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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종정 예하 동안거 결제 법어 발표
90여개 선원, 2천 3백여 스님, 동안거 결제 시작 법전 종정 예하 동안거 결제 법어 발표 대한불교조계종 법전 종정 예하는 11월 26일(음력 10월 15일) 冬安居 結制日을 맞아 전국의 修行衲子들을 분발토록 격려하는 동안거 결제 법어를 발표하였습니다. 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승려들이 일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바르사바사의 역어로 인도의 雨期는 대략 4개월 가량인 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에서만 수행하였으며, 우기에는 비 때문에 도보여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외출 중에 이들을 밟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석가모니가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입니다. 동안거 결제는 하루전날인 25일(목) 저녁 결제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각자의 소임을 정하는 용상방(龍象榜)을 작성하고, 26일(금) 입제 당일 오전 10시 30분경 방장스님 등 큰스님을 모시고 결제법어를 청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매년 전국 91개 禪房에 2천 3백여 명의 수좌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이 방부(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 절차)를 들여 수행하고 있으며, 지정된 선원 이외에 토굴이나 일반사찰에서도 이 기간 동안에는 수행에 매진하게 됩니다. 90여개 선원은 총림선원 5곳, 비구선원 53곳, 비구니선원 34곳 등입니다. 조계종 종정 2548(2004) 동안거 결제 법어 법안문익선사께서 결제철의 어느 날, 사시공양 시간이 되기 전에 큰방에 들어와서는 손가락으로 발(簾)을 가리켰습니다.그러자 동시에 두 승려가 발을 걷어 말아 올렸습니다.이에 법안 선사가 말하였습니다.“일득일실 一得一失이로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도다.”결제란 얻는 것이 있다거나 잃는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득一得이라거나 일실一失이라고 말한다면 제대로 결제를 하는 납자가 아닙니다. 지금 ‘일득일실一得一失’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의 깨달음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병을 알지도 못하면서 선지식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른 이가 알아도 모를 것이요, 더우기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하면 더더욱 모를 것은 뻔한 일입니다. 얻음과 잃음의 소견을 내는 자리에서는 이를 전혀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가려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위하여 그리고 어떻게 남에게 자신있게 일득일실一得一失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은 얻고 한 사람은 잃었다고 하니 누가 그 곡절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름지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산승이 고구정녕하게 당부하는 말을 듣고서 발심하여 결제동안 참으로 용맹정진을 한다면 마침내 일득일실一得一失의 경지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청량원에서 법안문익선사가 손으로 발(簾)을 가르키자 두 스님네가 똑같이 좌우에서 그 발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법안스님의 말은 한 승려는 득得했다고 하고 한 승려는 실失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좌우에서 똑같이 발을 걷어 올렸는데 왜 한 사람은 얻었다고 하고 한사람은 잃었다고 했겠습니까?이번 결제철에 한 철 동안 잘 참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수득수실誰得誰失고 약향자리若向者裏 득일척안得一隻眼하면 변지낙처便知落處하리라.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가? 만약 이 속을 향하여 바른안목을 얻는다면 바로 낙처를 알 것이니라. 2548(2004) 동안거 결제일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2004-11-23 1,933
397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 열려
대한불교조계종 금강산 신계사 복원추진위원회는 지난 11월 20일부터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앞에서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을 봉행하였습니다.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은 통일부처님 오전 9시 점안의식을 시작으로 헌화, 경과보고, 인사말, 봉행사,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의 법어, 축사, 축원, 통일기원문 낭독, 풍경제막, 대웅보전 참배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신계사 복원불사 추진위원장이자 불국사 주지이신 종상스님은 인사말에서 “오늘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법회 인연으로 민족이 통일되고, 인류에게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며, “신계사는 평화의 새벽을 알리는 목탁이 되고, 통일을 염원하는 향연이 되어 그 향기를 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봉행사를 통해 “소실됐던 신계사를 복원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화합과 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며 “이런 뜻깊은 자리에 남북의 지도자와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 대웅보전 낙성식을 갖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금강산 신계사가 민족통일의 기도도량으로 회향되기를 기원한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통일부 이봉조 차관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현대아산 김윤규 회장은 축사를 통해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의 낙성을 축하였습니다.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장 명성스님은 통일기원문에서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을 인연으로 반세기가 넘는 민족분단의 어둠을 건너 만남의 등, 화합의 등, 통일의 등을 밝혀 자비와 평화, 하나됨의 물결이 온 누리에 너울지게 하여지이다”라고 기원했하였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을 비롯해 원로의원 활안, 천운스님, 호계원장 월서스님, 포교원장 도영스님, 순천 송광사 회주 법흥스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봉조 통일부 차관, 유홍준 문화재청 청장, 조불련 차금철 책임부원, 문화보존지도국 최일람 설비보존차장,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 도올 김용옥 씨, 시인 고은 씨 등 각계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하여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을 축하하였습니다. 한편, 신계사 복원불사 추진위는 20일 오후 6시30분 금강산호텔 2층 로비에서 ‘신계사 복원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가졌으며, 후원의 밤 행사에서는 총무원장 법장스님이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에게 감사패를, 신계사 복원불사 추진위원장 종상스님이 도목수 최현규씨와 기와 1만5000장을 보시한 고령기와 김은동 사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하였으며, 현장에서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모연행사를 가졌습니다. '신계사 복원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을 비롯하여 원로의원 활안 큰 스님 등이 금일봉을 전달하였으며, 추진위원장인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 5천만원, 도선사 주지 7천만원, 자비실천운동본부 5천만원, 법흥스님 1천만원 등 약 3억 8천여만원(금일봉 제외)의 신계사 복원불사 모연금(현금과 약정액 포함)이 참석하신 사부대중들에 의해 접수되었습니다.
