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모든 행복은 다른 이를 생각하는데서 나온다”
입력 2024.09.29 14:58
호수 3840 기자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2024 국제선명상대회 조계사 선명상축제
9월29일, 조계사서 직메 트린리 린포체 초청
‘자비와 지혜’ 주제로 강연과 실참 펼쳐
9월29일 직메 트린리 린포체가 조계사 대웅전에서 '자비와 지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 앞서 부처님께 예를 표하고 있는 직메 트린리 린포체 일행.
한국불교의 선명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2024 불교도 대법회 국제선명상대회’가 9월28일 광화문 일대에서 원만하게 봉행한 가운데 9월29일 서울 조계사에서 해외 선명상지도자가 강연을 이어갔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스님)은 9월29일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2024 국제선명상대회-조계사 선명상축제’를 대웅전에서 티베트 불교의 명상과 철학을 전하고 있는 직메 트린리 린포체(Jigma Thrinley Rinpoche)를 초청해 ‘진정한 깨달음의 기준-자비와 지혜’라는 주제로 강연과 실참을 펼쳤다.
조계사 주지 담화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3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강연에 나선 직메 린포체는 사부대중을 위한 기도와 명상을 한 뒤 “무명이야말로 번뇌의 근원이다. 무명이 다 사라지고 나면 번뇌가 깃든 마음은 다 사라진다”며 “로종의 종은 삼독심을 잘 다스려 좋은 마음에 있도록 하는 것이니 마음을 훈련, 수행해 생각을 잘 다스리고 훈련하자”고 설파했다.
<입보리행론>을 인용해 타인을 살필 것을 강조한 직메 린포체는 “평범한 이는 자신을 염려하고 깨달은 존재는 타인을 생각해 열반에 머문다”며 “모든 행복은 다른 이를 생각하는데서 나오니 진정한 자비심을 일궈 다른 존재를 잘 보살피는 것이 나 자신을 잘 보살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석대중에 ‘레쉐 랑리 탕파’의 여덟가지 마음수행 게송을 나눠준 직메 린포체는 이를 함께 합송하고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에 앞서 입정에 들어 있는 강연자와 스님들.
강연도중 사부대중을 위한 기도를 하는 직메 린포체와 합장하고 있는 동참대중들.
강연을 듣기 위해 조계사 대웅전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들.
■ 직메 트린리 린포체 강연 요지
(통역협조=권선아 공감과자비연구소장)
제가 가부좌를 하고 앉겠다. 가부좌 안 하면 두뇌 회전이 잘 안 된다. 좋은 아침이다. 먼저 풍요로운 불법의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에 오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영광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여러 나라에서 꽃을 피웠는데 태국, 스리랑카, 버마로 간 상좌부 불교가 있고, 중국, 일본, 한국, 티베트, 몽골 같은 나라로 퍼져간 범어 바탕의 불교가 있다.
티베트에서는 처음에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망설였는데, 토착 종교였던 샤머니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서히 불법을 받아들여 삶의 방식으로 채택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불교를 받아들인 마지막 나라가 티베트였다는 것이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한국 스님들의 예방을 받을 때는 그분들이 더 원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저는 이곳에 계신 훌륭하신 대덕 스님들께 절을 올리고 존경을 표한다. 또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정신적인 리더십과 보살핌, 그리고 자애에 힘입어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조계종과 존경하는 승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 국제선명상대회의 서원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길 겸허히 기원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우시기를 바란다. 만일 한국인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우면 세상이 행복하고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경이로운 선물인가? 세상이 곧 당신이고 당신이 곧 세상이다. 감사하다. 이것이 제 법문의 끝이다. (박수) 농담이다.
때때로 우리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가끔은 유머가 필요하다. 유머와 휴머니티(humanity)는 함께 가야 한다. 저에게 있어서 ‘인간(human)’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유머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스승이 법을 설하실 때 유머를 곁들이면 대중들이 웃으면서 입을 벌리는데 그때 거기에 법을 넣어 주신다고 하셨다. 약간의 웃음과 함께 편안해진 다음 법문이 시작된다. 제가 불법승 삼보를 예경하는 마음으로 독송을 하겠다.
