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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2020)년 총무원장 원행스님 경자년 신년사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풍요를 상징하는 쥐의 해를 맞이하여 희망한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현재 우리는 단절과 소통 부재의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장벽이 더욱 두터워져 가고 있습니다. 독선과 불통으로 시작된 극한 대립은 멈출 줄 모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새해에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리면서 주변을 살피는 여유를 가집시다. 슬기로운 우리 국민은 어려운 국면일수록 단결하여 지혜와 화합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온 저력이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서로의 행복을 응원하여 온 세상에 부처님의 자비가 현현하는 한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불자여러분! 기해년 열심히 달려오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었는지 돌아봅시다. 새해에는 아집과 욕심을 내려놓고 청정한 수행과 성찰을 통해 희망의 새해를 향해 나아갑시다. 자기의 이익만을 찾지 마시고 이웃에게 베풀며 함께 기뻐합시다.   경자년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대립이 극복되고 사회가 하나 되며 가정에 행복이 만개하는 한해가 되길 소원합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여러분이 계획한 많은 일들이 온전히 성취되기를 바라며,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불기2564(2020)년 1월 1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 행
2019-12-24 3,110
1705
불기2564(2020)년 종정예하 진제 법원 대종사 신년법어
庚子年 大韓佛敎曹溪宗 宗正猊下 新年法語   새해아침 복(福)을 여는 즈음에 그 가운데 부처님의 진리(眞理)가 있느냐, 없느냐?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것이 새해에 복을 여는 것이냐?   집집마다 아이들은 색동옷을 입고 뛰어 놀고 어른들은 사랑방에서 서로 술잔을 건냄 이로다.   경자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금일 아침 떠오르는 밝은 태양(太陽)의 빛이 번뇌를 지혜로 바꾸고, 무명(無明)을 깨달음으로 바꾸는 전신(轉身)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진여법계(眞如法界)에는 만덕(萬德)이 갖추어져 있으니, 수용(受用)과 묘용(妙用)이 자재(自在)합니다. 내가 그대로 우리가 되고, 이기심(利己心)이 그대로 이타심(利他心)이 되며, 아만심(我慢心)이 그대로 자비심(慈悲心)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를 깨닫고 보면 세간법(世間法)과 불법(佛法)이 둘이 아닙니다. 진리의 광명(光明)은 항상 시방세계를 비추니 나와 남이 원래 없으니 옳고 그름이 원래 없습니다. 밝음 가운데 어둠이 있고 어두움 가운데 밝음이 있으니 밝음과 어둠이 동일체(同一體)입니다.     종교는 인간내면의 정화(淨化)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인 지혜(智慧)와 자비(慈悲)가 정치와 사회의 기본이념이 되어 생명존중(生命尊重)과 인류(人類)의 행복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모든 국민(國民)들이시여! 일상생활(日常生活)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話頭)를 챙기고 의심하면 몰록 ‘참나’를 깨닫게 됩니다. 참나 속에는 걸림 없는 대자유가 있고, 참나 속에는 참된 평화가 있고, 참나 속에는 변치 않는 정의가 있고, 참나 속에는 밝은 지혜가 있고, 참나 속에는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필경(畢竟)에 진리(眞理)의 한 마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萬古徽然何處覓(만고휘연하처멱)고. 頭頭物物現古風(두두물물현고풍)이로다. 만년토록 빛나는 것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 두두물물이 고풍의 진리를 드러냄이로다.      佛紀 2564年 1月 1日 元旦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2019-12-24 2,231
1704
불기2563(2019)년 기해년 동안거 종정예하 결제 법어
 己亥年 冬安居 宗正猊下 結制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子拄杖)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眼中無瞖休挑括하고 鏡中無塵不用磨어다. 信足出門行大路에 橫按拄杖唱山歌로다. 唱山歌兮 여! 山是山 水是水로다   눈 가운데 티끌 없으니 긁으려 하지 말고 거울 가운데 먼지 없으니 닦으려 하지 말라. 발을 디뎌 문을 나가 큰 길을 행함에 주장자를 횡으로 메고 산 노래를 부름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금일(今日)은 기해년 동안거 결제일이라. 산문(山門)을 잠그고 삼동결제(三冬結制)에 임하는 대중(大衆)들의 마음자세는 모든 반연(攀緣)과 갈등(葛藤)과 시비장단(是非長短)을 내려놓고 이번 결제기간 동안 반드시 화두(話頭)를 타파(打破)해서 대오견성 하겠다는 각오가 확고해야 함이라. 흉내만 내고 앉아 있는 반딧불 같은 신심(信心)으로는 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부처님 진리의 세계에 도저히 갈 수가 없음이라. 해마다 반복되는 결제와 해제에 빠지지 않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이 가상(嘉尙)하기는 하지만 부처님 법을 배우는 목적은 자기사(自己事)를 밝히는 데 있다. 이번 결제동안 부지런히 정진해서 각자의 화두를 타파하여 확철대오(廓撤大悟)하게 되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祖師)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그때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그대로 불국토(佛國土)가 되고, 팔만사천 번뇌가 그대로 반야지혜(般若智慧)가 되는 것이다.