2004-11-22 1,704
396
석주당 정일 대종사 영결식 봉행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이자 칠보사, 봉은사 조실이신 석주당 정일대종사의 영결식이 지난 11월 18일 오전 11시, 범어사에서 봉행되었습니다. 이날 진행된 영결식은 명종, 오타, 영결법요(원명ㆍ원공 스님), 문도대표 헌다ㆍ헌향, 행장소개(지관 스님), 추도입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영결식에서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스님은 중생(衆生)의 근기(根機)에 따라 마음을 열고 닫을 줄 아는 눈 밝은 우리 종문(宗門)의 종장(宗匠)이었고 법시(法施)의 문(門)을 넓히고 전등(傳燈)의 불꽃을 이어서 감로법문(甘露法門)으로 중생(衆生)의 마음을 비옥케 한 만행보살(萬行菩薩)이었습니다”라며 원적을 애도하였으며, 도림 법전 종정예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노화상(老和尙)의 법신(法身)이요, 일체음색(一切音色)이 노화상(老和尙)의 법음(法音)입니다. 이렇게 불사의(不思議)한 능력(能力)과 묘용(妙用)을 갖춘 노화상(老和尙)의 면목(面目)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라고 법어를 내리셨습니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도 “큰스님의 업적은 극천(極天)하고 광대(廣大)하여 후학들이 보기에 스님께서는 가히 우리 조계종단의 큰 기둥이셨으며 주인이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며 추도사를 발표하였습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조윤제 경제보좌관(청와대불자회장)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석주 큰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며, 우리를 일깨우신 높은 공덕을 기린다"고 밝혔습니다. 약 1시간 20여분간 진행된 영결식이 끝난 후 석주당 정일대종사의 법구는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5,000여 대중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다비장이 마련된 지장암으로 이운되었습니다. 연화대에 모셔진 법구는 오후 1시 30분경 거화되어 석주당 정일대종사의 뜻대로 금정산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2004-11-22 1,500
395
석주(昔珠)당 정일(正一)대종사 圓寂
석주(昔珠)당 정일(正一)대종사 圓寂 11월 18일 오전 11시, 범어사 보제루에서 영결식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의원을 역임한 조계종 명예원로 석주(昔珠)당 정일(正一) 대종사께서 지난 14일 오후 4시, 온양 보문사에서 圓寂에 드셨습니다. 석주당 정일대종사는 원적에 드시기 며칠 전 “부처님 열반경이 임종게 이거늘, 어찌 임종게를 남기겠는가, 열반경이 임종게이니라”며 임종게를 남기시지 않으셨으며, “사리도 수습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석주(昔珠)당 정일(正一) 대종사는 세납 95세, 법납 81세로, 영결식은 18일 오전 11시, ‘조계종 원로 석주당 정일대종사 원로회의장’으로 범어사 보제루(普濟樓)에서, 다비식은 범어사 다비장에서 봉행됩니다. 석주(昔珠)당 정일(正一) 대종사는 1909년 경북 안동 북후면 옹천마을에서 출생, 1923년 남전스님을 은사로 출가, 1928년 6년간의 행자생활 후 범어사서 득도한 후 1933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졸업하였습니다. 1937년 금강산 마하연사,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1940년 부산동래 금정선원 원장 역임, 1958년 11교구 불국사주지와 1961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 1971년에는 제8대 조계종 총무원장과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1976년 10교구 은해사주지를 역임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1978년 제15대 총무원장, 1979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1984년 제23대 총무원장, 1990년 동국역경원 이사장, 1994년 종단 개혁시에는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특히, 1965년 칠보사 어린이회를 창립, 1966년에는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고문 등 어린이 포교와 청소년 포교에도 매진하셨으며, 1965년 동국역경원 부원장으로 추대돼 운허 스님과 함께 한글대장경 편찬사업에 착수하여 318권의 한글대장경을 무려 37년 만에 완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석주(昔珠)당 정일(正一) 대종사 행장 석주큰스님은 한일합방 한해전인 1909년 경북 안동에서 탄생하셨습니다. 15세 되시던 해인 1923년 서울 선학원에서 남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6년간 선학원에서 행자생활을 하시고 1933년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마쳤습니다. 이후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마하연, 덕숭산 정혜사, 묘항산 보현사 등 제방 선원에서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 참선 정진을 하시며 수선안거를 성만하셨습니다.1958년 불국사 주지를 역임하신데 이어 1961년 선학원 이사장, 1976년 은해사 주지, 1977년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1971년, 1978년, 1984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3차례 역임하시는 등 종단행정을 두루 맡으셨습니다. 또한 역경과 교육사업에 남다른 원력을 가지고 1989년부터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 1970년 청소년 교화연합회 총재, 1980년 중앙승가대학교 초대 학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을 거쳐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1997년 충남 아산에 보문사를 창건하고 외로운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안양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계셨습니다.평생을 바친 역경불사의 원력석주스님은 평생 역경에 대한 원력을 세우셔서 한국전쟁 이후에 선학원에서 불교사전을 출판하셨던 운허스님과 함께 1961년 5월 현 동국역경원의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하여 역경불사에 활력을 불어넣으셨습니다.열반경, 법화경, 유마경, 육조단경, 현우경, 선가귀감 등을 번역 출판하셨고, 부모은중경, 목련경, 우란분경은 직접 번역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1964년 동국역경원 설립이후에는 운허스님과 함께 한글대장경 편찬사업에 착수, 37년만인 2002년 9월 318권의 한글대장경을 완간하셨습니다. 1989년부터는 동국역경사업 진흥회의 이사장을 맡으시어 역경사업의 활성화에 진력하신 바 있습니다.큰스님의 역경불사 원력은 주석하시던 칠보사의 대웅전을 친히 ‘큰법당’이라고 현판을 바꾸시고 우리말 경전 보급에 친히 앞장 서셨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불자들에게 한글대장경이라는 귀중한 한글 경전이 출현하여 진리의 빛을 열어준 것은 모두 석주 큰스님의 원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불교혁신에 헌신하시다.석주 큰스님은 선학원에서 수행하시는 동안 만해 한용운 스님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선각자들과 교유하시며 민족의식을 싹틔우셨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해방직후부터 석주큰스님을 왜색불교청산과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운동에 앞장서게 만들었습니다.