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종단소식

주요소식

전체1,808 목록
번호 제목 등록일 조회
288
老天堂 月下大宗師 圓寂
老天堂 月下大宗師 圓寂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이신 老天堂 월하대종사께서 12월 4(목)일 오전 9시 15분경 방장실인 正便殿에서 圓寂에 드셨습니다. 세수 89세, 법납 71세. 속명 윤희중(尹喜重). 1915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신 스님께서는 1933년 7월 20일 18歲에 강원도 유점사에서 성환 화상을 계사로 득도 하신후 1940년 4월 8일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계한 뒤 오대산 방한암스님 회상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신 이래 50여 안거를 성취하셨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전계화상, 중앙종회의원, 통도사 주지(1956), 조계종 총무부장, 감찰원장(1958), 중앙종회의장(1960), 동국학원 이사장(1975), 조계종 원로의원 및 제16대 총무원장(1979), 제9대 종정(1994) 등 종단의 주요 소임을 두루 역임하시고 현재까지 통도사 방장으로 주석하고 계셨습니다. 불보종찰 통도사를 중창하시고 종단정화 운동의 주역으로서 대한불교조계종 탄생의 큰 공헌을 하셨으며, 선풍진작과 후학양성을 위해 정진하셨습니다. 수법제자가 60여명이며, 손상좌 등 200여명이 있습니다. 노천당 월하대종사의 영결식 및 다비식은 종단규정에 의거 12월 10(수)일 오전 10시경 통도사에서 종단장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연락처 : 055-382-7182 통도사 < 臨 終 偈 > 一物脫根塵 (일물탈근진) 頭頭顯法身 (두두현법신) 莫論去與住 (막논거여주) 處處盡吾家 (처처진오가)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가고 머뭄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 행장(行狀) > 老天 月下 大宗師는 1915年 4月 25日 충남 부여군 군수리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老天은 法號이고 法名이 月下다. 俗名은 喜重. 어릴 때부터 智慧와 慈悲가 몸에 익기 시작하여 일찍부터 出格大丈夫로서의 資質을 보였다. 마침내 1933년 7월 20일 금강산 유점사로 出家하여 차성환 화상을 계사로 첫 沙彌戒를 받고 운수의 삶을 시작하였다. 부모 허락을 받지 않고 出家 得度하였다. 그리고 부친과 형님이 세 번이나 절에 찾아왔으나 스님의 意志와 信心이 堅固하여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였다. 1940년 통도사에서 比丘戒를 받고 당대의 고승 九河大禪師를 만나 그의 首弟子가 되었다. 대종사의 수행방법은 捨敎入禪의 절차를 밟지 않고 먼저 선을 통해 頓悟의 自內證으로 出身活路를 열었다. 대종사는 1940년 오대산 방한암선사 회중(會中)에서 몇차례의 安居를 盛滿한 후 1944년 철원 심원사에서 大敎科를 修了하였다. 또 대종사는 젊은 시절 천성산 내원사에서 치열한 勇猛精進을 통해 諸佛의 本源과 一切菩薩들이 修證한 本覺眞性을 깨닫고 法界의 自由人이 되었다. 대종사는 단 한번도 求道者의 길에서 어긋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어려운 懸案이 있을 때마다 理事圓融으로 앞장서서 解決했다. 1954년 효봉 청담 인곡 경산스님등과 함께 寺刹淨化收拾對策委員會에 參加해 전국사찰이 求道道場으로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불교정화운동을 전개하여 오늘의 청정비구승단이 있게 하였다. 이후 대종사는 宗團의 主要職責을 맡으면서 종단이 어려울 때마다 法燈의 역할을 自任했고 慧燈의 脈을 잇는데 寄與했다. 1955년 처음으로 曹溪宗 中央宗會議員에 被選되었고 56년에는 通度寺 住持를 歷任했으며 58년에는 曹溪宗 監察院長이 되었다. 또 58년부터 80년까지 통도사 金剛戒壇 傳戒大和尙으로 僧尼를 排出해내며 宗團의 宗匠을 키워내는데 힘을 보탰다. 1960년도엔 曹溪宗 中央宗會議長을 歷任하였고 75년도엔 東國大學校 財團理事長을 맡아 宗立學校로서의 位相을 구축하는 일에 힘썼다. 1978년 曹溪宗 元老議員으로 選任됐으며 그 다음해인 79년도엔 曹溪宗 總務院長에 推戴되었으며 조계사와 개운사로 나누어진 宗團紛糾를 오직 스님의 初志一貫된 意志로 收拾하였고 이로 인해 宗團의 正統性과 法統이 確立되었다. 10.27法難이 자행됐던 80년도엔 宗正職務代行을 맡아 흩뜨러진 佛心을 추스르는데 專念했다. 1984년 영축총림으로 지정된 통도사의 初代 方丈으로 자리한 월하대종사는 정변전에 住錫하며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訪問者들을 맞았다. 대종사가 늘 보여주었던 수행자의 모습은 늘 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이라는 百丈淸規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손수 자신의 방청소와 빨래는 자신이 하였으며 새벽 3시 반 예불에서부터 대중과 더불어 공양을 하였고 경내청소등 運力에도 빠지지 않는등 自悟自證하는 규범을 보였다. 이러한 대종사를 가리켜 대중들은 ‘百丈의 淸規와 趙州의 수행가풍을 실천한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항상 근엄하면서 쓸모없는 權威를 버리고 노유와 어울리는 親和力을 가진 분이 月下 대종사이다. 