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예하 수행법문집 출간
도림 법전 종정예하, 수행법문집 출간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대한불교조계종 제11대 종정 ․ 해인총림 방장 도림법전 스님 법문집-
종단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조계종 출판사’에서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라는 제목의 도림법전 종정예하의 수행법문집을 출간하였습니다. 현직에 계신 종정예하의 책이 종단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큰 의미는 모든 종도와 국민들이 종정예하의 수행과 법문을 책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계승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따라서 종정은 모든 종도들의 종교적인 귀의처이자 수행의 전범이 되어야 할 분입니다. 또한 국민들에게도 마음의 안식과 정신적인 귀의처로서의 존경의 대상입니다. 이번 종정예하의 수행법문집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종정예하의 생사를 초월한 수행과 진리의 평화에 이르는 모습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진리를 향한 원력과 정진에 큰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도림 법전 스님 약력
1925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출생하여, 1942년 영광 불갑사에서 설호 스님을 계사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셨다. 1949년 봉암사결사에 동참하여 출가의 전기를 맞았고, 1951년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을 은법사로 모시고 정진하셨다.
이후 뜻한 바가 있어 묘적암으로 옮겨 홀로 정진하던 중 문득 한 경계를 접한 뒤, 파계사 성전암에 계시던 성철 스님을 찾아 인가를 받으셨다.
그 뒤로 성전암, 태백산 토굴, 사자암, 홍제암, 김용사 금선대 등의 제방선원에서 참선정진하셨다.
1969년 김천 수도암으로 옮겨 15년 간 주석하시며 선원을 복원하고 수많은 납자를 제접하셨다.
1985년부터 해인총림의 수좌로 머물면서 해인사 주지를 거쳐 현재 해인총림 방장, 성철스님문도회 회주이시며, 2002년 대한불교조계종 11대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현재 해인사 퇴설당에 머물고 계시다.
책의 구성
한 생을 참선수행으로 일관하신 선승 도림법전 스님의 수행기와 90여 편에 달하는 법문으로 구성되었다.
책의 내용
1> 수행기
출가
1925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비교적 평범했던 어린시절을 보낸 스님은 ‘속가에 놔두면 단명할 팔자’라는 말을 듣고 부모님이 출가를 결정한다. 14살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철저하고 완벽한 묵담 스님 밑에서의 고된 행자 시절은 스님에게 훗날 큰 정신적 힘을 축적할 수 있는 시기였으며, 칠 년에 걸친 강원시절은 만암 스님 곁에서 경전공부와 합리적인 일처리 습관을 익혔던 시기가 된다.
행자 시절부터 염불하고 경전을 배우는 것보다 선방이나 선지식에 더 마음이 끌렸던 스님은, 우연한 기회에 영광 불갑사에 들렀다 그곳에서 학식이 풍부한 설호 스님을 계사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여 본격적인 출가의 길로 들어선다.
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봉암사 시절
‘무엇에 한 생을 걸어야 하는가’, ‘출가의 길에서 수행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격적인 고뇌를 지니며 끝없이 만행중이던 스님은 출가한지 십 년 만에 ‘이 생에 그 스승을 만나 참으로 다행이었다’고 회고할 큰 스승 성철 스님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스님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해인사 총림 대신 봉암사에 머무르게 된다. 성철 스님의 나이 서른일곱, 스님의 나이 스물넷이던 1949년 봄, 두 수행자는 처음 얼굴을 맞대었고 그 후 평생을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묶여 살게 된다.
그리고 한국불교사의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봉암사 결사.
성철 스님을 비롯한 청담, 자운 스님 등이 주동하여 왜색불교의 영향으로 계율이 파괴되고 선이 몰락한 상황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되었던 봉암사 결사는 비록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으나 뒷날 종단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큰 계기가 된다.
당시 스님을 비롯 결사에 참여한 수좌들이 제정하고 실천에 옮긴 ‘공주규약’은 봉암사의 까다로운 규칙과 수행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첫째, 삼엄한 부처님의 규율과 숭고한 조사의 유훈을 부지런히 닦고 힘써 실행하여 구경(究竟)의 큰 결과를 원만히 빨리 이룰 것을 기약한다.
둘째, 어떠한 사상과 제도를 막론하고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외에 각자의 사견은 절대 배척한다.
셋째,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은 자주자치(自主自治)의 표지 아래에서 물 긷고, 땔나무 하고, 밭에서 씨뿌리며 또 탁발하는 등 어떠한 어려운 일도 사양하지 않는다.
넷째, 소작인의 세조와 신도들의 특별한 보시에 의한 생활은 단연코 청산한다.
다섯째, 방안에서는 늘 면벽 좌선하고 잡담하지 않는다.
스님과 봉암사 수좌들은 이 규약을 철저히 지켰으며 화두일념이 되지 않으면 배겨날 재간이 없었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은 오히려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느낀다.
봉암사에서 보낸 한 해 남짓의 시간들은 스님에게 출가자로서 커다란 전기를 맞았던 시절이었고성철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수행자로서 가야할 길을 분명히 느꼈던 ‘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스님은 회고한다.
목숨을 건 수행
한국전쟁으로 봉암사에서 나온 대중들은 각기 흩어졌고, 스님은 수복이 되자 성철 스님이 계신 통영 안정사에서, 천제굴을 지어 옮겨 살 때까지 성철 스님을 시봉하며 수행에 정진한다.