해방직후에 어떻게 해서든 불교를 혁신시키자는 기치아래 불교혁신운동을 일으키셔서 경봉, 용담, 대의, 석기 스님과 조명기 박사와 이구열, 장상곤 등의 불교 청년, 그리고 혁신회를 만들었던 이종익 박사와 여성동맹이 모두 모여 통도사의 경봉스님을 이사장으로 1946년 불교혁신 연맹을 조직하셨습니다. 1953년부터는 왜색불교 청산을 위해 불교 정화운동을 주도하셔서 마침내 불교 정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큰스님의 저서 ‘한국불교 근세 100년’(중앙일보사 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불교혁신운동과 정화운동을 주도했던 큰스님은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앞장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으니 이른바 94년 종단개혁과정에서는 개혁회의 의장을 맡아 종단개혁을 손수 지휘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이처럼 현 조계종의 역사의 현장에서 항상 중요한 위치에서 바른 길을 제시하셨기에 현대 한국불교의 산 증인이라고 일컬어지고 계십니다.평생 포교에 헌신하시다.석주 큰스님은 종단이 아직 어린이 포교에 역량을 투입하지 못했던 1965년에 칠보사에 어린이회를 창립하시어 어린이 포교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으며 1966년에는 대한불교청소년 교화연합회 고문, 1970년 동회의 총재를 역임하시는 등 청소년 포교에도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총무원장으로 재직하시던 1975년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하여 오늘날 부처님 오신 날을 모든 국민이 경축하게 하도록 만드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큰스님의 이러한 포교의 원력으로 1977년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을 역임하신바 있고 평생 청소년 교화와 경전의 한글화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제 2회 포교대상을 수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또한 후학들의 양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으니 1980년 중앙승가대학 초대 학장, 1988년 동 대학 명예학장을 역임하시면서 현대식 승가교육의 정착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습니다.만년에도 큰스님께서는 칠보사와 봉은사의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불자대중들의 교화에 매진하셨습니다. 1997년 부터는 큰스님과 같은 연배인 노인들의 복지를 위하여 온양 보문사에 불교사회복지 시설인 안양원을 설립하시어 외로운 노인들의 노년을 위한 복지사업에 매진하셨습니다. 이처럼 큰스님은 실로 평생동안 포교활동에 헌신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석주(昔珠)당 정일(正一) 대종사(大宗師) 연표 1909년 3월 4일 : 경상북도 안동군 북후면 옹천마을에서 강대업씨와 유정각화씨를 부모로 5형제 중 둘째로 출생 1923년 : 남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선학원에서 6년간 행자 생활 1928년 : 범어사에서 남전스님을 은사로 득도 1933년 : 범어사 불교전문 강원 대교과 졸업 1936년~1939년 :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마하연사,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에서 효봉, 해산, 해암스님 등과 함께 안거 성만 1946년 : 6월 민족불교개혁을 위한 불교혁신연맹을 경봉・용담・대의・석기스님등과 함께 조직, 불교개혁에 앞장 섬 1949년 :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받음 1953년 : 10월 효봉・동산・금호・청담・자운스님등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을 위한 촉구 결의를 선학원에서 가짐 1954년 : 5월 30일 대의・종익・재열・정영스님들과 불교정화운동 발기 1958년 : 대한불교 조계종 제 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 1959년 : 범어사에서 대덕법계 품수 1960년 : 5월 20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6회 임시 중앙 종회를 개최, 불교정화 사태수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1961년 :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운허스님과 함께 현 동국역경원의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하여 불교경전 역경 1963년 ~ 1966년 : 출가스님과 재가신도들의 종단운영을 위한 청담・ 석호・ 운허・경산스님등과 기획위원회 구성 1969년 : 사회사업후원회 발족, 동국역경원 부원장,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주지 1970년 : 대한불교청소년 교화연합회 총재 1971년 :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총무원장 1976년 : 대한불교조계종 제 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1977년 :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1978년 :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총무원장 1980년 : 중앙승가대학 초대학장 1983년 : 비상종단운영회의 발족, 부의장 겸 상임위원 1984년 : 대한불교조계종 제23대 총무원장 1988년 : 중앙승가대학 명예학장 1989년 : 동국역경사업 진흥회 이사장 1994년 : 대한불교조계종 개혁회의 의장 1995년 : 동국역경원 한글팔만대장경 역경사업 후원회 회장 충남 온양 금병산 보문사에 불교사회복지시설 안양원 건립 현 :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대종사) 온양 보문사 불교사회복지관장 대한불교조계종 칠보사 조실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조실
2004-11-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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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종정예하 법어,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 영결사 발표
석주(昔珠)당 정일(正一)大宗師 圓寂 대한불교조계종 도림 법전 종정예하 법어 발표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 영결사 발표 대한불교조계종 도림 법전 종정예하는 석주(昔珠)당 정일(正一)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하며 법어를 발표하였으며,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은 영결사를 발표하였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그리도 반짝이던 북두성(北斗星)이 간밤에 빛을 잃고 사라지고 오늘 이 아침에는 금정산(金井山)이 검게 물들어 제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삼라대지(森羅大地)가 허희탄식(歔欷歎息)으로 일조(日照)를 맞이했습니다.”라며 석주(昔珠)당 정일(正一)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하였습니다. 석주(昔珠)당 정일(正一)대종사의 영결식은 오는 11월 18일, 오전 11시, 범어사 보제루에서 봉행됩니다. 宗 正 法 語 어젯밤 금풍金風이 낙엽落葉을 쓸고 지나가더니우리 종문宗門의 마지막 선지식善知識이셨던 석주 큰 스님께서말후구末後句를 보였습니다.비록 사대四大를 탈각脫殼하고 환귀본처還歸本處 하셨지만범부凡夫와 성인聖人에 두루 통하는 만고萬苦에 불변不變한노화상老和尙의 진면목眞面目은 우리 눈앞에 드러나 있습니다.견문각지見聞覺知를 거두었지만 그 신령神靈스러운 면목面目은오고감이 없이 생사자재生死自在한 묘용妙用을 갖추어시방법계十方法界에 가득합니다.나지도 멸滅하지도 않고 시종始終이 없는 그 신령神靈함은일찍이 불조佛祖도 얻지 못했고 중생衆生도 찾지 못했습니다.찾으려고 하면 은산철벽銀山鐵壁이요,얻으려고 하면 당처當處를 떠나지 않았습니다.