그것은 동기를 잘 일구기 위한 것, 보리심을 일구기 위함이다. 귀의를 하는 것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고, 더 안전하고 유용한 곳을 향해 가는 것이다. 보리심은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불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고 왜 하는가이다. 불교는 맹목적인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제대로 사유하고 생각하는 데 바탕을 준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불교는 답과 함께 오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삶을 보면 그것은 왜 고통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명상을 할 때에도 왜 명상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망치가 도구인 것처럼 명상도 도구이기 때문이다. 망치는 뭔가를 만드는 데 쓰이지만 똑같은 망치가 파괴에 쓰일 수도 있다. 연료가 우리를 출발지에서 도착지로 데려다주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똑같은 연료가 불태우고 파괴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진정한 자비와 이타심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든 그 결과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때때로 명상은 세상으로부터, 세상의 소음과 온갖 활동으로부터 물러나는 길일 수도 있다. 우리는 ‘나 방해하지 마’, ‘나 명상하려고 노력 중이야’ ‘나는 명상해야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서로 연기적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 세상과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자비로운 동기가 언제나 작동해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가 짧은 독송을 하는 동안 여러분 나름의 기도나 독송의 방식으로 함께 해 주길 바란다. 합장하고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새기도록 한다. 귀의를 한다는 것의 의미, 보리심을 일구고 다른 사람을 향한 진정한 염려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다. (티베트어로 기도문 독송)
기도 독송에 이어 잠시 앉아서 명상하겠다. 이미 앉아 계신데 제가 앉기 명상을 하자고 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현재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명상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는 것은 시각적 자극을 차단하여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몸은 고요하게 하고, 말은 호흡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르며, 마음은 편안하고 평화롭게 머문다. 그저 마음이 몸에 깃들게 한다. 어딘가로 가려는 것이 아니고 뭔가를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곳에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알아차리는지, 지금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지 개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제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살핀다. 몸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각을 극복하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둘 수 있는지 본다.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니, 걱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거는 끝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지금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친절, 받아들임, 존경, 흥미로움으로 응답한다. 그저 여기에 머문다. 몇 분 동안 고요히 머문다.
저희들이 오늘 함께 나눌 가르침은 마음 수행의 8가지 게송이다. 모두에게 나누어 드렸는데 8게송을 다 할지 모르겠다. 저는 시간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시간을 잘 지켜야 하는데 죄송하다. 이 특정한 가르침은 티베트어로 ‘로종’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가르침이다. 영어로는 ‘마음 훈련’ 혹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훈련’이라고 부를 수 있다. 티베트어로 ‘로종’이라는 용어는 두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로’는 마음, 생각, 또는 태도를 의미하며, ‘종’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종’은 기술을 익히거나 지식을 터득하는 훈련이다.
둘째, ‘종’은 특정한 방식의 존재와 생각에 익숙해지거나 그것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셋째, ‘종은 자비, 또는 보편적인 자비, 보리심과 같은 특정한 정신적 태도를 일구는 것이다.
넷째, ‘종’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심을 정화하거나 깨끗이 하는 것이다.
티베트 사원에 가면 문에 있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삼독심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닭은 과도한 욕망을, 뱀은 증오를, 돼지는 무명을 상징한다. 이 가운데 돼지가 대장이다. 만약 우리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다루고자 한다면, 돼지를 없애야 한다. 바로 이 무명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범어로는 ‘아비드야(avidya)’라고 하며, 이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 인과법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어떤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있다면, 스스로 경고를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 이는 결국 나와 타인에게 미래의 고통을 초래할 텐데...’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쌓는 모든 부정적인 업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실수이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실수는 무명에 의해 유발된 것이다. 따라서 무명은 모든 번뇌의 어머니이다. 무명이 사라지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그래서 ‘종’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로종’은 주로 마음 수행을 의미하며, 특히 이 경우에는 생각의 훈련, 즉 어떻게 생각할지를 훈련하는 것이다. 생각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고요해진다. 이는 주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기초한다. 이 수행의 주요 목적은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재의 습관적인 패턴을 뒤집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자기 집착이 모든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에 나와 있는 것처럼 평범한 이는 자신을 위해 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윤회의 세계에 남는다. 깨달은 존재는 타인을 위해 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열반에 머문다. 그 둘의 차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샨띠데바는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고통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데서 오고, 세상의 모든 행복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데서 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로종의 가르침은 진정한 자비의 마음을 일구는 것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면 자동적으로 우리 자신을 보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스승께서는 로종의 가르침이 태도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고 자비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누고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실천은 삶을 있는 그대로,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로종 실천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며, 그것을 조작하거나 밀어내거나 붙잡으려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의 고통스러운 면과 즐거운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곧 보리심을 깨우는 열쇠가 된다.
