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 제5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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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명 | 법주사 |
대표번호 | 043-543-3615 |
팩스번호 | 043-543-3620 |
홈페이지 | http://www.beopjusa.org |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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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다. 의신이 인도에서 공부를 마친 후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돌아 왔는데, 절을 지을 터를 찾아 다니던 중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우는 것을 보았다. 의신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산세를 보니 아름다운 절경에 비범한 기운이 서려 그 곳에 절을 지었다 한다. 이에 절 이름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젼, 즉 부처님의 가르 침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법주사에는 뛰어난 고승대덕이 주석하면서 여러차례 중창이 거듭되었다. 문종의 다섯 째 왕자였던 도생 승통(고려 교정에서 가장 높은 법계의 지위)이 절의 를 지냈으며, 원종 때는 자정 미수대사가 주석 했는데 왕명으로 각종 경전과 장소 92권을 찬술하기도 했다.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왕이 절에 들렀다가 양산 통도사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 사리탑은 지금 증인전 뒤쪽에 남아있다. 조선 초 세조 때는 신미대사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중기에는 60여동의 전각과 70여개의 암자를 지닌 대찰이 되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부분적으로 중 수를 계속했으나 정유재란을 맞아 또다시 전소되었다. 이후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유정이 팔상전을 중건했고, 벽암 각성이 절을 중창했다. 또한 1939년에 미륵불상을 조성을 시작하여 한 때 중단되었다가 1964년 완공했고 1967년에는 전각을 중수하였다. 1990년 청동미륵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고 그 대좌의 지하에 용화전과 성보전시관을 마련하였다.
법주사에는 국보 제55호 팔상전과 보물 제915호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보물 제916호 원통보전,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 국보 제64호 석련지, 보물 제15호 사천왕석등,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 모물 제848호 신법천문 도병풍, 보물 제1259호 괘물탱, 보물 제1360호 소조삼불좌상, 보물 제1361호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413호 철확, 보물 제1417호 희견보살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