삼라만상森羅萬象이 노화상老和尙의 법신法身이요,일체음색一切音色이 노화상老和尙의 법음法音입니다.이렇게 불사의不思議한 능력能力과 묘용妙用을 갖춘노화상老和尙의 면목面目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구求해도 얻지 못하고 버려도 떠나지 않는 그 소소영영昭昭靈靈함이지금 우리 곁에 있습니다.고명력력孤明歷歷 한 그 주인공主人公은 곳곳마다 서로 다르나 보기 어렵고때때로 함께 가지만 흔적이 없습니다.생사生死와 열반涅槃, 어디에도 구속拘束되지 않고시시처처時時處處 당당하여 가고 머무는 자취가 없습니다.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살았다면 니불泥佛이 바다를 건널 것이요죽었다면 로지백우露地白牛가 드러나 있습니다.노화상老和尙이 본래 갖추어 있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생사의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당처當處를 떠나지 않은 본분本分자리에서 나고 죽음을 말한 자는야차夜叉의 칼날을 피避하기 어려울 것입니다.이 세상에 머물렀던 선지식善知識 한 분이 오늘머리도 끝도 없는 본분철추本分鐵鎚를 한번 치니천지天地가 뒤집히고, 곳곳에 무생無生의 관문關門이 열립니다.이것이 노화상老和尙이 우리에게 보인 말후구末後句입니까!시방법계十方法界 중생衆生들의 생사를 얽매는 소식消息입니까!會麽(알겠는가!)來無所來也요去無所去也로다瞥轉之 玄關하면佛祖罔措也로다와도 오는 것 없고가도 가는 곳 없나니문득 이 경지境地마저 벗어나면불조도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佛紀2548年 11月 18日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法傳 永 訣 辭 산과 들에 金風이 가득하더니 이제 落葉이 凋落하고森羅萬象의 本體가 드러나고 있습니다.스스로 떨쳐 버릴 것 모두 버리고 虛通空寂하여神靈스런 빛이 곳곳에 充滿하고 物件마다 眞如를 나툽니다.自然은 이처럼 덜고 닫는 것을 自在하여 때로는 無言으로 說하고때로는 良久를 하여 우리에게 末後句를 보입니다.昔珠 큰스님!어느 世界로 出離하셔서 이처럼 깊고 寂寞합니까?스님이 남기신 寂滅이 깊고 고요하여 眞容을 뵈올 수가 없고마음으로도 그 境地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面前에서 걸림없이 出入하던 無位眞人은 어디로 갔습니까?보고 듣고 말하던 見聞覺知를 거두시고 還歸本處하시니日月은 빛을 잃고 四部大衆은 가슴이 무너집니다.一生동안 縱橫無盡하고 가는 곳마다 慈愛함을 보이었던 그 主人翁의一機一景을 보지 못해 四部大衆은 슬픔에 잠겼습니다.昔珠 큰 스님!스님이 이룬 寂滅의 分上에 어찌 오고감이 있고 始終이 있을 수 있으며生死의 出沒이 있겠습니까?다만, 無生法界에 태어나서 우리와 같이 사바에 머무신 것은生死自在한 法身의 妙用을 보이신 것입니다.큰 스님!여기 모인 四部大衆을 위해 用無生死의 本分消息을 보이시고,평소 우리에게 보였던 仁慈한 그 眞相을 한번 나투십시오.그렇지 않으면 格外之機로 石女가 노래를 부르고 木人이 點頭하는 眞理로저희들의 迷惑을 일깨워 주십시오.큰 스님!스님께서는 일찍이 우리 宗門에 歸依하여 涅槃에 드실 때까지雲水家風을 저버리지 않았고 直指一念으로 無生法印을 깨달아用無生死의 삶을 사셨고 佛祖慧命을 傳承하여 이 땅의曹溪禪門을 빛낸 눈 밝은 善知識이셨습니다.그리고 큰 스님께서는 譯經과 布敎에 남다른 關心과 願力을 가지고부처님 經典을 飜譯하는데 貢獻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布敎에 心血을기울여 부처님 敎理로 밝은 心性을 깨닫게 하였습니다.오늘날 한글 大藏經은 스님의 손을 거치지 않은 經典이 없습니다.이렇게 스님은 衆生의 根機에 따라 마음을 열고 닫을 줄 아는 눈 밝은 우리宗門의 宗匠이었고 法施의 門을 넓히고 傳燈의 불꽃을 이어서 甘露法門으로衆生의 마음을 비옥케한 萬行菩薩이었습니다.큰 스님!큰 스님께서는 一切事에 걸림이 없고 理事無碍한 機用을 항상 보였습니다.譯經과 布敎에 專念하시다가 宗團에 부름이 있으면 總務院長職을 맡아亂麻와 같이 어지러웠던 宗團의 內紛을 收拾하고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우리에게 出家의 本分을 보이신 분이 바로 큰 스님입니다.스님께서는 비록 山에 들어가지 않아도 解脫의 門을 열고生死를 떠난 도리를 보였고 곳곳에 諸佛의 道業을 일으켜法界를 윤택케하였습니다.이제 큰 스님의 慈愛스런 眞容과 法音을 어디서 뵙고 들어야 합니까?참으로 스님에게 歸依하여 解脫의 根本을 깨닫고 實利를 얻는 사람들의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스님 속히 사바에 돌아오셔서 이 땅의 迷惑한 衆生을 救濟하소서. 佛紀 二五四八年 十一月 十八日 大韓佛敎 曹溪宗 元老會議 議長 宗山 合掌 追 悼 辭 석주당 정일(昔珠堂 正一) 큰스님!그리도 반짝이던 북두성(北斗星)이 간밤에 빛을 잃고 사라지고 오늘 이 아침에는 금정산(金井山)이 검게 물들어 제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삼라대지(森羅大地)가 허희탄식(歔欷歎息)으로 일조(日照)를 맞이했습니다. 생사거래(生死去來)가 불이(不二)하고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며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法則)을벗어나지 못하고 무릇 생(生)하는 것은 멸(滅)하는 것이 실상(實相)입니다.오늘 큰스님께서 팔십 한 해나 굴리시던 옛 구슬을 멀리 동해(東海)에 던지시고 원적(圓寂)을 보이신 것은 부처님이나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참모습을 시현(示顯)하신 것입니다.열반송(涅槃頌을) 묻는 시자에게 “따로 말이 필요 있나. 이미 부처님께서 열반송으로 말씀하셨다”라고 대변(代辨)하심은 불조혜명(佛祖慧命)을 이어 받아오신 삶의 결정체(結晶體)요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심지(心地)를 보이심입니다.하오나 95세의 세납(歲臘)과 81세의 법랍(法臘)만큼 많은 세월 속에서 자애(慈愛)로우신 덕화(德化)를 입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큰스님을 영결(永訣)하려고 함에 아득히 깊은 가슴 저 밑에서 솟구치는 아쉬움이 유인(幽欭)으로 몸부림치고 동래포구(東萊浦口)는 눈물로 넘치고 있습니다.석주당 정일 큰스님!큰스님께서는 일찍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당대(當代)의 선지식(善知識)이시며, 서울의 선객(禪客)의 중심도량(中心道場)인 선학원(禪學院)을 창건(創建)하셨던 남전광언(南泉光彦) 대화상(大和尙)을 은사(恩師)로 출가(出家)하신 이래 당시(當時)의 대선승(大禪僧)들을 모시고 구도일로(求道一路)를 걸어오셨습니다.21세에 범어사 불교강원(佛敎講院) 대교과(大敎科)를 이수(履修)하신 이후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마하연,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로써 20대에 선교양문(禪敎兩門)을 두루 섭렵하시고, 광복(光復) 이후 어지럽고 혼탁했던 한국불교를 올바른 반석 위에 올려놓으시기 위해 전력을 쏟으셨습니다.46년 왜색불교(倭色佛敎)의 퇴치와 새로운 한국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불교혁신운동(佛敎革新運動)을 주도(主導)하신 것을 필두(筆頭)로 불교정화운동(佛敎淨化運動), 그리고 불교정화사태수습(佛敎淨化事態收拾)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非常對策委員會)의 발족(發足) 등 실로 한국불교의 기초(基礎)를 세우시는 일에 선봉장(先鋒將)이셨습니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가 어느 정도 안정(安定)의 궤도(軌道)를 이루었을 때 미래 한국불교의 기둥이 될 청소년(靑少年)과 어린이의 선도(善導)와 교화(敎化)가 급선무(急先務)라고 생각하셨던 스님은 주저 없이 이 일에 앞장서셨고, 한글세대를 예측하시고 팔만대장경의 우리말 사업에 역점을 두시어 운허(耘虛) 스님 등과 더불어 역경사업(譯經事業)에 진력(盡力)하셨습니다.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큰스님의 업적은 극천(極天)하고 광대(廣大)하여 후학들이 보기에 스님께서는 가히 우리 조계종단의 큰 기둥이셨으며 주인이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큰스님께서 우리 종단사(宗團史)에 비추이신 대업(大業)은 후세에 길이 빛날 것이지만 그 같은 업적(業績)보다 더 큰스님을 추앙하고 존경하는 것은 수행의 기풍(氣風)으로 근엄(謹嚴)하시면서도 원만(圓滿)하신 자비행(慈悲行)을 실천하신 것입니다.특히 말년에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의 차별(差別)을 두지 않고 온양 온천에 노인복지시설을 갖추어 회향하려 하셨음은 불타행(佛陀行)을 보이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제 큰스님께서 사바의 인연(因緣)을 뒤로 하고 원통광명법계(圓通光明法界)로 떠나시려 하십니다. 아직도 투생(偸生)하는 중생들은 갈 바를 몰라 제자리에 서 있지도 못합니다. 마지막 자비를 베푸시어 오유지족(吾唯知足)의 모습을 보여주소서운래기접금정장(雲來氣接金井長) 하니월출한통설백산(月出寒通雪白山) 이라구름기운 내려와 금정산에 이어지고차가운 달빛은 솟아 흰 설산에 통했도다석주당 정일 큰스님!다시 한번 사바의 중생을 어여삐 여기사 여여(如如)한 모습으로 다시금 우리 곁에 오시옵소서.삼가 각령 전에 향 사루옵고 정례하옵나이다. 불기 2548년 11월 18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 장
