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만해상 수상자 발표
평화부문 김대중 전 15대 대통령
1. 만해대상 심사위원회(공동심사위원장 고은▪이수성)는 2003년도 제7회 만해대상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발표하였습니다.
- 아 래 -
만해대상(평화부문)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만해대상(학술부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만해대상(문학부문) 조정래 (소설가)
만해대상(예술부문) 이애주 (서울대 교수)
2. 평화부문의 김대중 前대통령의 경우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하여 남북한 긴장완화와 남북교류를 통해 한반도 및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습니다.
3. 만해대상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8월 9일 제5회 만해축전 행사장인 백담사에서 열릴 예정이며, 수상자들에게는 순금 만해 메달 및 각 1천만원의 상금이 수여됩니다.
4. 만해대상은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조계종총무원장 법장스님)가 제정한 상으로서 만해스님의 사상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습니다.
5. 제7회 만해대상 수상자 선정이유
평화부문 김대중
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만해대상 심사위원회는 북한 동포에 대한 민간복지지원을 수행하고 있는 유진벨과 소 떼를 몰고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넘어감으로써 남북교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며 북한 각 지역의 남한 기업진출을 가능케 한 현대의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에게 평화상을 준바 있다. 또한 남북화해를 쉬지 않고 강조해 온 종교지도자 강원룡 목사에게도 이 상을 수여한 바 있다. |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단시대 한반도에 오랫동안 조성돼 온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화해의 첫 단계에 진입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같은 사업을 관련 4대국의 서로 다른 이해를 넘은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도록 노력했으며,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UN의 만장일치 지지를 얻어낸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한 것이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적인 의의와 함께 냉천체제 유물을 청산하는데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한반도문제의 세계사적 발전이기도 하다. 본 심사위원회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정착에 헌신함으로써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국제적 미덕의 현장이 되도록 애쓴 김대중씨를 이번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다. | |
학술부문 김윤식
김윤식 교수는 40년에 가까운 지난 세월 내내 강단의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강의는 현재 한국 인문계열의 한 매혹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한국문학 및 인문학 분야 전방위에 걸친 그의 지적 체험들은 인재양성의 현장과 문학생산의 현장을 구별하지 않고 계속된 것이다. 그의 학문적 성과의 축적은 멈출 줄 몰랐으며, 동시에 현장 비평을 통한 문학과 인간에 대한 밀도 있는 성찰을 가능케 하였다. | |
이미 60년대 말 금기의 대상인 한 비극적인 시인의 전 생애를 재현한 방대한 ‘임화연구’와 70년대 초 기존의 개관적 통사를 극복한 ‘현대한국문학사’(공저)를 새로운 문학해석의 시범텍스트로 내놓았다. 그는 ‘염상섭연구’와 같은 중후한 저작들이 있는가하면 월평에 이르기까지 정밀한 작품 분석도 마다한 적이 없다. 최근엔 ‘한일문학의 관련양상신론’ ‘이상문학 텍스트 연구’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 등 학술과 비평의 종합을 한층 더 고양시키고 있다. | |
문학부문 조정래
본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올해부터 만해대상 시문학부문상을 시와 소설을 주요대상으로 삼는 문학상으로 변경, 상의 대상 장르를 확장하기로 하였다. 이는 만해문학이 시 부문만이 아니라 소설분야와 그 밖의 영역에서도 그 서사적 역량을 발휘한 사실을 새삼 기억하는 일과도 부합된다. | |
조정래씨는 60년대 이래 한국사회의 여러 종류의 인간상을 형상화해온 진지한 작가이다. 특히 그는 80년대 사회 환경 가운데서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완간함으로써 더 이상 갇혀있을 수 없는 해방공간과 동족상잔시기를 살았던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또한 국내외의 여러 현장을 답사함으로써 식민지시대 한국사회가 어떤 것인가, 식민지시대의 한국 민중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를 완성한 대하소설 ‘아리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장강으로 흐르게 만든 ‘한강’을 완성했다. 이로써 조씨는 현대한국문학사상 특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작가가 되었다. | |
예술부문 이애주
이애주 교수는 70년대 이래 민주ㆍ민중의 보편적 염원을 그의 전공인 무용예술에 담아낸 실천적인 예술가이다. 그의 춤은 봉건시대 남존여비의 ‘기생춤’이나 생활과 현실을 떠난 탐미주의 춤이 아니다. 저 6월 항쟁 당시 이교수는 한민족 특유의 체질정서인 한과 흥이 함께 진행되는 춤의 역동적인 기량을 보여주었다. | |
그는 한영숙 춤의 후계자인 동시에 이애주 춤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통춤 계승이나 상고시대 이래 천ㆍ지ㆍ인 합일의 풍류에 대한 그의 각성은 독자적 경지를 터득한 것이다. 대학 강단에서의 후진 양성은 자연스럽게 한국 무형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호응을 이끌어 내게 하였다. 그래서 이애주는 이애주의 제자들과 함께 현대 한국의 민족 춤이 어디에 와있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요컨대 이애주 예술이 지향하는 기(氣)예술의 도장(道場)에 한국무용의 한 전형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
서기 2003년 3월 3일
만해대상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