오늘날 佛之宗家인 통도사의 가풍은 구하, 경봉, 벽안스님에 의해 이어져 다시 스님이 이를 傳受받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스님이야말로 近代 通度寺의 歷史이고 산증인이다. 다시말해 대종사는 下心의 慈愛가 몸에 밴 분이다. 대종사는 法을 구하려고 오는 雲水에게는 格外의 禪旨를 보였고 모든 佛子들에게는 常不輕菩薩의 下心과 慈愛를 베풀어 자신들의 本分을 깨닫게 하였다. 이렇듯 대종사의 자상함은 비록 부드러울망정 理事를 達觀하고 隨處作主(어디에 처하든 주인공의 모습을 짓는 것)의 광활한 德目을 確保하는데 障碍가 되지는 않았다. 이같은 대종사의 家風은 상당법문 偈頌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口裡無嗔吐妙香 面上無嗔供養具 心裡無嗔是珍寶 無染無垢是眞常 입 속에 성내고 어리석음이 없으면 향내가 나고 얼굴에 번뇌가 없으면 그 자체가 중생을 위한 공양이다. 마음 속에 삼독이 소멸되면 그대로 참된 부처요 어느 곳에 있어도 물들고 때묻지 않는 그곳이 극락일세. 대종사의 얼굴에는 煩惱의 어둠이 숨어있지 않았다. 늘 시골 할아버지같은 지극한 慈悲心만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感動을 던져준다. 통도사가 오늘날의 堂宇를 건립하여 偉容을 자랑하고 있는 것도 대종사의 도움 덕분이 컸다. 현재의 박물관과 설법전을 지을 때 대종사는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내놓았다. 대종사가 법문다니며 한푼 두푼 모아놓은 것과 신도들이 약값하라며 준 돈을 모두 佛事金에 내놓았던 것이다. 1992년도엔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建立基金으로 아무도 모르게 1억 5천만원을 布施했다. 上佐들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言論에 알렸다가 오히려 호된 꾸중을 들었다는 逸話는 대종사의 氣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대종사는 마지막 入寂하실 때까지 자신의 茶毘式 費用까지 다 마련해 놓으셨다. 寺中 淨財의 惠澤을 안받도록 事前에 다 措置하셨으니 平素의 勤儉節約이 이런 기품을 만드신 것이다. 대종사의 이런 기품은 그의 悟道頌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난다. 本明解月潛水中 無生滅處見有無 無心去來西童用 無一影處顯示行 본래 神靈스런 달빛이 물 속에 담겨있다. 生死 없는 곳에 유무를 보아라. 마음을 비우고 오고 감을 자유롭게 하면 정토의 마음을 쓸 것이다. 그림자 없는 곳에서도 밝은 달은 항상 떠있다. 대종사가 밝힌 神靈스런 달은 自性을 상징한다. 자성 자체에 生滅이 없지만 항상 有無는 되풀이 되고 있음을 强調한다. ㅁ 불교신문으로 보는 월하스님 ㅁ 월하스님 상당록ㅁ 월하스님 결제/해제법어 ㅁ 월하스님 개산대재 법어 ㅁ 월하스님 4.8/신년법어 ㅁ 영축총림 방장 월하스님
2003-12-04 2,923
287
제15회 포교대상 월운스님
1.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포교원장 도영스님)은 12월 1일 포교대상 심사위원회를 열어 제15회 포교대상 수상자를 선정하였습니다. 2. 포교대상에는 제25교구 봉선사 조실이신 월운스님, 공로상에 불교상담개발원 원장 정덕스님이 선정되었으며, 원력상에는 정우스님(안동 대원사 주지), 장성화법사(군불교위원회),김응철(중앙승가대 교수), 윤위분(불국사 신도), 이영복(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 남강수(불자가수회), 김홍섭(교법사단), 권대자(포교사단)와 특별상에 서재영(동국대 강사)이 선정되었습니다. 3. 대상(종정상) 수상자로 선정된 월운스님은 45년 화방사에서 운허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뒤, 57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시고 63년도에 마산대학(현 경남대)을 졸업하신 학자스님으로 통도사 전문 강원 강사를 역임하셨습니다. 그 후 역경위원으로서 한문으로 된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시어 한문을 모르는 사람에게 부처님 말씀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평생을 보내시어 능엄학림, 불경서당, 통신강원을 열어 후학들을 양성하는데도 큰 공을 세우시었습니다. 4. 이러한 월운스님의 역경과 후학양성에 대한 의지는 이제 전국 각 지역의 포교와 법회 현장에서 그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미 올해에도 전국의 수많은 법문요청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가 법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한국불교에서 강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든 사부대중에게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이에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월운스님의 전법의지를 모든 사부대중과 함께 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리는 뜻에서 포교대상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외 공로상과 원력상, 특별상의 공적내용은 별첨자료와 같습니다. 6. 포교대상 시상식은 12월 13일 (토) 오후 3시 봉은사 보우당에서 봉행될 예정입니다. 제15회 포교대상 수상자 명단 1. 