2004-11-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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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당 정일 대종서 원적,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각계 조사 이어져..
석주당 정일 대종서 원적,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각계 조사 이어져.. 석주당 정일대종사의 영결식에 즈음하여 각계의 조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조사를 통해“‘모든 것이 욕심에서 시작하니 서로 용서라고 화합하면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스님의 가르침은 값진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며석주 큰스님의 원적을 애도하였습니다. 또한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도형스님,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부영 열린우리당 당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허남식 부산광역시장, 박수관 범어사 신도회장 등이 조사를 보내와 석주당 정일 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하였습니다. 弔 辭 석주 큰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며 석주당 정일 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합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의원을 역임하신 석주 큰스님은 모든 불자들의 덕 높으신 스승님이셨습니다. 큰 스님께서 평생을 바쳐 이룩해 오신 역경불사와 불교 혁신, 청소년 포교, 중앙승가대학 설립 등은 우리나라 현대불교를 바로 세우는 토대로 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욕심에서 시작하니 서로 용서라고 화합하면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스님의 가르침은 값진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거듭 석주 큰 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며, 우리를 일깨우신 높은 공덕을 기립니다. 2004년 11월 18일 대통령 노무현 ----------------------------------------------------------------------------- 弔 辭 현대 불교의 大宗匠이며 修行과 布敎의 龜鑑이신 昔珠堂 正一 大宗師님 누구보다도 天眞無垢한 도인이셨던 큰 스님의 영정 앞에 서니 순수를 잃어 가는 오늘의 세태에서 어쩌면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남은 天眞道人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천지가 어두워 보이기만 합니다. 일찍이 큰 스님께서는 선학원에서 남전 大禪師를 은사로 득도하신 후, 상원사 한암 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시작해 금강산 마하연,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수선안거를 성만하셨습니다. 불국사 주지와 선학원 이사장을 지내시며 理判의 禪機를 보이셨으며, 은해사 주지,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하시며 理事의 無碍함을 또한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큰 스님께서는 理事를 달관하고 隨處作主의 광활한 덕목을 체득한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이시어 저희에게 本分宗師의 正道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하셨던 큰 스님께서 홀연히 생사의 경계를 넘어가시니 저희들은 큰 스님의 뜻은 알겠으나, 길을 바로 가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대종사님의 智慧가 계시기에 어둠 속에 등불을 볼 수 있었으며, 대종사님의 慧眼이 계시기에 밝은 눈을 열어 모든 正道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오늘 큰 스님을 永訣하면서 千秋의 後悔가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왜 진작 큰 스님을 번듯한 會上으로 모셔서 더 많은 甘露法門을 청하지 못했던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四大는 원래 주인이 없고, 五蘊 또한 본래 空한 것이기에, 저희들은 큰 스님의 幻身을 뵙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이만 붙들고자 합니다. 昔珠堂 正一 큰 스님 이제 迷惑을 끊고 菩提를 성취하셨으니, 大解脫, 大自由의 삶을 누리옵소서. 큰 스님의 德化에 感泣하며 향을 사르옵니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도형 분향 --------------------------------------------------------------------- 弔 辭 - 昔珠堂 正一 大宗師 영결식 / 2004. 11. 18(목) 범어사 - 존경하는 석주당 정일 대종사님! 대종사님께서 갑작스럽게도 세연을 다하시고 원적하셨다는 부음에 슬픈 마음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 나라 이 중생들을 위해서 베푸실 일들이 아직도 많은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그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만 느껴집니다. 대종사님께서는 1923년 출가하신 이래 평생을 청정수행으로 일관해 오시면서 조계종 총무원장과 포교원장, 중앙승가대학교 초대학장 등을 역임하시며 ‘현대 한국불교의 산증인’으로 활동해 오시면서도 역경불사와 불교정화, 사회복지, 어린이ㆍ청소년 포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1961년 현 동국역경원의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해 역경불사에 활력을 불어 넣어셨으며, 1964년 동국역경원 설립 이후에는 운허 스님과 함께 한글 대장경 편찬사업에 착수, 318권의 ‘한글 대장경’을 완간하셨습니다. 또한 큰 스님께서는 불교혁신운동을 일으키시고, 왜색불교 청산을 위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셨으며,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정법 수호에 앞장서 오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며칠 전 제자들에게 “부처님 열반경이 임종게이거늘 어찌 임종게를 남기겠는가. 사리도 수습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이보다 더한 임종게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바세계 중생제도를 위해 마지막까지 큰 방편을 베푸신 대종사님의 은덕에 새삼 가슴을 여미게 됩니다. 대종사님의 크나큰 법덕을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마는 깊은 존경심과 한없는 그리움으로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공덕을 기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제 큰스님께서 사바세계를 벗어나 대해탈, 대자유의 피안으로 가시기에 큰 슬픔을 뒤로한 채, 옷깃을 놓아드리오니 부디, 덕화의 향기는 우리 곁에 남아 중생을 제도해 주시오소서.