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精舍), 가람(伽藍), 사원(寺院), 사찰(寺刹), 절, 절간, 산사(山寺)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는 사찰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佛像)이나 불화(佛畵) 등을 모신 곳이다. 더불어 스님들의 수행처이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아가 수행을 하고 설법을 듣는 곳이다.
이러한 의미의 장소를 여러 단어로 불리는 까닭은 바로 불교가 인도에서 건너오면서 중국을 거쳐 한자로 음역되고 다시 우리나라로 받아들여지면서 단어가 상황에 맞게 변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불리우는 이름만 달라질 뿐 사찰이 갖고 있는 본연의 기능과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찰이 어떤 곳인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나열한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단어 자체에 깃든 사연과 의미가 깊다.
정사(精舍)라는 말은 인도에서 사찰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인도에 있어서 최초의 사찰은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부처님이 녹야원(鹿野院)에서의 최초의 설법 후에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이 부인 위제휘와 함께 왕사성 북쪽의 가란타 장자의 소유인 죽림(竹林)을 희사받아 그곳에 집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 이것이 불교의 역사상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인 것이다.
또한 범어 상가라마(samgharama)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한자로 음역하면서 승가람마(僧伽藍摩), 가람(伽藍)이라 불리우게 되면서 가람이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중원(衆園)이라고 의역되기도 하는데, 이 모두를 총칭하여 정사(精舍)라고 번역한다. 중원이라는 말은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사나 상가라마가 상가(僧伽)의 거주처이지만, 정사는 주로 부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계신 곳을 말하고, 상가라마는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그의 제자들만이 거처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사찰을 인도에서는 정사나 가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원(寺院)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도에서 정사나 가람(상가라마)이라고 불리던 것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사(寺)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자(漢字)의 사(寺)는 공공기관의 뜻이 있어서, 중국에서는 사찰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이전에 관아에 붙여 쓰던 말이었다. 유래를 살펴보면 후한명제(後漢明帝) 연평(永平) 10년(67)에 인도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라는 두 스님이 흰말에다 장경(藏經)을 싣고 후한의 서울인 낙양(洛陽)에 왔을 때, 후한에서는 두 스님이 외국인이므로 관례에 의해 외국인을 위한 외무부 소속 관아(官衙)인 홍려사(鴻廬寺)에 머물도록 했다. 그러나 그 후 두 스님이 계실 마땅한 곳이 없어 그대로 그곳에 머물도록 하면서 홍려사라는 이름을 두 스님이 타고 오신 흰말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있어서 사찰의 효시이다. 그 뒤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승가(僧伽)들의 거처를 사(寺)로 부르게 되었다. 이 사라는 말과 더불어 원(院)이라는 말은 원래 주위에 둘러친 담을 말하는데 이것이 변하여 주원(周垣), 회랑(回廊)이 있는 건물을 의미했으며, 관사의 이름에도 쓰였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에 칙명에 의하여 대자은사(大慈恩寺) 등에 번경원(번經院)을 세웠는데 이것이 불교와 관련된 건물에 원(院)이라는 이름을 붙인 효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찰은 범어로 비하라(vihara)라고 하고 비하라(毘訶羅)라고 음역하며, 수행을 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주처(住處), 유행처(遊行處) 등으로 번역한다. 사찰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다음의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구려의 최초의 사찰인 성문사(省門寺, 또는 肖門寺), 이불란사(伊弗蘭寺)와 더불어 신라에서도 제19대 눌지왕 때에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의 모례의 집에 와 머물면서 몰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 한다. 모례는 원래 국어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털례’의 집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털례의 집은 가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털례’가 사찰로 변한 것이다.
절은 사찰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그 연원에 대해서도 많은 설이 있지만, 위의 털례를 간단하게 부른 것이 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절간은 절과 건물을 뜻하는 한자 간자가 합해져서 불리우는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