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 제25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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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명 | 봉선사 |
대표번호 | 031-527-5974 |
팩스번호 | 031-527-1958 |
홈페이지 | http://www.bongsunsa.net |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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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하였다.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같은해에 현재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범종을 주조하였다고 한다. 1551년(명종 6)에 이 절은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 찰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이듬해인 1593년에 주지 낭혜가 중창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주지 계민이 중창하였으며, 1749년(영조 25)에는 우점이 중수하였다. 1790년 (정조 14)에는 나라에서 전국사찰을 관할하기 위한 5규정소를 설치할 때 이 절은 함경도 일원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화주 성암과 월성이 중수하였고, 1902년에 도성 안의 원흥사를 수사찰인 대법산으 로 삼았을 때 이 절은 16개의 중법산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경기도의 전 사찰을 관장하였다. 1911년에 사찰령이 반포되었을때는 31본산의 하나가 되었고, 교종대본산으로 지정되어 교학진흥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또 1926년에는 주지 월초가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6ㆍ25사변으로 1951년 3월 6일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뒤 1956년에 화엄이 범종각을 세운 데 이어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운경과 능허가 운하당을 세웠고, 1969년에는 주지 운허가 큰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이 영각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큰법당ㆍ삼성각ㆍ개건당ㆍ방적당ㆍ운하당ㆍ범종각ㆍ청풍루ㆍ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단 것이며, 법당 사방 벽에는 한글 <법화경>과 한문 <법화경>을 양각한 동판에 새겨놓아 이채롭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범종을 비롯하여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으 보운당부도 등이 있다. 그리고 큰법당 앞에는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이 있으며, 1981년에는 운허의 부도탑을 세웠다. 이 밖에도 사찰 안에는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절 옆에 있는 광릉은 사적 제197호이며, 천연기념물 제11호인 크낙새가 주변 숲에 서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