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추모의 향을 사르며, 합장 올려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비옵니다. 불기2548년 11월 18일 문화관광부장관 정 동 채 ---------------------------------------------------------------------------- 弔 辭 석주당 정일 대종사님! 아직도 사바세계에는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중생들은 여전히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돌연하게 입적하시면 어이합니까? 이 땅의 불교와 민족의 앞길이 천리나 멀고, 중생의 제도와 불자 대중의 길이 만리나 먼데, 어찌하여 큰 스님마저 훨훨 떠나시려 합니까? 우리 불교의 산역사이시자 산증인이셨던 스님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크고, 그윽했던 스님의 눈길이 너무도 그리워 갈 길 잃은 대중들은 지금 막막하기만 합니다. 때 아닌 겨울 삭풍이 불어오고 세상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이젠 무엇보다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 시급하다”며 “불교의 화합정신이 그 첩경이 될 것”이라고 예지해 주셨던 스님께서 그 위업을 손수 마무리해 주시지 못하시니 아쉽기가 그지없을 뿐입니다. 큰 스님께서는 삼천리 금수강산이 일제에 침탈당했던 조국에 태어나 산문에 드신 후,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일제에 서 해방된 후에는 왜색불교 청산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을 벌이셔서 한국불교의 위상을 굳건히 하셨고,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앞장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총무원장으로 재직하시면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온 국민이 축복할 수 있도록 공휴일로 지정되게 하셨고, 또한 평생동안 포교에 헌신하시며 높은 학덕과 불법의 오의로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특히 미욱한 우리 중생들이 부처님을 보다 가까이 모실 수 있도록 평생을 바쳐 역경불사에 힘쓰시며, 한글대장경을 완간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디 큰 스님의 거룩하셨던 행장을 감히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황망하고 그리운 마음이 사무쳐 잠시 반추해 봅니다. 석주 큰 스님! 스님께서 홀연히 이승을 떠나가시지만, 스님이 가시면서 남기신 뜻은 슬픔만이 아님을 우리는 또한 알게 됩니다.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사부대중들이 상생하고 화해하여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가르침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육신은 가시지만, 자오자중의 삶을 사셨던 큰스님의 가르침과 자비의 실천은 영원한 법신이 되어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평화와 안정과 번영이 깃드는 한반도를 만들고 큰스님의 유업인 남북통일을 기필코 이루어내겠습니다.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삼가 추모의 향을 사르며, 합장 올려 극락왕생을 비옵니다. 불기 2548년 11월 18일 열린우리당 당의장 이부영 분향 ---------------------------------------------------------------------- 弔 辭 석주당(昔珠堂) 정일(正一) 대종사님! 큰 스님께서는 죽음이란 본래 없는 것이며, 나고 죽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라고 하셨지만, 혼탁한 세간의 정신적 등불이셨던 큰 스님을 이처럼 홀연히 떠나보내는 저희들의 황망함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한 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혼돈과 갈등의 정점에서, 우리 시대의 커다란 사표(師表)이셨던 큰 스님을 여의는 우리들은 새삼 큰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되새겨보게 됩니다. 큰 스님께서는 “소나무 같은 지조로 자신을 깨끗이 하고, 물에 담긴 달처럼 마음을 비우라”(霜松潔操 水月虛襟) 하시면서 시류와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탐심으로 인생을 망치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경책(警策)하셨습니다. 참으로 높으신 가르침에 부끄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큰 스님께서 가신 지금, 이제 어느 스승에게서 그처럼 지혜(智慧)와 덕망(德望)을 갖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불교계의 선맥(禪脈)을 이어오신 큰 스님께서는 일찍이 종단에 투신하시어 불교 혁신과 중흥에 앞장서셨습니다.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앞장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평생 역경불사(譯經佛事)의 원력을 세우셔서 경전의 한글화에 힘쓰심으로써 이 땅의 불자들에게 진리의 빛을 열어 주셨고, ‘부처님 오신 날’을 지정하도록 하기도 하셨습니다. 석주 대종사님! 현대 한국불교의 ‘산 증인’이자 ‘정신적 지주’이셨던 큰 스님께서 팔십여 년의 수행참구(修行參究)를 통해 몸소 꽃피워 오신 상생화합(相生和合)와 원융무애(圓融無礙)의 가르침을 이제 저희가 소중히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한 진정한 개혁을, 원칙과 경륜이 존중되는 안정과 번영의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겠습니다. 오늘 이처럼 저희들의 애절함 속에 큰 스님의 법구(法軀)는 한 줄기 연기로 화하지만, 큰 스님께서 남겨주신 지혜복덕(智慧福德)은 언제나 사부대중의 가슴 속에 불성(佛性)의 씨앗으로 움틀 것입니다. 큰 스님께서는 가셨지만 평소의 가르침은 점점 무게를 더하여 우리의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추모의 향을 사르며, 부디 대자유를 누리시고, 큰 빛으로 다시 오시길 비옵니다. 불기 2548년 11월 18일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박 근 혜 분향 ---------------------------------------------------------------------------- 대한불교조계종 석주 큰스님 영결식 弔辭 대한불교 조계종의 원로이시며, 한국 현대불교의 산 증인이신 석주 큰스님의 열반에 400만 부산시민을 대표하여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큰 스님께서는 일찍이(1928년) 범어사에서 득도하신 후 평생 역경에 대한 원력을 세우시고 현 동국역경원의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하여 역경사업에 진력하신 결과 오늘 날 이 땅의 불자들에게 한글대장경이라는 진리의 빛을 열어 주셨으며, 1946년에는 불교연맹을 조직하여 왜색불교 청산과 불교정화 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상 바른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앞장서신 현대 한국불교의 산증인으로 일컬어지고 계십니다. 만년에도 큰스님께서는 칠보사와 봉은사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외로운 노인들의 복지를 위하여 온양 보문사에 사회복지법인 안양원을 설립하여 복지사업에 매진하시는 등 평생을 포교활동과 사회봉사활동에 헌신하여 오셨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스승과 어버이를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요즘처럼 세상이 혼탁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지혜로운 눈을 가지신 석주 큰스님과 같은 스승들의 가르침이 절실해집니다. 