대상(1명) 성명 공적내용 분야 월운스님 봉선사 조실 역경원 역경위원으로 위촉받아 한문으로 된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부처님 말씀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평생을 보내셨고, 군포교 및 능엄학림, 불경서당, 통신강원들을 열어 후학 양성에 큰 공을 세움 문화포교 2. 공로상(1명) 성명 공적내용 분야 정덕스님 불교상담개발원 원장 자비의 전화가 창립될 때부터 14년간 이사 및 회장직을 맡으면서 자비의 전화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불교계내의 유일한 상담조직인 불교상담개발원을 설립하는 기여하여 전화상담과 사회복지 분야 상담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한 상담활동을 통하여 불법홍포에 기여한 공이 큼. 사회포교 3. 원력상(8명) 성명 공적내용 분야 정우스님 안동 대원사 주지 96년부터 안동에 어린이집을 개설하여 어린이 포교에 앞장섰으며 불교문화교실, 불교교양대학 등을 개설하여 지역포교에 이바지하였으며, 안동지역 신행단체협의회를 구성하여 신행단체 운영에 기여하였고, 각종 봉사단체, NGO단체에서 활약하면서 지역 내에서 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포교에 기여 함. 직능포교 장성화 법사 군불교위원회 군승법사 군승법사로서 22년간 법회활동, 교육활동, 장병선도활동, 군 법당 건립 등을 통하여 군포교에 진력하여 왔으며, 특히 현재 군승회의 의장으로서 군포교 비젼 21을 계획, 추진하여 군포교 중흥에 기여함. 직능포교 김응철 교수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96년 이후 교수로서 학문적 연구와 성과를 바탕으로 종단의 발전과 신도 임원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중앙신도회 정책위원장으로 정책 방향과 신도종책 수립에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으며, 포교연구실 등과 함께 포교 및 신도종책 수립에 기여한 공이 있음. 계층포교 윤위분 불국사 자원봉사단 부단장 불국사 자원봉사단 부단장으로 단원교육은 물론이고 봉사활동에 주축이 되어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재해 때 수재의연금 모금 및 봉사활동과 특히 경기도 안성 연꽃마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중증 치매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기여한 공이 큼. 사회포교 이영복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 소속 79년 영등포교도소에 교도관으로 임용된 이후 불법을 통한 재소자 교정교화에 헌신한 공이 지대하며, 불심회 활동을 하면서 조직 활성화와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 조직발전에 기여한 공이 큼. 직장포교 남강수 현재 대한불자가수회 회원과 포교사이며 교계의 각종 큰 행사 및 특별행사에 지원가수 및 반주자로서 음성공양을 하고 있으며, 특히 대한불자가수회를 조직하여 노래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공이 큼. 문화포교 김홍섭 교법사 종립학교 교법사로서 18년간 청소년 포교에 매진하였으며, 특히 98년 파라미타 대전지부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청소년 포교에 매진하고 있음. 또한 대전교사불자연합회를 창립하여 청소년 포교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등 청소년 포교에 기여한 공이 큼. 계층포교 권대자 포교사단 85년 조계종 포교사 품수를 받은 후 교도소와 소년원을 정기적으로 찾아서 법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군부대 법당 건립, 법회 지원 등 군포교에도 열성을 기울이고 있는 등 부처님의 손길이 필요한 소외된 곳을 찾아다는 포교에 기여한 공이 있음. 계층포교 4. 특별상(1명) 성명 공적내용 분야 서재영 동국대학교 강사 일찍부터 인터넷 포교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 ‘서재영의 불교기초교리’ 사이트을 운영하면서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있음. 인터넷포교
2003-12-03 2,339
286
원로의원 남곡당 덕명 큰스님 입적
조계종 원로의원이신 남곡당(南谷堂) 덕명(德明) 큰스님께서 오늘 새벽 4시 40분경 부산 기장군 안적사에서 입적(入寂)하셨습니다. 세수 78세, 법납 53세. 속명은 김혜성(金慧性).덕명스님 법구는 오전중에 본사인 범어사로 이운되어 분향소가 설치될 예정이며, 장례절차 등이 논의중에 있습니다. 원로의원이신 덕명스님은 1926년 울산에서 태어나셨으며, 1951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득도, 해인사와 범어사 강원을 수료했으며, 중앙종회의원(1974), 범어사 주지(1978)를 역임하셨으며, 1999년 12월 27일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 그동안 부산 기장군 안적사에서 회주로서 주석해 오셨습니다. 임종게 몽환생애칠십년(夢幻生涯七十年) 금조탈곡환본향(今朝脫殼還本鄕) 월락금정적요리(月落金井寂寥裡) 오경종성보천한(五更鍾聲報天寒) 꿈같은 생애 칠십(七十)년 오늘 껍질 벗고 고향에 돌아가네 금정산(金井山)에 달 기울고 고요한 속에 오경(五更) 범종소리 하늘 차갑다고 알리네.