로종의 역사적 배경을 보자면 이것은 날란다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계보를 살펴보면, ‘깊은 가르침’은 문수보살, 용수, 등으로 이어지는 공성의 가르침을 의미하며, ‘넓은 가르침’은 미륵보살로부터 아상가, 샨띠데바로 이어지는 보리심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때때로 세 번째 계보, 즉 로종(마음 수행)의 계보도 언급된다. 물론, 탄트라 계보나 마하싯다 계보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현교가 아닌 밀교의 전통이다. 로종의 가르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떤 위대한 스승도 부처님이 설파하지 않은 가르침을 제시할 수 없다. 이 모든 가르침은 부처님의 말씀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제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들어가겠다. 8게송 나누어 드린 것 가지고 있는가? 함께 독송하자. (강연장에서 게쉐 랑리 탕파<1054-1123>의 여덟 가지 마음수행 게송을 나누어 줌)
(합송) 1.모든 존재의 안녕을 위해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생각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보배보다 더 중요한 그들을 항상 소중히 여기며 수행하리라.
여기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보배는 고대 인도의 신비로운 여의주로 무언가를 원하면 뜻하는 대로 다 이루게 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모든 중생들을 소원을 들어주는 여의주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그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다는 의미다. 모든 중생들을 여의주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여의주가 집과 소유물, 힘과 지위를 다 가져다 준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무상한 것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모든 중생들을 여의주보다 훨씬 더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는 깨달음의 성취라는 가장 높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은 삶에서 우선적인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가? 일시적인 행복인가? 장기적인 행복인가? 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리심을 수행할 때 그 대상이 중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귀의를 수행할 때는 불법승 삼보가 공덕의 장이다.
그러므로 중생들보다 더 나은 존재는 없다. 왜냐하면 중생들을 위해 보리심을 수행하는 것 없이는 결코 불과(佛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스승은 언제나 불편한 존재에 더 많이 둘러싸여 있기를 바란다는 서원을 하셨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인욕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본능적인 습관은 그런 사람이나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비를 진정으로 수행하면 그것들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매우 좋은 수행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좋다. 왜냐하면 (이 게송이) 보리심을 수행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삶은 길지 않다. 길어야 100년이다. 그 기간 동안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의 안녕을 염려하고, 덜 이기적이고, 덜 화내는 존재가 된다면 아주 훌륭할 것이고 그것은 곧 행복의 원인을 심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다음 생을 믿든, 정토에 가든, 기독교인이든 불교도이든,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진정한 자비심을 일군다면 그것이 모든 종교의 핵심적인 본질이라고 하셨다.
이런 것들이 모든 종교에 들어 있지만, 불교의 독특한 점은 마음을 힘들게 하는 감정을 없애고 진정한 자비심을 일굴 수 있는 기술과 방법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어떤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이 사람에 의지해서 내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의 깨달음은 바로 지금 버스에 탄 술 취한 사람에 달려 있고, 나의 깨달음은 수많은 파괴를 가져온 자살 폭탄범에 달려 있고, 나의 깨달음은 부패한 정치인에 달려 있다. 그 모든 존재가 다 평등하게 소중하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바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의 원인을 깨닫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의 조건을 만들지 않고,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고통의 조건을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의 목표와 행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그들에게로 더욱 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 있으려면 음식, 옷, 집, 약 등 삶의 모든 것을 다른 존재들로부터 얻는다. 우리는 이 생에 빈 몸으로 왔고 신용카드조차도 없이 왔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의주를 잃는 것은 별일이 아니지만, 한 사람을 잃거나 그냥 뒤에 남겨 두면 깨달음이라는 우리의 가장 높은 서원은 위험에 빠질 것이다. 제가 이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여기서 나눌 때 단지 제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그것을 깊이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태도에 조그만 변화라고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게송이다.
(합송) 2.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내 자신을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로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으로 그들을 최상으로 받들리라.