이제 큰스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 나셨지만 스님께서 남기신 지혜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될 것입니다. 큰스님 나심도 중생을 위함이요, 열반에 드심도 밝은 대각(大覺)의 큰길을 저희에게 일러주심이라 믿습니다. 큰 스님의 지혜가 메마른 대지에 꽃비 되어 내리듯, 이 땅에 다시 왕림하시어, 오늘 이 추도의 자리가 큰 스님과 저희가 다시 만나는 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석주 큰스님, 부디 모든 중생에게 광명으로 다시 오소서 2004. 11. 18 부산광역시장 허 남 식 ---------------------------------------------------------------------- 弔 辭 고요히 적정열반에 드신 석주당 정일 대종사님! 큰스님의 입적에 사부대중은 애통한 마음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저희들을 위하여 이끌어주실 일들이 아직도 많으신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니 그 그늘과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만 느껴집니다. 큰스님께서는 한국불교의 발전과 중생교화를 위해 일생을 정진하여 오신 굳건한 푸른 거목이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1923년 선학원에서 남전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시어 1928년 이 곳 범어사에서 득도하시고, 1933년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신 이후 지금까지 올곧은 수행과 정진으로 일관하신 고귀하신 선승 1세대이셨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1958년 불국사 주지를 시작으로 1961년 선학원 이사장, 1977년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1971년과 1984년 조계종 총무원장 역임 등 종단행정에 두루 관여하신 한국불교의 산증인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 중앙승가대 초대학장, 1989년 동국역경사업 진흥회 이사장,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을 거쳐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맡으시면서 종단의 위기 때마다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종단을 부종수교해오신 청정납자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큰스님께서는 노인복지와 청소년교화, 어린이 양성에 주력하시면서 역경불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어, 현 동국역경원의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하여 열반경, 법화경, 유마경, 육조단경, 현우경, 선가귀감 등을 번역 출판하고, 부모은중경, 목련경, 우란분경 등을 직접 번역하셨습니다. 이어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된 이후에는 한글대장경 편찬사업을 시작하시어 37년만인 지난 2002년, 318권의 한글대장경 완간이라는 한국 불교에 큰 초석이 될 역사적인 불사를 이루어내셨습니다. 끝도없는 큰스님의 법덕을 어찌 몇 마디의 필설로 다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깊고 깊은 애도의 마음과 한없는 그리움으로 큰스님의 공덕을 다함께 기리고자 합니다. 삼천대천세계를 유유자적 오고감이 없으시고 생사없음을 보이신 큰스님의 모습에 저희들은 다만 유구무언입니다. 대적정열반에 드신 큰스님! 다시 큰 빛으로 돌아오시어 어리석은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큰 스님 가시는 길 부디 평안하시길 두 손 모아 분향 올립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14교구ㆍ본사 범어사 신도회장 박 수 관 합장
2004-11-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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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원로 석주스님 14일 오후 입적
한국불교 원로 석주스님 14일 오후 입적 18일 범어사서 원로회의장 봉행 석주스님은 1909년 경북 안동 북후면 옹천마을에서 출생했으며, 1923년 남전스님을 은사로 선학원에 출가했다. 1928년 6년 행자생활 후 범어사서 득도한 후 1933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졸업했다. 1936년 상원사 한암스님 회상에서 안거했으며, 이후 1937년 금강산 마하연사,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1940년 부산동래 금정선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1958년 11교구 불국사주지와 1961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1965년 칠보사 어린이회를 창립, 한국 현대불교의 어린이 포교에 큰 족적으로 남겼다. 1969년 동국역경원 부원장으로 추대돼 역경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66년에는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고문 등 청소년 포교에도 매진했다. 1971년 제7대 조계종 총무원장과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1976년 10교구 은해사주지를 역임했다. 1977년에는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을 역임했으며, 1979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다. 1984년 조계종 총무원장, 1990년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 1994년 종단 개혁시에는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동국역경원 후원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포교와 수행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현재는 서울 봉은사 조실이다.
2004-11-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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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사 대웅보전 봉안 '통일부처님' 이운식 가져
신계사 대웅보전 봉안 '통일부처님' 이운식 가져 대한불교조계종 금강산 신계사 복원추진위원회는 지난 11월 10일 오전 10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에 봉안될 "통일부처님" 이운식을 봉행하였습니다. 오는 11월 20일 금강산 신계사 대웅전 낙성식에 즈음하여, 금강산 신계사 대웅전에 모셔질 ‘통일부처님’ 이운식은 제165회 정기중앙종회 회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과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의 학담스님, 총무부장 무관, 사회부장 지원, 신계사 불사도감 제정 스님 등 20여 스님이 참석해 불상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번 신계사 대웅전에 봉안될 ‘통일부처님’은 지난 1996년 조성되어 총무원 구청사 1층에 모셔졌던 부처님으로 그동안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통일부처님"은 높이 88㎝ 폭 68㎝이며, 좌대는 높이 36㎝ 폭 96㎝ 금동석가모니불 좌상입니다. 한편, 이날 이운식을 가진 "통일부처님"은 11월 11일 북한으로 보내진 후, 11월 10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열리는 대웅전 낙성식 때 대웅보전 법당에 모셔질 예정이며, 오는 2005년 신계사에 모셔졌던 부처님 원형대로 복원하여 새로이 부처님을 모실 예정이며, 그 이후에는 다시 교체되어 돌아올 예정이다.