2003-12-02 2,105
285
종정감사 우수사찰 포상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12월 2(월)일 2003년도 종정감사 우수사찰에 대한 표창을 수여하셨습니다. 수여사찰은 직할교구본사 조계사, 5교구본사 법주사, 24교구 내소사, 15교구 내원사, 9교구 은적사 등 5개사찰입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종정감사 우수사찰 주지스님들에게 감사드리며, 불교발전을 위한 애종심으로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종무행정을 해주셨다”고 노고를 치하하였습니다. 또한 법장스님은 “종단의 종무행정이 최근에 많이 체계화 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일반인들의 생활과 사회속에 불교의 위상 제고와 사회적 역할이 인정받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03년도 종정감사는 지난 160회 임시중앙종회에서 종정감사특별위원회를 구성, 교구본사, 특별분담금, 관람료, 직영사찰 등 총 87개 사찰을 대상으로 10월 14일부터 11월 3일까지 총무원과 합동으로 실시하였습니다. 다음은 각 우수사찰의 감사평가 내용입니다. *조계사 신도교육 체계와 내용에 있어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며, 외국인 포교활동에 남다른 모범도량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신도들이 함께하는 종무행정을 선보였으며, 종무원들의 근무여건 개선에 있어서도 매우 모범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법주사 교구본사로서 말사관리를 위한 별도의 행정시스템을 갖추고 업무를 체계화 하여 다른 교구본사의 모범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법주사는 1993년부터 전산실을 설치운영함과 더불어 사찰의 회계업무를 전산으로 처리하는 등 재정이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2년간 숙원불사를 원만히 완료하였습니다. 또한 강원 학인스님들에 대한 정기적인 장학금 지급을 통한 승려교육 노력이 평가되었으며, 속리산 한마당 행사 후원 등을 통해 지역에서의 사찰 위상을 높인 점들이 평가되었습니다. *내소사 현 주지스님 취임 이후 사찰재정이 확대되었으며, 설법전 신축, 회승당 건립 등 불사를 큰 불사들을 원만회향하여 사격을 일신하였으며, 특히 선원 운영 준비 등 수행사찰로의 사찰위상 강화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부안지역 주민과 함께 원전 폐기물 이전 반대 등 지역사회 현안에 결합하여 사찰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점이 평가되었습니다. *내원사 내원사는 천성산 수행환경 및 생태계보전을 위하여 최근 약 20만평의 대량의 토지를 매입하였으며, 주지스님이하 전체 대중스님들이 하나가 되어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저지를 위한 단식농성, 삼보일배, 서명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천성산 수행환경과 생태계보전을 위한 노력이 평가를 받았습니다. *은적사 은적사는 정기기도 법회 등 신행기도 활동이 모범적이며, 특히 주지스님이 의식집전을 직접 하면서 한번도 빠짐없이 신도들과 기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특히 도심사찰로서 ‘룸비니 유치원’을 모범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지역 어린이 포교에 크게 공헌한 것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2003-12-02 1,813
284
몽골불교 대표 푸레밧 스님 예방
몽골과의 공식 교류 및 협력 시작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지난 11월 26(수) 몽골전통불교미술대학 학장인 람 푸레밧 스님의 예방을 받고 몽골불교의 현황과 교류협력에 대한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푸레밧 스님은 “몽골은 중국 공산당의 침략과 문화말살 정책으로 몽골문자가 없어졌으며, 수십만의 승려와 사찰이 사라졌으며, 이로 인해 몽골불교와 전통문화가 사라질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의 물량선교로 인해 더욱 정신적인 혼란과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하며, “기독교와 경쟁을 통해 발전해온 한국불교에서 몽골불교의 위기 극복과 부흥을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조계종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몽골 민족의 시련과 고통에 진심어린 마음으로 위로를 드리며, 몽골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오랜 전통종교인 몽골불교가 21세기 시대를 맞아 부흥되기를 기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푸레밧 스님은 “국가간 종교협력이라는 차원에서 단발적인 교류가 아닌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실태파악을 통한 체계적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우선적인 것은 사라진 불교경전을 출판하여 사람들이 읽을수 있도록 해야하며, 인력양성을 통해 불교의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자리에 함께 참석했던 박광서 교수(재가연대 상임대표)와 남지심씨(우리는 선우 공동대표)는 “도와준다는 차원보다는 몽골 불교가 자생력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사회부장 미산 스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몽골 불교 현황 조사 후 우선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분야를 파악한 뒤 세부적으로 논의하자”며 내년부터 실태조사를 토대로 한 교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현재 몽골불교는 승려가 3천여 명이며 대부분 90년대 출가한 10대라고 합니다. 그중의 성인 승려가 200여명 정도이며, 지도자로서의 핵심적인 역할과 활동을 하는 스님은 5명 내외라고 합니다. 그중 푸레밧 스님은 몽골 국민들이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스님이랍니다. 또한 이날 통역을 해주신 몽골전통미술대학 부학장인 김선정교수는 홍대 미대 출신의 한국사람으로서 몽골불교 부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람 푸레밧 스님의 공식 방한은 두 번째로 민주당 불자국회의원 모임인 연등회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조계사의 몽골 노동자들의 법회 참석 등 몽골불교 신행활동 격려와 한국불교계와의 교류와 협력을 요청하고 상의하기 위해 오셨답니다. 몽골불교가 살아야 몽골이 산다고 생각하는 푸레밧 스님의 말에 의하면 몽골스님들은 천문점성학을 통한 점을 보며, 의료행위를 하고 문학, 철학, 논리학, 천문학 등을 공부하며, 미술 등 예술가라고 합니다. 명상(참선)도 그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몽고이 넓은 평야이기에 사찰과의 거리가 200Km이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하네요. 