첫 번째 게송은 중생을 여의주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었는데, 두 번째 게송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을 가장 낮은 사람으로 여기라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낮은 자기 존중감, 자기혐오와 관련이 있는 심리적 문제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를 낮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은 우리를 미워하거나, 무시하거나, 우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 자신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여기거나,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일어나면서 하는 만트라 아닌가? 우리는 “나는? 나는? 나는?”을 반복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나, 나, 나 하면서 산다. 좋은 하루였는가, 아닌가는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줄의 맨 앞에 서고, 파이의 가장 좋은 부분을 먹고, 교통체증에서 나 혼자 잘 빠져나가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감사히 여기고, 내가 얼마나 훌륭한 지와 나의 기여를 알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훌륭한 자질을 사람들은 왜 모르나 생각한다. 나는 사랑받고 싶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이 모든 생각이 나, 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실제로 어떤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나’로 시작되는 문장을 많이 말하는 사람은 심장마비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를 가장 낮게 여긴다는 것은 갑자기 내 마음에 공간이 열리고 비눗방울이 터진다는 것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반응이나 지나친 반응의 습관과 패턴이 아니라 친절과 용서로 응답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볼 때 저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가 아니라 저 사람은 자기가 나보다 낫다고 여기나? 나보다 똑똑하다고 여기나? 라는 마음의 태도를 작동시킨다. 과도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빠져 있는 것을 내려놓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다.
세 번째 게송이다.
(합송) 3. 모든 행동에서 내 마음을 살피고, 나와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단호히 맞서고 그것을 피하리라.
우리는 나를 생각하는 것의 불리함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의 이로움을 보았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도록 가로막는 것은 번뇌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과 마음챙김으로 우리 마음을 살핀다. 마음에 뭔가가 올 때 그것이 어떻게 불편함을 가져오는지 보고, 그에 대한 해독제를 적용해야 한다. 세 가지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하여 세 가지 길이 있다. 집착을 막는 수단은 집착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무엇이 집착인가? 불교에 따르면 집착은 정신적 태도인데 어떤 대상이나 사람,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매달리고 집착한다. 그것이 행복의 원천이라 생각하며 계속 가까이 있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이런 태도의 훈련이 없을 때 우리는 다른 대상이나 사람에 큰 힘을 부여하게 되는데, 그 대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책임질 수 없는 것을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어느 시점에는 그들이 당신을 실망시키거나 당신이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그런 관계는 좋지 않게 흘러간다. 대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주관적인 마음이 문제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웰빙의 느낌이 있고, 사랑과 자비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으면 많은 찬탄과 존경, 우정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큰 압박이 없고 편안함이 있다.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집착을 여의는 또 다른 수행은 내가 마음이 끌리는 대상의 추함을 명상하는 것이다. 몸의 본성이 실제로 그렇게 매력적인 것인지, 우리가 누구인지의 진정한 본성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다. 몸의 경우, 피부를 벗겨내면 피와 고름 등이 있는데 여전히 거기에 마음이 끌리는지를 본다. 화가 일어날 때는 사랑과 연결되도록 한다. 무명과 관련해서는 무명에서 노사까지 12연기에 대해 명상한다. 그리고 미세한 차원에서 모든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기 위해 연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이제 조금 남은 시간 동안 나머지 게송을 함께 읽도록 하겠다.
(합송) 4.부정적인 에너지 깊은 고통에 사로잡힌 나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런 드문 존재를 마치 귀한 보배를 발견한 것처럼 소중히 여기리라.
(합송) 5. 질투나 다른 번뇌의 감정으로 인해 누군가가 나를 헐뜯고 비방하며 부당하게 대할 때, 나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승리를 바치는 수행을 하리라.
(합송) 6. 내가 도움을 주고 크게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며 수행하리라.
(합송) 7. 요컨대, 나는 모든 존재, 나의 어머니들에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모든 이로움과 행복을 바치리라. 은밀히 그들의 모든 해로운 행동과 고통을 내가 기꺼이 대신 받으며 수행하리라.
(합송) 8. 모든 현상을 허망한 것으로 인식하여 이 수행들이 여덟 가지 세속적인 관심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며, 모든 중생들이 괴로운 마음과 업장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집착하지 않고 수행하리라.
이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말씀으로 법문을 맺겠다.