2004-11-10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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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중앙종회 후반기 의장단 및 각 상임 분과위원
제13대 중앙종회 후반기 의장단 및 각 상임 분과위원 11월 3일 제165회 중앙종회를 개원하였습니다. 당일에 새의장단이 선출되었고, 4일 오전10시 각상임분과위원 구성과 분과위원장이 선출 되었습니다. 의장단 및 각상임분과위원은 아래와 같습니다. 3일 중앙종회 의장, 부의장을 선출하고 상임위원회를 구성한 조계종 중앙종회는 4일 오전 10시에 속개해, 7개 상임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을 선출했다. - 제13대 중앙종회 후반기 의장단 및 상임분과위원회 명단- 구분 위원장 수행이력 의장 법등 - 법명 : 법등(法燈) - 출생 : 1948년생 - 은사 : 녹원스님 - 본사 : 직지사 - 수계 : 1961년 직지사에서 녹원스님으로부터 사미계수지 1974년 직지사에서 고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수지 - 이력 : 1969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83년 비상종단 운영위원 역임 1984년 총무원 총무국장, 조계사주지 역임 1988년~현재 도리사주지 1988년~현재 중앙종회의원(9 ~ 13대) 1998년~2000년 제12대전반기 중앙종회의장 역임 2004년 11월 제13대 후반기 중앙종회 의장 수석부의장 장주 - 법명 : 장주(嶂洲) - 출생 : 1949년생 - 은사 : 월산스님 - 본사 : 법주사 - 수계 : 1960년 법주사에서 월산스님으로부터 사미계수지 1970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수지 - 이력 : 1974년 법주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79년 용암사주지 역임 1984년 신륵사주지 역임 1986년 오어사주지 역임 2000년 임허사주지 역임 2004년 11월 제13대 후반기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차석부의장 원택 - 법명 : 원택(圓澤) - 출생 : 1944년생 - 은사 : 성철스님 - 본사 : 해인사 - 수계 :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으로부터 사미계수지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수지 - 이력 : 1967년 연세대 정외과 졸 1992년 제10대 중앙종회의원 역임 1999년 ~ 2002년 총무원 총무부장 역임 1987년 ~ 현재 장경각 발행인 2004년 11월 제13대 후반기 중앙종회 차석부의장 사무처장 법진 - 법명 : 법진(法眞) - 출생 : 1960년생 - 은사 : 도영스님 - 본사 : 금산사 - 수계 : 1980년 금산사에서 월주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수지 1983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수지 - 이력 : 1983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94년 ~ 1996년 총무원 감사국장 역임 구분 위원장 간사 상임분과위원 명단 총무분과 위원회 (15명) 영배 효림 일면, 영담, 종광, 선광, 원담, 도각, 원정, 상운, 정호, 정안, 현공, 토진, 강혜원 교육분과 위원회 (8명) 진구 도완 지하, 정인, 지욱, 본각, 흥륜, 서혜원 포교분과 위원회 (8명) 지현 도후, 장주, 지홍, 설송, 광조, 계호, 정성 사회분과 위원회 (8명) 학담 지만, 종열, 법경, 이암, 일화, 일문, 수현 재정분과 위원회 (15 명) 장적 정문 장윤, 자승, 인행, 원행, 향적, 종훈, 월우, 법광, 성월, 정광, 보경, 초격, 경륜 호법분과 위원회 (15명) 종삼 의연 진만, 장곡, 법보, 탄우, 무이, 선각, 지준, 성직, 무자, 성국, 도문, 혜림, 운달 법제분과 위원회 (10명) 동광 정도 정휴, 중원, 혜승, 법안, 법조, 보선, 원택, 도문(비)
2004-11-04 2,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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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등스님 중앙종회 의장에 당선(부의장:장주, 원택스님)
법등스님 중앙종회 의장에 당선 수석부의장: 장주스님 차석부의장: 원택스님 1.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는 불기2548(2004)년 11월 3일 제165회 중앙종회를 개원하여 제13대 중앙종회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 하였습니다. 2. 중앙종회 의장에는, 법등스님, 수석부의장에 장주스님, 차석부의장에 원택스님이 선출 되었고, 사무처장에 법진스님을 선출 하였습니다 새의장단 프로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의장 법등스님 - 법명 : 법등(法燈) - 출생 : 1948년생 - 은사 : 녹원스님 - 본사 : 직지사 - 수계 : 1961년 직지사에서 녹원스님으로부터 사미계수지 1974년 직지사에서 고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수지 - 이력 : 1969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83년 비상종단 운영위원 역임 1984년 총무원 총무국장, 조계사주지 역임 1988년 ~ 현재 도리사주지 1988년 ~ 현재 중앙종회의원(9 ~ 13대) 1998년 ~ 2000년 제12대 전반기 중앙종회 의장 역임 2004년 11월 제13대 후반기 중앙종회 의장 ○ 수석부의장 장주스님 - 법명 : 장주(嶂洲) - 출생 : 1949년생 - 은사 : 월산스님 - 본사 : 법주사 - 수계 : 1960년 법주사에서 월산스님으로부터 사미계수지 1970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수지 - 이력 : 1974년 법주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79년 용암사주지 역임 1984년 신륵사주지 역임 1986년 오어사주지 역임 2000년 임허사주지 역임 2004년 11월 제13대 후반기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 차석부의장 원택스님 - 법명 : 원택(圓澤) - 출생 : 1944년생 - 은사 : 성철스님 - 본사 : 해인사 - 수계 :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으로부터 사미계수지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수지 - 이력 : 1967년 연세대 정외과 졸 1992년 제10대 중앙종회의원 역임 1999년 ~ 2002년 총무원 총무부장 역임 1987년 ~ 현재 장경각 발행인 2004년 11월 제13대 후반기 중앙종회 차석부의장
2004-11-03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