또한 사람이 죽으면 꼭 스님이 와서 기도를 해야한다고 하구요. 모든 대소사 결정시 스님의 점괘를 받는다고 합니다. 푸레밧 스님은 12월 4일 출국할 예정입니다. 공산시절 승려가 된 소수의 엘리트 였던 푸레밭 람은 두세대에 걸친 공산당의 긴 탄압기를 거치며 완전히 사라질 위개에 처했던 전통 문화를 살려내서 새로운 새대에 전수하고 있다. 2000 년의 불교의 역사를 지닌 몽골은 1936년의 불교 박해 이전엔 부탄 이나 티벳 이상가는 전국민이 열렬히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 였다.부탄과 티벳처럼 몽골의 전통 문화는 불교문화이다. 몽골의 용맹한 용사들은 승려가 되어서 세상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놀라운 정신 문화 이루어 냈다. 푸레밭 람은 아주 오래전에 몽골의 용사들이 깨달은 것, 즉 진정한 힘은 바깥의 적과 싸우는 무력이 아니며 자기 내면에 있는 적과 싸우는 정신의 힘 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그리고 몽골인들이 문화를 잃어버리며 함께 잃어가고 있었던 민족의 주체성과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을 성취 해왔다 . 1 전통 문화의 부활과 보존 1). 전통미술의 실기와 이론을 교육할 수 있는 교육자 , 전문 미술가 양성 현재/ 학사과정 40 명 석사 과정 11 명2) 몽골의 전통미술과 공예의 실기, 재 료, 이론, 상징 철학을 집대성하여 23 권의 몽골 전통미술 대백과를 집 필함 이책들은 몽골의 전통미술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주춧돌리다 출 판되면 예술가 장인 학자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며 외국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3)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몽골의 비밀 딴뜨라 의식들을 여러 마스터 들로부터 직접 전수 받음 4) 수천여점의 불교 미술품/입체만달라 회화 조각 공예 수예/을 복원 제작하여 소장하고 있음, 미술관 건립 예정 5) 수만여점의 고미술품과 희귀 경전을 수집하여 소장함. 박물관과 도서관 건립 예정 6) 구전문학의 수집 정리 7) 출판 번역사업 - 밀불교의 바이블인 쫑카파의 보리도차제론 번역 출판2003. 2 판 인쇄 2003 - 영문 씨디롬 발행 2003 - 100 여권에 달하는 전통문화에 관한 경전과 고서를 현대 몽골어로 번역 8) 간단사 믹제젠리식 재건 총지휘 1993-1996 9) 바쿨라 린포체 삐툽 승원에 대형벽화들 제작 1999 10). 몽골 전통 화장의식을 부활하여 고승들 화장하고 있음 2. 대중 교육 1) 메스컴을 통한 대중교육 푸래밭 람은 몽골에서 메스컴에 가장 자주 출현 하는 인물의 하나이다. 테레비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일반인이 알기쉽게 몽골의 전통문화와 불교 철학를 가르치고 있다. 2)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시절에 대량 학살당한 함빈 오워의 600 여구 유해를 발굴 수습하여 위령탑을 건립하고 보고서를 펴냄 2003 / 다른 유해들도 계속 발굴해 나갈 예정 3)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복원해낸 불교미술작품, 600 여점을 몽골 현대 미술관에서 40일간 전시하고 강의 함 (2000) 3. 지방 전통문화 보존과 해외동포 교육 1) 지방의 전통문화발전을 위해 전국에 몽골 전통문화원의 지부 설립할 목적으로 21개 아이막에서 장학생을 선발 (2001) 교육중임 2) 해마다 지방 각처로 답사와 순회강연을 하고 있음 3) 브리아트 제자들을 교육하여 러시아 브리아트에도 전통 미술 학교를 열게함 (2001) 4) 재한 몽골인들이 전통의 종교와 문화를 지키며 살수 있도록 몽골 종교 문화 단체 조직하여 교육하고 후원중임 서울 조계사 2003 4. 외국의 대중 매체들의 강의 와 인터뷰를 통해 몽골 전통 문화의 해외 홍보를 하고 있음 푸레밭람의 해외 도큐들
2003-11-27 1,941
283
스리랑카 수재의연금 2차 전달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11월 27일 성북동 스리랑카 대사관저를 방문, 수해성금 2차분 6천만원을 전달하였습니다. 수재의연금은 총 2억4천만원으로서 1차분 6천만원은 지난 9월 3일 총무원장 법장스님이 직접 스리랑카 수해지역을 위로 방문하여 ‘대한불교조계종 마을’ 기공식을 하면서 전달한바 있습니다. 스리랑카 수상 란일 익클레메싱하는 지난 11월 20일 친서를 보내 스리랑카 방문에 대한 감사와 ‘대한불교조계종 마을’ 공사 진척상황과 사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마을’은 라투나푸라 지역 16에이커 규모의 구릉지에 118채의 주택 공사가 진척되고 있으며, 사찰, 마을회관, 우체국, 의료실, 어린이 놀이시설 등이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총무원장스님의 대사관저 방문은은 스리랑카 수해복구 지원에 대한 감사와 대사관저 이전에 따라 스님을 초청 공양과 축원을 해야하는 관습에 따라 위자야 시리 대사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위자야 시리 대사 등 가족들과 함께 반야심경 봉독과 축원을 하였으며, 기념품으로 팔만대장경 판본을 선물하였습니다. 법장스님은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대장경판 조성을 통해 국난을 극복했듯이 스리랑카가 평화와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스님 본인은 지난 2003년 9월 3일 직접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수재민을 격려 위로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대한불교조계종의 발전과 영광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원장스님의 지도로 스리랑카 홍수 피해자들을 지원해주신 것에 정중히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계획하신 것처럼, 한국불자들이 모금한 성금은 라투나푸라 지역의 주택건설모델 계획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이러한 큰 공훈은 한국불자들과 스리랑카불자들 간의 우호관계를 지속하게 할 것이며, 국가간의 선린우호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대한불교조계종이 보여준 이번 사업이 스리랑카와 한국간의 우호관계를 더욱 강화하는데 공헌 할 것이라 확인하는 바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스리랑카 수상 란일 윅클레메싱하 -
2003-11-27 1,937
282
몽골 푸레밧 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 예방