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 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여야 할 것이라. 중국 선종의 4대 조사(四代 祖師)이신 도신(道信) 선사 당시에 우두 법융(牛頭法融) 스님이 있었다. 우두 스님이 젊은 시절에 혼자서 정진(精進)을 하고 있노라면,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 와서 공부하는 자리에는 항상 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공양(供養) 때에는 천녀(天女)들이 공양을 지어 올렸다. 하루는 우두 스님이 도신 선사를 찾아뵙고 그간에 공부했던 것을 말씀드렸다. 도신 선사께서 그것을 들으시고는, "네가 그러한 삿된 소견(所見)을 가지고 어찌 불법(佛法)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느냐?" 하시며 직하(直下)에 방망이를 내리셨다. 무릇,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온갖 새가 꽃을 물어 나르고 천녀가 공양을 올렸으니 큰스님 중의 큰스님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불법의 근본진리를 아는 사람이 보건대는, 그것은 몇 푼어치 안 되는 살림살이이다. 우두 스님이 도신선사께 법 방망이를 맞고 분발(奮發)하여 다시 정진(精進)을 하니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았고, 천녀들도 공양을 지어 올리지 않았다. 이렇듯 대적삼매(大寂三昧)를 수용하면 모든 성인(聖人)들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고, 천룡팔부(千龍八部)며 귀신·선신(善神)들은 더더욱 볼 수 없으며, 온갖 새와 짐승들은 말할 것도 없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심오한 세계는 스승 없이 혼자서는 다 알았다 할 수 없기에 반드시 먼저 깨달은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점검받고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로다. 스승 없이, 점검을 받지 아니하고 알았다고 하는 사람이 요즈음도 부지기수(不知其數)인데, 그것은 다 외도(外道)의 소견(所見)에 집을 지어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 즉, 정법을 이은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점검받은 바 없이 깨달았다 하는 자는 천마이고 외도일 뿐이라고 못을 박아놓으신 것이로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어느 스님이 남전(南泉) 선사께서 여쭙기를, "우두 스님에게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치고 천녀가 공양을 지어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하니, 남전 선사께서는 "걸음걸음이 부처님의 계단을 올라간다." 라고 답하셨다. "도신 선사로부터 방망이를 맞은 후,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고 천녀들도 공양을 올리지 아니한 때는 어떻습니까?" "설령 온갖 새들과 천녀가 오지 않는 다해도 나의 도(道)에 비하면 실 한 오라기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 진리에도 깊고 얕은 세계가 있다. 그러니 여러 대중은 이러한 법문을 잘 새겨듣고서, 공부를 지어가다가 반짝 나타나는 하찮은 경계들을 가지고 살림으로 삼아 자칫 중도(中途)에 머무르게 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부처님의 정안(正眼)을 밝히는 데 근간(根幹)을 두고서 철저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산승(山僧)의 스승이신 향곡(香谷) 선사께서 우두 선사의 법문을 들어 산승에게 물으신 적이 있음이라.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하기 전에는 천동 천녀가 공양을 지어 올리고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이에 산승이 “삼삼(三三)은 구(九)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면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한 후로는 천동 천녀들이 공양을 지어오지 않고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도 아니한 때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이에 산승이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입니다.”라고 답하였다. 필경(畢竟)에 일구(一句) 어떠한 것인고! 橫按拄杖不顧人하고 卽入千峰萬峰去로다. 주장자를 횡으로 메고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천 봉과 만 봉 속으로 들어감이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2019-11-07 3,000
1703
제217회 중앙종회 정기회
    불기2563(2019)년 11월 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재적의원 81명 중 77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17회 중앙종회 정기회를 개원했습니다.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은 " 이번 정기회는 내년 종단의 살림을 정하는 예산 종회인 동시에 종헌종법 개정안과 각종 인사에 대한 선출 동의안을 다룬다"며 "산적한 의제가 의원 스님 한분 한분 앞에 놓여있는 만큼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교구 및 사찰에서 충당되는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원칙을 세우고 사부대중과 국민들에게 한걸음 다가가기 위한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등 종단 예산을 편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중앙종무기관 예산안에 대해 잘 살피고 지혜를 모아주시길 당부한다"고 말했습니다.
