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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본사

제18교구 백양사
교구 제18교구
사찰명 백양사
대표번호 061-392-7502
팩스번호 061-392-2081
주소
  • 지번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
  • 도로명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약수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

632년(무왕 33) 여환이 창건하여 백암산백양사라고 하였으며, 1034년(덕종 3)중연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라 개칭하였고,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가 3창하였다. 다시 백양사로 개액한 것은 1574년(선조 7)환양이 중건 하면서 부터이다. 환양이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개칭하고 승려의 법명도 환양이라 하였다.

그 뒤 1786년(정조 10) 환성이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 1) 도암이 중건하였으며, 1917년 송만암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암은 45세 때부터 백양사 주지직을 맡아 30년 가까이 주석하면서 불사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을 개설하고 중앙불교전문학교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백양사는 31본산시대의 본산이었으며, 현재 부속말사 26개소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보전ㆍ명부전ㆍ칠성각ㆍ진영각ㆍ천왕문ㆍ선실ㆍ요사채와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 등의 사물 을 소장하고 있는 범종각이 있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3호인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 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이 조성하여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 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내 오른쪽으로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해학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 16체가 봉안되어 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인 극락보전은 300여년 전에 지은 것으로서 백양사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 선조 때 환양이 세웠다고 전하며, 건평 50㎡에 세워진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 1973년 단청하였으며 1976년 보수하였다. 명부전은 1896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각 주 두마다 공포가 장식되어 있다. 전내에는 흙으로 조성한 시왕과 흙에다 금을 도금한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4호인 사천왕문은 백양사의 정문으로 1917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문의 오른쪽에는 지국천왕과 증장천왕, 왼쪽에는 광목천왕과 다문천왕이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도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를 상징한 팔층탑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가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에서 배출, 주석하였던 휴정ㆍ유정ㆍ모운ㆍ태능ㆍ범해등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 모양의 탑과 비가 있다. 이 중 소요대사부도는 백양사 재흥에 힘쓴 태능의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탑으로, 그 둘에에는 용이 구름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는듯한 조각이 되어 있고, 좌대에는 연잎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석종형으로서 상대ㆍ유곽ㆍ하대 등에 양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기단은 복련으로 덮은 위에 2단의 몰딩을 두어 종신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 부도는 1974년 12월에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백양사의 사내암자로는 약사암과 영천굴, 1351년에 창건한 청류암,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 천진암 등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있어온 운문암 등 많은 암자들이 6ㆍ25 때 불타버렸다. 이 중 운문암은 6ㆍ25 전 까지만 해도 백양사 8개 암자 중 대표암자였으며, 백양사 뒤 계곡을 끼고 3.5Km 위에 위치한다. 고려 때 각진이 창건했다는 운문암은 백양사 수도도량 중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신승 진묵의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진묵이 임진왜란 직전 이 암자에서 차를 달이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날 전체 대중이 차를 달이는 운문암 중을 조사로 모시라는 현몽을 한 뒤 진묵을 조실로 앉혔다. 어느날 진묵은 “내가 올 때까지는 이 불상을 도금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지금도 그 불상은 거뭇한 그늘색을 띤 채 진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백양사 오른쪽 계곡 상부에 있는 국제기는 천신께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서 호남일대에 재난이 있을 때에는 나라의 명을 받아 이곳에서 천제를 올렸다. 그 유래는 조선시대 영조 때 호남지방에 대유행병이 나돌아 호남감사 가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자 영지를 택하여 크게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이곳 바위에데 ‘국제기’를 음각하여 새기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또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단칸의 영천암이 있는 곳이다. 굴 속의 바위큼에서 샘이 솟아나오는데 이를 영천이라 한다. 장마때나 가뭄 때나 항상 일정한 물이 흐르는 이 샘에는 옛날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하루는 어떤 손님이 와서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백양십이경의 하나인 일광정에서는 해마다 사월초파일에 불가의 시련법식이 거행되며, 백양사 뒤의 학바위는 고려 때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천제를 지낸 곳이라 한다. 절 일대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153호로 지정되어 있고 약 3만그루가 밀집하고 있어 춘백양 추내장의 칭호를 얻고 있다.

이밖에도 백암산의 학봉ㆍ상왕봉ㆍ사자봉ㆍ가인봉 등의 절경과 설경 등이 어울려 백양사일대는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