몽골 푸레밧 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 예방 몽골의 대표적인 정신적 지도자인 몽골전통불교미술대학 학장 푸레밧(Purevbat 40) 스님이 지난 26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을 예방, 몽골에 대한 한국 불교계의 도움을 당부했다. 연등회 초청으로 지난 20일부터 12월4일까지 한국을 방문한 푸레밧스님은 총무원장 법장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 1937년 이후 공산당의 종교말살 정책으로 인해 몽골은 현재 불교의 기반이 매우 미약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특히 최근들어 한국 개신교인들이 대거 몽골에서 선교활동을 펼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무엇보다 개개인에게 풍부한 책을 나눠주는 개신교와 달리 불교는 책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조차 경전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국 불교계의 도움이 몽골 불교를 세우는데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몽골의 불교가 다시 꽃을 피운다면 세계 불교가 함께 꽃을 피울 것”이라며 “몽골 불교를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어려운 여건에서 불교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푸레밧 스님을 격려했다. 한편 푸렛밧 스님 일행은 28일 논산 금강대학교를 방문한데 이어 오는 29일에는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에서 ‘몽골 만다라’에 대한 미술 강연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2003-11-27 1,697
281
제35주년 군승의 날 기념법회 봉행
제35주년 군승의 날 기념법회가 11월 25일(화) 국방부 국방회관에서 총무원장 법장스님, 포교원장 도영스님, 군불교위원장 성광스님 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 되었습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법어를 통해 “군복무 중 불교신자가 된 메이저리거 서재응 선수의 사례를 통해 군포교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기도 했다”며 “종단차원에서 군포교 체제 정비와 지원체계 강화, 효율적인 군포교기구 전환 모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법장스님은 또 “군법사들이 군포교에만 전력할 수 있도록 보다 발전된 조직구성과 군포교 프로그램의 본격적 실시 등 군불교 관련 제반 업무활동이 체계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종단의 군포교 역량 안정화와 군승 교육기회 확대, 각종 법령 정비 등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군승회의 장성화 의장은 불기 2547년 군포교활동 보고를 통해 군내 연간 법회 봉행횟수는 11,979회이며 참석인원은 1,974,443명이며, 군승총원은 육해공군 총 129명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한편 이날 법회에는 해군 작전사령부 강보승 법사(해안사 주지)가 총무원장 표창을 받는 등 군승 12명과 군불자 7명에 대한 표창이 수여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국방부 군종실장 김말환법사, 군승회의 의장 장성화법사 등 군승법사와 국군불교총신도회장 황철준 회장 등 군신자와 군포교후원단체 불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또한 교육부장 정산스님, 도선사 주지 혜자스님, 불교여성개발원 원장 정덕스님, 한나라당 이연숙 의원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만찬행사에서 김태복 소장 소개시에는 대중들의 열띤 박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불기2547년 군포교 활동 현황 ■ 군승총원(03.11월 현재) 구 분 계 육 군 해 군 공 군 계 129 91 17 21 ○ 2547년 군승임관 : 17명 (육군 12명, 해군 1명, 공군 4명) ● 수계식 / 수계불자(2003. 10월말 현재) 부 대 소 계 국 직 육 군 해 군 공 군 횟 수 332 20 247 29 36 수계불자 58,776 878 50,784 3,235 3,879 ● 법회 및 참석 인원(2003.10월말 현재) 법 회 소 계 육 군 해 군 공 군 횟 수 11,979 10,464 735 780 인 원 1,974,443 1,809,641 77,901 86,901 ■ 군사찰 자매결연 / 지원 현황 일반사찰 185개소 신행단체 42개소 포교사 / 일반불자 21개소 ■ 군사찰 신축 현황(03. 11월 현재) 구 분 소계 비 고 건 립 11 306보충대, 수기사, 21사단 65연대, 102여단, 2군단, 7사단 신교대, 53사단 신교대, 15사단 신교대, 6탄약창, 해병사령부 교육관, 공군교육사 교육관(증축) 불사중 5 부사관학교, 36사단, 1강습여단, 3사단 18연대, 특전사5여단
2003-11-26 1,848
280
종정예하, 정대스님 영결법어 내리시다
동국학원 이사장이자 전 총무원장이였던 정대스님에 대해 영결법어를 내리셨습니다. 또한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영결사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외 종회의장 지하스님, 중앙신도회 백창기회장, 동국대 홍기삼 총장, 문화관광부 이창동 장관, 손학규 경기도지사, 일본대정대 이사장의 조사가 속속 발표되었습니다. 종정예하 도림 법전스님 영 결 법 어 (永訣法語 ) 이사무애(理事無碍)한 삶이었으니 올 때는 흰구름과 더불어 오고 갈 때는 밝은 달을 따라갔습니다. 낮에는 영산회상을 열었고, 밤에는 좌복 위에 앉았습니다. 교화의 인연은 사방에 두루 미쳤고, 이(理)와 사(事)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었습니다. 법신이 만물에 응하는 것은 물 가운데 달과 같고, 환신(幻身)이 인연을 따라 멸하는 것은 허공 속의 꽃과 같습니다. 용주사 계곡물 모두 비워도 서해바다에 다시 가득차듯 손을 털고 발걸음 옮겨도 언제나 대천세계(大千世界) 안의 일일 뿐입니다. 종사(宗師)의 안목은 사부대중의 지남(指南)이요 종단사(宗團事)에는 시처(時處)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안광(眼光)이 낙지(落地)하니 천지(天地)는 실색(失色) 하였습니다. 이제 냉추추지거(冷湫湫地去), 차가운 가을 물 처럼.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한 생각이 영원히 변함없듯이. 한회고목거(寒灰枯木去), 불 꺼진 재와 말라죽은 고목처럼. 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 오래된 사당의 쓰지 않는 향로처럼.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 그리고 때묻지 않는 한 폭의 흰 명주처럼. 휴거(休去), 쉬고 헐거(歇去), 또 쉬십시오. 만연소진불류종(萬緣掃盡不留蹤)하고 일실료료절이동(一室蓼廖絶異同)이라. 종차진진소산거(從此塵塵消散去)하니 육창명월여청풍(六窓明月與淸風)이라. 모든 인연 다 씻어 버리니 자취가 남음이 없고 한 방안이 고요하니 다르고 같음이 끊어지네. 이로부터 모든 망상 흔적이 없으니 육근문이 확 트여 청풍명월이 걸림없네. 조계종 종정 도림 법전 분향 총무원장 법장스님 영 결 사 (永訣辭) 월암당(月庵堂) 정대(正大)스님. 낙엽귀근(落葉歸根)의 계절입니다 산과 들에 있는 나무들이 스스로 전지(剪枝)를 통해 떨쳐버릴 것을 모두 떨쳐버리고 근본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릇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이렇게 때가 되면 떨어지고 부서지는 것이 생멸(生滅)의 도리입니다. 