2019-11-05 2,470
1702
제36대 총무원장 원행스님 취임 1주년 기념식 및 자비나눔봉사
  불기2563(2019)년 10월 7일(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 36대 총무원장 원행스님 취임 1주년 기념식이 진행됐습니다. 이날 총무원장스님은 "사부대중 한 사람 한 사람 원력이 모이면 위기를 희망으로 만들수 있다" 며 "한국 불교와 종단을 위한 일이면 어떤 길이라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기 모인 한 분 한 분이 우리 종단의 소중한 자산이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모습이라 생각한다"며 "종단이 앞으로 목적 불사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겠지만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으로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과 호계원장 무상스님은 총무원장스님에게 "지난 1년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총무원장스님에게 고마운 말을 전하고 싶다"며 축하인사를 전했습니다. 기념식 이후 총무원장스님은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해 70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짜장면 공양을 대접했습니다. 이번 자비나눔은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총무원장스님의 생각에서 비롯됐습니다. 총무원장스님은 교역직스님들과 함께 어르신 한 분 한 분에게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라는 격려와 함께 배식을 직접 챙기셨습니다.    
2019-10-07 3,466
1701
제216회 중앙종회 임시회
  불기2563(2019)년 9월 19일(목) 오전 10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제216회 중앙종회 임시회'가 개원했습니다. 이번 임시회에는 재적의원 81명 중 74명이 참석했습니다. 또 중앙종회는 하루 전인 9월 18일에 입적하신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활안스님을 추모하며 입정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권과 법조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득에 따라 한쪽을 강변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형국"이라며 "이럴 때 일수록 불교가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화합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라며 "현재 종단은 안정 속에서 한국불교 미래를 준비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차근차근 수행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종단 불사 등 구체적 계획과 함께 백만원력 결집불사에 대한 적극적 동참을 강조했습니다. 개회식에 이어 첫 안건으로 교육원장 선출의 건을 상정하고 진우스님을 만장일치로 선출했습니다. 진우스님은 백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8년 보현사에서 사미계를 1998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습니다. 신흥사, 용흥사, 백양사 주지와 재심호계위원, 총무원 사서실장, 호법부장, 총무원장 권한대행, 불교신문사장을 역임했습니다.      
2019-09-19 2,937
1700
불기2563년 종정예하 기해년 하안거 해제 법어
宗正猊下 己亥年 夏安居 解制 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佛祖場中不展戈어늘 後人剛地起詨訛라. 道泰不傳天子令이요 時淸休唱太平歌로다.   부처님과 조사가 계시는 곳에는 다툼이 없거늘 뒷 사람들이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함이로다. 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영을 전할 것도 없음이요, 세상이 맑은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     금일은 어느 듯 석 달의 안거(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이라. 세월의 흐름이란 주야(晝夜)가 따로 없고 춘하추동의 계절(季節)에 관계없이 쉼 없이 흐르고 있음이라. 생사(生死)도 이와 같이 신속(迅速)하니 안거가 끝났다고 해서 화두 (話頭)없이 행각(行脚)에 나서거나, 각 수행처소에서 나태(懶怠)하거나 방일(放逸)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   부처님의 진리(眞理)를 배우는 제자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 더운 것과 추운 것 등 주변 환경에 구애(拘礙)받지 말고 오직 부처님의 은혜 (恩惠)와 시주(施主)의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 이로부터 신심(信心)과 발심(發心)이 생겨나고 여일(如一)한 정진을 할 수 있음이라.   이 공부는 요행(僥倖)으로 우연히 의심이 돈발(頓發)하고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신심과 발심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조석(朝夕)으로 부처님 전에 발원(發願)하면서 자신의 공부상태를 돌이켜보고 점검하여야 퇴굴(退屈)하지 않는 용맹심을 갖게 될 것이니 명심(銘心)하고 명심하여야 할 것이라.   