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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 공모작④_2023 갈등해결 성공사례 수기]<화쟁위원회 부위원장상> 화쟁이 내게 안겨 준 평화
2024-03-18 조회 23

[화쟁 공모작] 화쟁이 내게 안겨 준 평화


조계종 화쟁위원회 2023 갈등해결 성공사례 수기
④화쟁위원회 부위원장상 서 씨

노름빚 지고 집 떠난 아버지
어머니 장례식 찾아와 참회
화쟁 새기며 증오심 풀어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집을 나간 뒤 몇 년 만에 찾아온 아버지를 본 순간 언니는 “엄마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다가 떠났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길 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 때문이야.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언니는 아버지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악을 썼다. 허망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과 원망이 모두 아버지에게로 쏟아졌다. 나 역시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가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빠져 지냈다. 노름으로 돈을 잃은 날이면 어김없이 술에 잔뜩 취해서 어머니와 우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후 큰 노름빚을 지고는 빚쟁이들을 피해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의 어깨 위에는 우리 삼남매의 생계가 무겁게 얹어졌다. 평생 농사만 짓던 어머니는 시장에 나가 채소도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듯 지난한 날들을 억척스럽게 버텨내던 어머니는 결국 병을 얻어 몸져눕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아버지 탓이었다.

어머니는 가슴 속에 꽁꽁 싸매어놓았던, 탁하고 응어리진 감정들을 끝내 풀어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순간에도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아버지가 돌아오면 내치지 말고 잘 보살펴주라는 간곡한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서 차마 그러겠노라고 답하지 못했다.

영정 앞에 선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아버지를 내치지 말라던 어머니의 유언이 떠올라, 빈소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는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를 앉혀 놓고는 “얘들아, 아버지가 너희를 볼 낯이 없다. 비록 너희 엄마는 고생만 하다가 떠나보냈지만, 너희들한테라도 빚을 갚을 기회를 다오”라고 말했다. 언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제 돈도 떨어지고 갈 데도 없어서 그래요? 아니면 이렇게 사는 우리가 불쌍해 보여요? 여기에 아버지 자리는 없으니 당장 나가세요!”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집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와는 달리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공사현장에 나가 돈을 벌어 고스란히 생활비로 내놓았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우리는 가시 돋친 말로 아버지를 공격했다. 아버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가와도 절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과거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갔을 때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아버지를 원망하던 어머니와 나에게 스님은 “상대방을 바꾸려고만 하면 관계는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병이 들게 됩니다. 지금 당장 자신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바꿔야 할 것들을 찾아 바꾸면 마음속의 고통과 원망이 사라질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두셨다.

당시 스님이 하셨던 말씀이 갑자기 떠올라 불심이 깊은 지인에게 의미를 물어보았다. 지인은 스님의 말씀이 바로 불교의 핵심 사상인 화쟁이라고 알려주었다. 다툼을 화해시키고 조화롭게 문제를 다룬다는 뜻을 가진 화쟁은 내 생각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생각도 수용하자는 게 핵심이념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그래, 어머니는 스님의 얘기를 듣고 이미 자신을 들여다본 후 마음을 바꾸고 아버지를 인정하셨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도 아버지를 너무 배타적으로만 대하지 말고 우선 대화를 나눠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생각의 변화는 아버지를 향해 쏟아내던 뾰족한 말들을 거둬들이게 만들었고, 아버지를 일방적인 가해자로만 봐왔던 시선도 조금씩 희석시켜 주었다. 언니에게도 엄마와 내가 느낀 화쟁의 생각들을 전하고, 이젠 아버지에 대한 갈등과 미움을 풀자고 설득했다.

그즈음,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발을 헛디뎌 어깨와 다리를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한동안은 병원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하는 큰 부상이었다. 통증이 심한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의 모습이 짠했다. 그런 아버지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던 나는 언니와 함께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간병했다.

병원에서 함께 지내며 우리 자매는 아버지와 조금씩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서로 말을 섞으면 공격과 변명이 오갈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버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평화로운 소통과 다툼의 시간을 보냈다. 나와 언니는 아버지를 일방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아버지의 얘기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긴 이야기 끝에 나와 언니에게 진심을 담아 지난 일들을 사과하셨다. 술을 마시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당신의 모습을 후회했고, 노름에 빠져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던 과거를 반성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사과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말라고 화부터 냈을 나와 언니였는데, 화쟁을 가슴에 새긴 덕분에 아버지의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을 하셨다. 4주라는 시간 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나자, 모든 게 아버지 탓이라는 생각 또한 사라졌다. 우리는 화쟁을 통해 아버지를 향한 불신을 거두고 신뢰를 형성해 나갈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다음날 곧바로 일을 나가려는 아버지를 언니가 말려 세웠다.

“저도 이제는 일을 다니니까, 이렇게 아플 땐 좀 쉬세요. 아버지가 아프면 하늘나라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언니의 말투와 표정은 무미건조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못난 애비 걱정해줘서 고맙다. 몸도 더 챙기고 너희들 위해서 열심히 일 하마~.”

한때는 지독히도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버지였다. 화쟁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이해하고 인정하도록 도와주었다. 지옥 같았던 마음에 불현듯 찾아온 이 평화는 화쟁이 내게 안겨준 선물이다.


*화쟁위원회가 공모한 수기는 개인적인 갈등 상황이 담겨 있어 익명으로 게재합니다.

-현대불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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