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학원 이사장 正大스님 열반
동국학원 이사장 正大스님 열반
18일 새벽, 22일 용주사서 영결식 봉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국학원 이사장인 月庵堂 正大 大禪師가 18일 새벽5시 안양 삼성산 삼막사 월암당에서 세납 67세, 법납 42세로 입적했습니다. 스님의 법구는 입적 직후 스님의 출가본사인 수원 용주사로 이운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22일 오전 10시 용주사에서 동국학원장으로 봉행됩니다.
정대스님은 입적에 앞서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星夢中人(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며 임종게를 남겼습니다.
1937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962년 전북 완주 위봉사에서 당대최고 선지식인 전강(田岡)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습니다. 62년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67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습니다. 스님은 도봉산 망월사 선원을 비롯해 수덕사, 용주사 중앙선원 등에서 수행정진했습니다.
스님은 은사인 전강스님으로부터 ‘板齒生毛(이빨에서 털이 난 도리가 무엇인가’를 화두로 받고, 그날부터 자신의 전신을 견성(見性)의 열정으로 채워 정진(精進)에만 몰두했습니다. 3년동안 ‘판치생모(板齒生毛)’의 화두를 놓고 용맹정진한 스님은 불조(佛祖)의 진면목을 참구한 끝에 ‘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고, 마음 밖에 부처도 중생도 없음’을 자증(自證)하고 견성(見性)을 이루었습니다.
이사(理事)를 두루 겸비한 스님은 종단 중흥과 포교에도 남다른 원력을 갖고,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 총무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중앙종회 부의장, 중앙종회 의장 , 용주사 주지 등을 거치면서 종단 중흥과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특히, 스님은 지난 99년부터 11월 20일 종도(宗徒)의 간절한 원력을 받아들여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여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종단 안정화와 중흥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2003년 2월까지 3년여간 총무원장에 봉직하며 스님은 종단의 숙원 과제로 남아있던 중앙승가대 이전불사를 완료했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 등 종단 중흥의 초석을 튼튼히 다졌다. 지난해에는 유산과 사재를 출연하여 은정장학재단을 설립,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여건속에서 학업에 전념하는 인재들을 지원하는데 힘썼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열반직전까지는 조계종 종립 동국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며, 교육과 인재양성에 매진했습니다.
= 臨終偈 =
來不入死關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去不出死關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天地是夢國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但惺夢中人 (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 행장 =
1937년 3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남. 속명은 병식(炳植), 법명은 正大, 법호는 月庵.
1962년 田岡스님을 은사로 전북 완주군 위봉사로 출가
1962년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64년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을 비롯해 도봉산 망월사선원, 수덕사 선원 등에서 용맹 정진
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69년 신륵사 주지로 취임 14년간 재임하면서 도량을 정비하고 가람의 면모를 일신함
1973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으로 중앙 종무행정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재정국장, 규정국장 등을 역임
1974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으로 취임하여 87년까지 사회부장 두 차례, 재무부장
네 차례, 총무부장 두 차례 등 종단의 주요 부장을 역임하며 재정관리와 종무
행정의 기틀을 다졌다.
1975년 제4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으로 피선되어 중앙종회 활동을 하며, 5대, 7대, 8대,
9대, 10대, 11대, 12대 중앙종회까지 종회의원 역임. 8대 종회 부의장, 9대 종회
의장 역임
1977년 혜성스님, 박완일 거사와 함께 한일불교문화교류회를 결성, 초대 상임이사로 취임.
1981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제3차 세계불교승가대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가.
1983년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 주지로 취임. 이후 94년까지 12년 재임동안 가람의
면모를 일신했다. 특히 60년대 후반 개원했다 문을 닫은 중앙선원을 다시 개원해
선풍을 진작시킴.
1984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제14차 세계불교도우의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석,
1984년 일본서 열린 제5회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석
1989년 문화재위원으로 위촉 95년까지 활동.
1989년 불교방송 재단이사로 취임, 방송국 개국을 주도함
1991년 동국학원 이사로 취임 현재까지 활동
1999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2003년 1월 15일 총무원장 사퇴(발표)
2003년 1월 24일 동국학원 이사장으로 취임(-5년 임기시작, 現)
※ 정대스님 영결법어 전문입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한 삶이었으니
올 때는 흰구름과 더불어 오고 갈 때는 밝은 달을 따라갔습니다.
낮에는 영산회상을 열었고, 밤에는 좌복 위에 앉았습니다.
교화의 인연은 사방에 두루 미쳤고,
이理와 사事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었습니다.
법신이 만물에 응하는 것은 물 가운데 달과 같고,
환신幻身이 인연을 따라 멸하는 것은 허공 속의 꽃과 같습니다.
용주사 계곡물 모두 비워도 서해바다에 다시 가득차듯
손을 털고 발걸음 옮겨도 언제나 대천세계大千世界 안의 일일 뿐입니다.
종사宗師의 안목은 사부대중의 지남指南이요
종단사宗團事에는 시처時處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안광眼光이 낙지落地하니 천지天地는 실색失色 하였습니다.
이제 냉추추지거冷湫湫地去, 차가운 가을 물 처럼.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한 생각이 영원히 변함없듯이.
한회고목거寒灰枯木去, 불 꺼진 재와 말라죽은 고목처럼.
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 오래된 사당의 쓰지 않는 향로처럼.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 그리고 때묻지 않는 한 폭의 흰 명주처럼.
휴거休去, 쉬고
헐거歇去, 또 쉬십시오.
만연소진불류종 萬緣掃盡不留蹤하고
일실료료절이동 一室蓼廖絶異同이라.
종차진진소산거從此塵塵消散去하니
육창명월여청풍 六窓明月與淸風이라.
모든 인연 다 씻어 버리니 자취가 남음이 없고
한 방안이 고요하니 다르고 같음이 끊어지네.
이로부터 모든 망상 흔적이 없으니
육근문이 확 트여 청풍명월이 걸림없네.
2547(2003). 11. 22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