는 것이다. 삼독심을 없애는 것은 내가 눈으로 보고 듣는 대상에 대해 탐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잔머리 굴려서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유리하고 내 차지가 될까 고민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없앤다는 의미다. 눈으로 보고 듣고 할 때 순간순간 찰나찰나 방하착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인연 현상이다. 거기에 대해 맡겨야지 기분 나쁜 감정을 갖지 마라. 현상적으로,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보면 옳고 그름이 있고 선과 악이 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견성의 차원, 반야의 차원, 지혜의 차원, 보리의 차원 등 깨달음의 차원에서 보자. 시비 고락을 없애야 한다고 하면, 선이 생기면 악이 생긴다. 정의가 생기면 반드시 불의가 생긴다. 내가 극락에 갔다고 하자. 극한의 즐거움의 도량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선악 시비 고락의 분별심을 내는 순간 극락이 갈라진다. 고와 락으로 나눠지는 게 당연하고 그것을 인과, 업이라고 한다.


인간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분별 때문이다. 선과 악도 없고 옳고 그름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이 정의로워지고, 선해지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상이 인과적으로 갈라져 있다. 현상은 연기적으로 흘러간다. 여러분이 갈라놓은 것이다. 진보, 보수, 노사 등 각자 정의라고 한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정의라고 주장하는데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해탈하지 않으면, 내가 고락 윤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 굴레에서 절대 벗어나질 못한다.


다른 사람까지 간섭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잘하려면, 내 업장을 없애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선을 하고 명상을 해야 한다. 스스로 고락이라고 하는 감정덩어리를 어떻게 제로화 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내세도 여기서 해결된다. 삼세양중인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깨치면 내세에도 깨쳐있을 것이다. 우리가 감정 덩어리라고 한 분별, 하나가 생기면 반드시 다른 하나가 생긴다고 했는데, 세상에 독한 사람 100명을 모아놓으면 절반은 선해진다. 착한 사람 100명을 모아놓으면 절반은 나쁜 사람이 된다. 인과의 업이 적용되는 것이다.


분별을 생사라고 한다. 태어나고 죽는다는 의미 외에 좋다 하면 싫다는 게 생기고, 즐겁다 하고 생이 생기면 괴롭다하는 사 또는 멸이 생긴다. 짧게 보면 순간적으로 극락과 지옥이 생기고, 한 시간 안에도 극락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인생 전반을 놓고 봐도 극락과 지옥이 생긴다. 내생에도 전생에도 나타나게 돼 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을 보려면, 지금 네 모습을 보라고 했다. 내생을 보려면 지금 네가 하는 것을 보라고 했다. 틀림없는 말이다. 복을 많이 지으라고 한 것은 어떤 것을 얻을 힘을 만드는 게 아니다. 복이라는 것은 인과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인과를 업이라고 하고 고락 감정을 분별이라고 한다. 감정이 움직이고 돌아가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이는 한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다.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업장소멸하고 분별심을 없애는 게 같은 말이다. 여기서 탈출하면 해탈했다고 한다. 생사고락이 없는 경지를 니르바나 열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여러분이 어디서 어떤 생각, 어떤 행동을 하든, 찰나찰나 일어나는 좋다 싫다라는 감정을 놓아야 한다. 과거의 인과가 서서히 사라지게 되고 몰록 탈출하는 화두 타파라고 한다.


제 말씀을 완전히 체득하게 되면, 감정 분별을 철저히 이해하면 믿음이 생긴다. 대신심이 생기면 해탈하고 말겠다는 대분심이 생겨 의정이 생기고 의단이 생겨 타성일편이 된다. 은산철벽이라고도 한다. 그 때부터는 생사가 사라져 기분 나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지금 당장 그렇게 되면 좋지만, 저나 여러분은 육조 혜능스님의 근기를 갖고 있지 않다. 전생에서부터 부처님같이 수행했어야 한다. 육조 혜능스님은 글자도 몰랐으나 깨쳤다. 더 이상 생사가 없고 분별이 사라지고 인과에서 벗어나 업장이 소멸되며 반야지혜를 얻어 감정 덩어리가 제로가 된다.


여러분과 제가 한 번에 타성일편 하면 좋으나, 근기가 안 되기 때문에 선명상을 하라는 것이다. 하루에 5분 명상이라도 해야 한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내 감정덩어리, 업덩어리, 삼독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내 감정덩어리를 편안하게, 안정되게 해야 한다. 흙탕물도 가만히 두면 불순물이 가라앉아 맑아진다. 일단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분 나쁜 것을 보고 들으면 그 순간 내 업 덩어리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누구 탓을 할 게 아니다. 성인군자라 쉽지 않다고 할 지언정,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일단 욕심을 내고, 내게 유리한 것만 쫓다 보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인과 과보를 생각해 놓고 놓고 놓고 방하착 명상을 해나가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기분 나쁘지 않아야 한다. 내가 평안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갑자기 사고가 나고, 전쟁이 발발하기도 하고, 지진 피해도 있고 묻지마 범죄도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는 우연히, 재수 없어서라고 치부하고 산다. 그러나 세상에는 반드시 그런 결과일 수밖에 없는 인과적 진행 상황이 있다. 희생당하고, 괴로움 당하는 분들에게 죄송한 이야기지만, 윤회 인과의 관점에서는 지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 크게 보고, 찰나찰나 내 감정을 방하착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고통과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게 된다.


제임스 진스라는 물리학자는 “우주를 커다란 물리적 현상이라고 보기보다 거대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대 물리학자 임에도 모든 게 나의 생각이다 라고한 점이 놀랍다. 불교적으로 보면 일체유심조라는 말과 같다.


우주라고 보는 즉시 과거의 우주가 생긴다. 해가 뜨면 해가 지는 게 동시에 생기듯, 낮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밤이 동시에 생긴다. 다만 관측하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리처드 콘 헨리(Richard Conn Henry)라는 물리학자도 유명한데, 그 역시 “우주는 정신적인 것이다. 유일한 현실은 내가 관측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분은 부처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그 즉시 내게 일어나는 감정을 콘트롤 할 수 있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기분 나쁜 감정이 너무 자주 윤회해 나의 정신상태가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정신분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명상을 해야 한다. 불교에선 마음을 닦는다고 했는데 그게 업장소멸이고 선이다. 이것을 쉽게 하는 게 선명상이다. 기본이 되는 것은 내 감정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우선멈춤 5초 명상을 하라고 했고, 5분 명상 무시로 명상을 하라고 말씀드렸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괴롭고 힘든 것도 지나가게 돼 있어 순간순간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지나가리라 명상’을 말씀드렸다. 네 번째는 ‘그림자 명상’이다. 인연 연기에 의해 돌아가니 분별하지 말고, 대상경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일어나는 내 감정 덩어리를 살피라고 했다. 다섯 번째는 방하착 명상을 말씀드렸다. 다 인연 따라 간다. 무책임하다고 여기는 이도 있는데, 내가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인과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에 시시비비할 필요 없다는 의미다.


오늘 소개할 명상은 ‘삼수야 가라’이다. 삼수는 내 감정덩어리이다. 고락사 삼수작용을 의미한다. 감정에 놀아나지 말라는 의미이다. 내 감정을 일으키지 않고, 좋으면 좋은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민감하게 반응하면 분별에 걸리고 윤회에 걸린다. 나머지는 다 맡기면 된다. 인연 연기에 맡기는 것이다. 그 자체가 믿음이다. 부처님 법이기 때문에 믿으라는 것이다.


(사진, 내용 정리: 불교신문)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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