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 4강 내용 정리(내 마음 감정의 뿌리를 알아야 좋은 기분을 가진다)




2024. 7. 16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 4강 정리


<주제: 내 마음 감정의 뿌리를 알아야 좋은 기분을 가진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한 이후 괴로움을 없애려고 출가했고 해결하셨다. 인류 역사상 종교 철학자들이 많지만, 부처님께서 완벽하게 괴로움을 타파했다. 이후 부처님 법을 이은 달마스님부터 육조 혜능스님에 이르기까지 조사 스님들이 마음의 깨달음을 얻었다. 즉 이고득락,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모습을 이전 강의 때 충분히 설명했다. 그럼에도 체득하지 못했다면 좀 더 집중해 들어달라. 이번 선명상 강의를 계기로 일반인,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을 좀 더 편안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육근(六根)으로 감지되는 모든 대상, 존재, 실존이라고 하는 그 대상은 불교에서 보면 현상일 뿐이다. 그 현상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맨날 현상에 끄달려 산다. 이 고리를 끊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괴로움을 없애는 길이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데 보이고 들리는 것에 감정을 싣게 되면, 여기에서 오류를 스스로 만들게 된다. 보통 이것을 분별이라 한다. 그것이 업이 되고 ‘감정놀음’이 된다. 좋은 감정이 생기면 싫은 감정이 반드시 생기고, 이는 오롯이 나의 업(業)이 된다. 그런데 감정의 증폭이 커져버리면 극단적으로 좋아하고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인과가 생긴다. 너무 유쾌하고 너무 밝고 발랄한 소유자 일수록 조심스럽지만 우울증 증세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 존재하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생각) 즉 육근으로 우리는 대상을 인식한다. 눈이 있고 보이는 대상(육경)만 있다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 육식(六識)이 붙으면서 주관적인 인식이 생긴다. 주관적인 인식이 붙으면 그때부터 비교가 생긴다.


내 마음이 편안한지, 편안하지 않은지가 가장 중요하다. 고락이라는 내가 가진 업과 그 분별 감정이 합쳐진 감정덩어리가 돌고 도는 것을 인과라 한다. 내 감정을 제어해 스스로 감정덩어리를 업장소멸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좋고 나쁨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술을 하든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내 자신, 즉 내가 좋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결혼도 자식을 잘 기르려고 하는 것도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다. 선명상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단 하나다. 수온 즉 감정덩어리, 기분이다. 좋고 나쁜 이 기분은 언제나 왔다갔다 윤회한다. 모두 연기하고 일어났다 사라지는데, 현상에 속을수록 나의 업은 자꾸 생긴다. 기분 좋고 나쁨이 계속 들고 일어난다.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조건 지어진 현상을 공이라 하셨듯, 깨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티끌만큼도 기분 나쁘거나 괴롭지 않다. 육근, 육경, 육식이 일체화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좋고 나쁨, 긍정적, 부정적, 선과 악, 옳고 그른 시비, 바름과 삿된 것 등 이러한 구분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함부로 재단하거나 속단하거나, 함부로 규정하면 안 된다. 이런 불편한 마음이 계속 쌓이고 고착화 되면, 잠재의식 즉 아뢰야식에 쌓여 다음에 또 이어지게 된다. 그런 것이 중첩된다고 해서 중중무진이라 했다. 나비효과라는 것도 중중무진의 인연 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보고 듣는 그 현상에 너무 끄달려선 안 된다. 살다보면 생로병사 각종 사건사고 등 별별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쪽저쪽 구별은 하되 감정을 얹어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현상은 계속 변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불교에서 보면, 모든 것들은 항상하지 않고 실체가 없다. 그래서 ‘나’라는 것도 아상인상중생상에 의해서 끄달릴 뿐이지, 제대로 알면 평안한 니르바나에 도달할 수 있다. 그 과정들이 선명상의 과정이다.


결국 괴로움이 남는다. 이 괴로움 없애는 방법을 모두가 알기를 원한 것이 아닌가. 고집멸도 실상을 제대로 알고, 나의 업을 없애 오롯이 불성을 갖는 것만이 중요하다.


좋고 싫은 감정덩어리는 자기 안에 누적된 아뢰야식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이 순간도 결국 계속 윤회하고 반복할 수밖에 없다. 괴롭고 기분 나쁨을 지금 당장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 잘 되고 성공하고 바라는 것들이 성취되면 행복하고 기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 항상 대가가 따른다. 태어났으면 죽어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이만큼 행복하고 기뻤다면 그만큼의 인과는 반드시 생긴다. 해가 뜨면 지고, 썰물이 되면 밀물이 오는 사실과 같다. 좋은 기분이 계속 유지가 되는가. 결국 간단하다. 나의 고락의 감정덩어리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가. 정말 간단하다. 은산철벽을 딱 통과해야 한다.


서양의 철학자 등 지성인들도 의식의 흐름과 현상이 어떻게 경험되어지는 지를 설명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 했다. 나의 인식으로 인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고, 보여지는 인식 속에서 나의 고락을 일으키고 반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윤회다. 내가 만든 나를 이원화 시켜 마치 내가 아니다라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현상과 인식체계의 관계성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해 낸 것을 양자역학이라 하는데, 불교 이론과 유사하다. 눈으로 봤을 때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원자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이동하고 어마어마하게 변한다. 그래서 보는 즉시 변하기 때문에 관측이 안 된다.


내 주관적으로 규정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지 말라. 분명히 오류가 생긴다. 영원히 살 것 같고 한 참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금방 온다. 지금 어릴 때를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도 금방 왔다. 관측하는 즉시 바뀐다. 양자 컴퓨터가 생기면 지금 컴퓨터 보다 몇 백 만 배 성능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이 없어지는가. 이건 별개의 사안이다. 일부 종교나 철학 등에서 현상과 관련해 응용하는 것에만 신경을 기울였을 뿐, 지금 당면한 괴로움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백 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학 발달하고 새로운 문명, 5차, 6차 혁명이 이뤄진다 해도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고(苦)를 없애지 못하면 과연 어떤 것이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고라는 감정에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인류사에 있어서 고통과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이는 부처님 이후 마음을 깨친 조사 스님들 밖에 없다.


우선 멈춤, 무시로 명상에 이어 지나가리라 명상(Shall pass)을 소개했다. 너무 힘든 순간도 얼마 있으면 지나간다. 때로는 그때 왜 못 참았을까 하고 떠올릴 때도 있다. 따라서 감정덩어리를 처리해야 한다. 몸은 없어지더라도 영혼, 영가, 감정덩어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업식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뢰야식이라도도 하는데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든 감정덩어리가 다 붙는다.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시간과 공간을 멈추려면 감정덩어리를 없애야 한다. 선명상을 통해 하나하나 해 나가자.


오늘은 그림자 명상에 대해 알려주려 한다. 해석이 필요한데, 현상은 만법 유식이다. 모든 것은 내 안에서 다 나오고, 내가 나를 본다고 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내 안에 미운 업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고 만법유식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무엇을 봐도 좋고 싫은 것이 없다. 단지 평안할 뿐이다. 결국은 괴로움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본인의 업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 망했다면, ‘망했으면 어때’하고 그 정도로 감내 할 수 있어야 나의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편안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뭘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본인이 설정을 하는 순간, ‘이런 것은 안 돼’ 하며 설정하는 순간 힘들고 괴로워 죽을 것만 같다. 항상 그림자, ‘나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라.


(사진, 내용 정리: 불교신문)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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