이치에 밝고 민첩하며 성실한 스님은 성철 스님의 애정과 큰 믿음을 받았으며, ‘신도들에게 돈을 받는 것은 날아오는 화살을 받는 것’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은 현재까지도 수행자의 신념과 깊은 철학으로 남아있다.
스님은 성철 스님으로부터 ‘도림’이란 법호를 받고, 스승을 파계사 성전암 모셔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본격적인 수행의 길을 떠난다.
‘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 생을 끝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한 묘적암에서의 수행.
‘자성을 못 깨치고 죽으면 지옥이다. 그런 생각에 혼자 앉아 통곡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가슴이 뻐개질 것 같은 울음이었다. 수좌에게 공부의 진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다.’
스님의 목숨을 건 생생한 참선공부는 바로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이자 구도자로서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지, 결과가 시원한 꼴이 안 나면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 죽을 사람이니 얼굴을 씻고 말고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발도 안 씻고 방안 소지도 안하고, 방은 냉기만 가시게 하는 정도로 불은 조금만 때었습니다. 더우면 게으른 생각을 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담, 일타, 서암 스님과 함께 수행한 이야기, 성전암, 태백산 토굴, 사자암, 홍제암, 김용사 금선대 등 제방선원을 오가며 참선정진한 이야기 등은 살아있는 당시 수행풍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념, 무위의 평상심으로
그 후 스님은 1969년 김천 수도암에서 15년간 주석하시며 폐사 직전인 선원을 복원하시고 수많은 제자를 키우셨다.
해인사 주지 소임을 보면서도 하루에 한 차례는 반드시 선방을 찾아 수좌들과 참선 정진하시고, 용맹정진 기간에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은 채 열여덟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삼매에 들어 수좌들의 사기를 돋우는 등, 수행기에 드러난 스님의 모습은 불교적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전달한다.
또한 스님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늘 수행자들에게 독한 마음으로 공부할 것을 당부하곤 했다.
“공부는 분심이 있어야 한다. 산을 뽑아버릴 듯한 분심을 일으켜야 한다.”
“수행자는 순수해야 한다. 수만 갈래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듯 순수 하나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순수는 곧 지혜를 낳으며 무념, 무위의 평상심을 낳는다.”
2> 법문
이 책에 실린 법문은 1996년부터 2003년 여름까지 하안거와 동안거 기간 중에 설법하신 법문이며 그밖에 법문들은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일관되게 게송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스님의 법문은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특히 게송으로 표현되는 법문은 언어를 넘어서는 신비한 힘을 전달한다.
스님은 한시(漢詩)를 무척 좋아한다. “참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시를 했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로 많이 노래하고 또 수 십편의 시로 공책에 남겨두기도 했다. 스님은 한산(寒山)의 ‘시를 깨달은 자만이 토해낼 수 있는 완벽한 노래’라고 평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아직도 스님의 법문에는 한시가 많이 읊어진다.
한 사람은 남섬부주를 향해
달 아래서 거문고를 타고
한 사람은 북구로주에 있으면서
햇빛 속에서 칼춤을 춘다
문득 한 방에서 서로 만나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니
상서로운 빛은 푸른하늘 밖을 바로 뚫으며
자주빛 구름은 온 세계를 두루 덮나니라
또한 옛 선사들의 여러 유형의 선문답을 들려주며 재해석해내는 스님의 법문은 선문답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옛 선지식인들의 이야기가 기특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점검해 보면 물을 건널 줄만 알았지, 물이 흐르는 줄은 모르는 격입니다.
그리고 시방세계가 온통 그의 몸이라고 하였는데 백척장대를 도대체 어디에다 꽂겠다는 것입니까? 누가 그 자리를 찾아내겠습니까? 찾아내기만 한다면 당장에 모든 걸 던져버리고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앉겠지만, 만일 찾지 못한다면 짊어지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백척간두수부도오
무권운수일고고로다
남북유인귀거래하니
예낭주중산수호로다
백 척 장대 끝에 누군들 이르지 못하랴.
안개와 구름이 걷히니 햇빛이 밝구나.
남북으로 오가는 이 집으로 돌아오니,
예주 땅과 낭주 땅은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이러한 법문을 통해 불교의 진수를 경험하는 것은 물론, 옛선사들의 법거량을 보면서 활발발한 선종의 정신사를 엿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맛이다.
산은 본래 산이라는 모습을 말한 바 없고
물은 본래 물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산이 언제 스스로 산이라고 말했습니까?
물이 언제 스스로 물이라고 말했습니까?
다만 미혹한 중생이 산과 물을 구별짓고
부처와 중생을 차별짓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산승이 참선을 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곧 산이었고
물을 보면 곧 물이었습니다.
그 후 스승을 만나 참선법을 깨치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정진하여 안목이 완전히 열리고 난 지금은
그전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습니다.
시회대중들이여!
이를 명확히 알아차리는 납자가 있다면
이 산승이 그에게 엎드려 절을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입니까?
서로 다른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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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신국판
색도 : 2도 인쇄
면수 : 676면
가격 : 20,000원 문의 : 조계종 출판사 02-733-6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