예로부터 이 이치를 통달한 본분종사(本分宗師)는 생멸의 법칙에 거스르지 않고 인연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고, 물로 돌아가고,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옛사람이 걸어간 길을 떠나시려고 짐을 싸셨습니다. 오래 전부터 죽음을 친구처럼 안고 사신 스님께서야 나뭇잎 하나 떨구듯 하고 떠나시는 발걸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애착의 헌옷을 벗지 못한 저희들로서는 왜 이렇게 가슴에 솟구치는 아쉬움과 슬픔을 가누기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정대(正大)스님. 옛사람이 이르기를 ‘옥은 불로 가려내고 금은 돌로 알아내며, 칼은 터럭으로 시험하며 물은 지팡이로 재어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스님을 영결하며 스님의 삶의 무게를 재보려고 하나 마땅한 분이 없습니다. 스님이 우리 종단과 승가에 남긴 넓이와 깊이가 너무 커서 보통의 도량형(度量衡)으로는 잴 수 없는 까닭입니다. 스님은 참으로 ‘正大’라는 이름 그대로 바르고 큰 사람이었습니다. 시비(是非)를 가려 분열하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니라 포옹하고 화합하는 것이 정말로 바른 것이요, 손익(損益)을 따져 좋은 것만 차지하는 것이 큰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것이 진정으로 큰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분이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은 일찍이 근대불교의 선지식인 전강선사(田岡禪師) 문하로 출가하여 40여 성상을 대방무외(大方無外)하고 이사무애(理事無碍)한의 삶을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용주사 중앙선원을 비롯한 제방에서 대기대용(大機大用)을 터득한 스님은 총무원 사회국장으로 종무행정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총무원 각 부장, 종회의원, 종회의장, 총무원장, 동국학원 이사장 등 종단의 중요한 종무직을 한자리도 빼놓지 않고 두루 거치는 화려한 이력을 쌓으셨습니다. 그 사이 스님이 종단발전을 위해 이룩한 크고 작은 업적을 꼽자면 눈썹을 뽑아 헤아려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보다 우리들이 스님을 잊지 못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따뜻했던 스님의 가슴 때문입니다. 스님은 타고난 친화력으로 언제나 모든 사람을 대통원융(大通圓融)으로 감싸안았습니다. 반목과 다툼이 있는 곳에는 화해의 웃음이 피게 했으며, 대중화합을 위해서라면 내장(內臟)까지 다 꺼내놓으셨습니다. 또한 살얼음판을 만나면 먼저 건너가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스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여들어 회상(會上)을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스님은 5척의 단구(短軀)이면서도 크기는 태산(泰山)을 능가했고, 넓기는 창명(滄溟)을 담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정대(正大)스님. 예로부터 지인무명(至人無名)에 이른 본분종사(本分宗師)는 어떠한 순간에도 참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스님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보여줄 참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앞으로 우리는 감나무가 잎사귀를 떨구는 것에서 스님이 보여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깨달을 것입니다. 혹시 마음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스님의 화안(和顔)을 떠올리며 자비무적(慈悲無敵)을 생각할 것입니다. 화합이 어그러질 때는 먼저 악수를 청하던 스님의 헌신(獻身)과 하심(下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스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에 드러낸 진면목(眞面目)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대(正大)스님. 스님이 우리에게 보인 공적(空寂)의 실상(實相) 앞에 왜 이렇게 가슴이 허전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말후일구(末後一句)입니다. 일상무운(日上無雲)하니 여천보조(麗天普照)요 안중무진(眼中無塵)하니 공리무화(空裏無華)로다해뜨고 구름 한 점 없으니 하늘에는 햇살이 빛나고 눈 가운데 티끌이 없으니 허공에는 헛 꽃이 없도다. 정대스님. 삼가 영산회상(靈山會上)의 구래(舊來)를 본 따,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영결(永訣)의 인사에 가름합니다. 부디 적광정토(寂光淨土)에서 긴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소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 장 분향 月庵堂 正大大禪師 學校法人 東國學園葬 永訣式 ■ 永訣日時 : 佛紀2547年 11月 22日(陰10. 29) 午前 10時 ■ 永訣場所 : 龍珠寺 蔓殊利室 ■ 茶 毘 場 : 龍珠寺 蓮華臺 * 永訣式順 사 회 : 무관스님(조계종 계단위원) 一. 개 식 ----- 사회자 一. 명 종 一 .삼 귀 의 一. 반야심경 一. 영결법요 ----- 영명스님(용주사 총무) 一. 행장소개 ----- 영배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 一. 추도입정 一. 영 결 사 -----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 一. 법 어 ----- 종정예하 一. 조 사 ----- 지하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장) 홍기삼(동국대학교총장) 이창동(문화관광부장관) 손학규(경기도지사) 一. 조 가 ----- 용주사, 수원포교당, 삼막사, 신륵사, 청련암 연합합창단. 一. 헌 화 ----- 문도대표(성용스님), 문중대표(정무스님), 종단대표, 종회대표, 신도회대표, 각기관장. 一. 조화 및 조전소개 一. 인 사 ----- 문중대표 집행위원장(정락스님) 一. 사홍서원 一. 발 인
2003-11-21 2,757
279
동국학원 이사장 正大스님 열반