“정신적인 계발에는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쉬워질 것이다. 비현실적인 기대에 빠지지 말라. 정신적 변화는 금방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욕과 단호한 결심을 요구한다. 어쩌면 두 달, 2년이 걸릴 수도 있고 두 겁(劫)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정이 중요하다. 제가 늘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시간이 핵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확실히 말씀드리건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각각 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 모두에게 행복하고 싶은 본능적인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본능이 우리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할 것이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특별한 게송으로 그 말씀을 마무리하셨다.
“허공이 존재하는 한, 중생이 거기에 머무는 한, 나 또한 그곳에 머물리라. 이 세상의 모든 고난을 없애기 위하여.” (박수)
■ 직메 린포체는…
‘평화와 교육 팔모센터’ 설립자
직메 린포체(Tulku Jigma Rinpoche)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지구촌 곳곳에서 티베트 불교의 명상과 철학을 가르쳐 오고 있다. 직메 린포체는 2013년 미국 오레곤 유진에 비영리 단체인 ‘평화와 교육 팔모센터(Palmo Center for Peace and Education)’를 설립해 소장 소임을 맡으며 종교 문화 정치적 성향 등에 상관없이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 중이다. 직메 린포체는 젊고 쉬운 불교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통찰력과 유머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맞는 적절한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도 신경과학, 심리학, 경제학, 의학, 생태학, 명상 전통과 같은 다양한 학문의 교류와 상호 작용 위한 심포지엄 개최하며 불교의 외연을 확장 시키고 있다. 중독, 우울증, 불안,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같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문제를 구체적인 언어로 폭넓게 다루는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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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강아지와 명상을”…봉선사 ‘반려견과 함께하는 선명상 축제’ 개최
[한경비즈니스]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 미앤펫 캠페인, 남양주 봉선사에서 성황리에 개최
[현대불교신문] “봉선사서 반려견과 걷기명상하며 ‘선명상’에 푹 빠졌어요”
[BTN] 봉선사 특별한 명상축제‥종단 최초 ‘반려견과 함께 선명상’
[BBS] 이번엔 '선멍상'...'무자화두' 되새긴 봉선사 선명상 축제
[BBS] [현장박치기] '댕플스테이‧선멍상'...절에 귀여운 놈들이 온다
<중앙승가대학교(경기 김포)>
[BTN] 중앙승가대학교, 툽텐 진파 박사 초청 선명상 특강
<범어사(부산)>
[불교신문] 범어사 찾은 로시 조안 할리팩스 "연민의 실천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
[법보신문] 범어사, 로시 조안 할리팩스 선사 초청 ‘선명상 특강’
[현대불교신문] 범어사, 벽안(碧眼)의 선사 ‘로시 조안 할리팩스’초청 선명상 특강
[BBS] 2024 국제선명상대회 '범어사 선명상축제'..."명상, 연민-자비심 함양하는 방식"
<서고사(전북 전주)>
[새전북신문] '구글 명상가 차드 멩 탄 초청 선명상 콘서트'
[전북도민일보] 구글 명상가 차드 멩 탄 초청 선명상 콘서트
[전라일보] 전주 서고사 ‘차드 멩 탄’ 작가 초청 선명상 콘서트
<월정사(강원)>
[강원도민일보] 팝루스님 "한국사회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는 경향 있어"
[불교신문] 월정사 찾은 팝루 스님 “내 마음에 빨간 신호등 켜지면, 멈춰 서세요”
[BBS] 월정사, 세계적 명상 지도자 팝루스님 초청 특강
<보문고(대전)>
[BBS] 보문고 선명상축제...."뇌를 깨우는 15초의 기적! 명상!"
<홍대선원(서울)>
[BBS] 홍대선원 '선명상 WEEK'...선태극권, 드로잉, 싱잉볼 명상 체험
<쿠무다(부산)>
[현대불교신문] “나는 누구인가” 108배로 마음 비우다
[법보신문] 쿠무다, 부산 송정 해변서 108배·선명상으로 국제선명상대회 축하
[BTN] 전국서 선명상 축제 시작‥부산 쿠무다 108배 경진대회
[BBS] 제1회 국제 쿠무다 선명상 108배 페스티벌 열려
<호국 연무사(충남 논산)>
[불교신문]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훈련병 대상 명상 콘서트 진행
[BTN] 호국연무사 선명상 콘서트 “지금 이 순간, 군 생활이 행복하다”
[BBS] 호국연무사 선명상축제...."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