동국학원 이사장 正大스님 열반 18일 새벽, 22일 용주사서 영결식 봉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국학원 이사장인 月庵堂 正大 大禪師가 18일 새벽5시 안양 삼성산 삼막사 월암당에서 세납 67세, 법납 42세로 입적했습니다. 스님의 법구는 입적 직후 스님의 출가본사인 수원 용주사로 이운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22일 오전 10시 용주사에서 동국학원장으로 봉행됩니다. 정대스님은 입적에 앞서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星夢中人(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며 임종게를 남겼습니다. 1937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962년 전북 완주 위봉사에서 당대최고 선지식인 전강(田岡)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습니다. 62년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67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습니다. 스님은 도봉산 망월사 선원을 비롯해 수덕사, 용주사 중앙선원 등에서 수행정진했습니다. 스님은 은사인 전강스님으로부터 ‘板齒生毛(이빨에서 털이 난 도리가 무엇인가’를 화두로 받고, 그날부터 자신의 전신을 견성(見性)의 열정으로 채워 정진(精進)에만 몰두했습니다. 3년동안 ‘판치생모(板齒生毛)’의 화두를 놓고 용맹정진한 스님은 불조(佛祖)의 진면목을 참구한 끝에 ‘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고, 마음 밖에 부처도 중생도 없음’을 자증(自證)하고 견성(見性)을 이루었습니다. 이사(理事)를 두루 겸비한 스님은 종단 중흥과 포교에도 남다른 원력을 갖고,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 총무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중앙종회 부의장, 중앙종회 의장 , 용주사 주지 등을 거치면서 종단 중흥과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특히, 스님은 지난 99년부터 11월 20일 종도(宗徒)의 간절한 원력을 받아들여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여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종단 안정화와 중흥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2003년 2월까지 3년여간 총무원장에 봉직하며 스님은 종단의 숙원 과제로 남아있던 중앙승가대 이전불사를 완료했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 등 종단 중흥의 초석을 튼튼히 다졌다. 지난해에는 유산과 사재를 출연하여 은정장학재단을 설립,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여건속에서 학업에 전념하는 인재들을 지원하는데 힘썼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열반직전까지는 조계종 종립 동국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며, 교육과 인재양성에 매진했습니다. = 臨終偈 = 來不入死關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去不出死關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天地是夢國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但惺夢中人 (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 행장 = 1937년 3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남. 속명은 병식(炳植), 법명은 正大, 법호는 月庵. 1962년 田岡스님을 은사로 전북 완주군 위봉사로 출가 1962년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64년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을 비롯해 도봉산 망월사선원, 수덕사 선원 등에서 용맹 정진 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69년 신륵사 주지로 취임 14년간 재임하면서 도량을 정비하고 가람의 면모를 일신함 1973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으로 중앙 종무행정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재정국장, 규정국장 등을 역임 1974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으로 취임하여 87년까지 사회부장 두 차례, 재무부장 네 차례, 총무부장 두 차례 등 종단의 주요 부장을 역임하며 재정관리와 종무 행정의 기틀을 다졌다. 1975년 제4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으로 피선되어 중앙종회 활동을 하며, 5대, 7대, 8대, 9대, 10대, 11대, 12대 중앙종회까지 종회의원 역임. 8대 종회 부의장, 9대 종회 의장 역임 1977년 혜성스님, 박완일 거사와 함께 한일불교문화교류회를 결성, 초대 상임이사로 취임. 1981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제3차 세계불교승가대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가. 1983년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 주지로 취임. 이후 94년까지 12년 재임동안 가람의 면모를 일신했다. 특히 60년대 후반 개원했다 문을 닫은 중앙선원을 다시 개원해 선풍을 진작시킴. 1984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제14차 세계불교도우의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석, 1984년 일본서 열린 제5회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석 1989년 문화재위원으로 위촉 95년까지 활동. 1989년 불교방송 재단이사로 취임, 방송국 개국을 주도함 1991년 동국학원 이사로 취임 현재까지 활동 1999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2003년 1월 15일 총무원장 사퇴(발표) 2003년 1월 24일 동국학원 이사장으로 취임(-5년 임기시작, 現) ※ 정대스님 영결법어 전문입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한 삶이었으니 올 때는 흰구름과 더불어 오고 갈 때는 밝은 달을 따라갔습니다. 낮에는 영산회상을 열었고, 밤에는 좌복 위에 앉았습니다. 교화의 인연은 사방에 두루 미쳤고, 이理와 사事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었습니다. 법신이 만물에 응하는 것은 물 가운데 달과 같고, 환신幻身이 인연을 따라 멸하는 것은 허공 속의 꽃과 같습니다. 용주사 계곡물 모두 비워도 서해바다에 다시 가득차듯 손을 털고 발걸음 옮겨도 언제나 대천세계大千世界 안의 일일 뿐입니다. 종사宗師의 안목은 사부대중의 지남指南이요 종단사宗團事에는 시처時處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안광眼光이 낙지落地하니 천지天地는 실색失色 하였습니다. 이제 냉추추지거冷湫湫地去, 차가운 가을 물 처럼.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한 생각이 영원히 변함없듯이. 한회고목거寒灰枯木去, 불 꺼진 재와 말라죽은 고목처럼. 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 오래된 사당의 쓰지 않는 향로처럼.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 그리고 때묻지 않는 한 폭의 흰 명주처럼. 휴거休去, 쉬고 헐거歇去, 또 쉬십시오. 만연소진불류종 萬緣掃盡不留蹤하고 일실료료절이동 一室蓼廖絶異同이라. 종차진진소산거從此塵塵消散去하니 육창명월여청풍 六窓明月與淸風이라. 모든 인연 다 씻어 버리니 자취가 남음이 없고 한 방안이 고요하니 다르고 같음이 끊어지네. 이로부터 모든 망상 흔적이 없으니 육근문이 확 트여 청풍명월이 걸림없네. 2547(2003). 11. 22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2003-11-18 3,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