수좌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기만 할 뿐이지, 알려주면 따르지 않는 이가 대다수(大多數)이다. 편하고 쉽게 정진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높은 산을 오르고자 하면서 몸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것’과 같음이라.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정진하고도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고 득력(得力)을 하지 못하는지 각자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하여 시냇물이 흐르듯이 끊어짐이 없도록 애를 쓰고 애를 써야 할 것이라.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 계셨다. 조주선사께서는 10세미만의 나이로 출가하여 남전 선사께 인사를 올리니, 남전선사께서는 누워 계시던 채로 인사를 받으며 물으셨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시는 부처님은 뵈었습니다." 남전 선사께서 누워 계시니 하는 말이다.   남전 선사께서 이 말에 놀라, 그제서야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沙彌)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스님, 정월이 대단히 추우니 스님께서는 귀하신 법체(法體) 유의하시옵소서."   그대로 아이 도인이 한 분 오신 것이다. 남전 선사께서 기특하게 여겨, 원주를 불러 이르셨다. "이 아이를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부처님의 이 견성법(見性法)은 한 번 확철히 깨달을 것 같으면, 몸을 바꾸어 와도 결코 매(昧)하지 않고, 항상 밝아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이다. 이 사미승이 바로 조주(趙州) 스님인데, 이렇듯 도(道)를 깨달은 바 없이 10세 미만인데도 다 알았던 것이다.   조주 스님은 여기에서 남전(南泉) 선사의 제자가 되어 다년간 모시면서 부처님의 진안목(眞眼目)을 갖추어 남전 선사의 법(法)을 이었다.   조주 선사 회상(會上)에서, 한 수좌(首座)가 석 달 동안 공부를 잘 해오다가 해제일(解制日)에 이르러 하직인사를 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이르셨다. "부처 있는 곳에서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아나라. 만약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 들어 말하지 말라." 이에 그 수좌가, "스님,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摘楊花摘楊花〕"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는데 어째서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고 하는가? 이러한 법문은 알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만일 누구라도 각고정진(刻苦精進)하여 이 법문의 뜻을 알아낸다면,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의(無量妙意)를 한꺼번에 다 알아서 하늘과 땅에 홀로 걸음하리라.   조주 선사의 '摘楊花摘楊花(적양화적양화)'를 알겠는가? 千里烏騅追不得(천리오추추부득)이라 천 리를 달리는 오추마라도 따라잡기 어렵느니라.     약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만공(滿空)선사라는 도인스님이 계셨는데, 수십 명 대중에게 항시 바른 수행을 지도하고 계셨음이라.   하루는 몇몇 수좌들과 마루에 앉아 한담(閑談)을 하고 있는 차제(此際)에 처마 끝에 새가 푸우울 날아가니 만공선사께서 물으셨다.   “저 새가 하루에 몇 리나 날아가는고?”   이 물음에 다른 수좌들은 답이 없었는데 보월(寶月)선사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명답을 했다. “촌보(寸步)도 처마를 여의지 아니했습니다.”   훗날 만공선사께서 열반에 드시니 산중회의에서 고봉(高峯)선사를 진리의 지도자인 조실(祖室)로 모시기로 하였다. 어느 결제일이 도래하여 대중이 고봉선사께 법문을 청하니, 고봉선사가 법문을 위해 일어나서 법상에 오르려 하였다. 바로 그때 금오(金烏)선사가 뒤를 따라가서 고봉선사의 장삼자락을 잡으면서 말했다.   “선사님,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장삼자락 놔라!”   고봉선사가 이렇게 말하니, 금오선사가 재차 물었다.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장삼자락 놔라!”   그 후로 40년 세월이 흘러 하루는 산승의 스승이신 향곡선사께서 산승에게 이 대문을 들어서 물으셨다.   “네가 만약 당시에 고봉선사였다면 금오선사가 장삼자락을 붙잡고 한 마디 이르고 오르라 할 때에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고?”   향곡선사의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산승은 벽력같이 ‘할(喝)’을 했다.   “억!” 하고 할을 하니, 향곡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그렇게 할을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을 다 멀게 하여가리라.” 할이 틀렸다는 말이다. 향곡선사의 이 같은 말씀에 산승이 바로 말씀 드렸다. “소승(小僧)의 허물입니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 멋지게 회향하셨다. “노승(老僧)의 허물이니라.” 자고(自古)로 법담(法談)은 이렇게 나가야 된다.   장삼자락을 붙잡고 ‘이르라’ 할 때에는 한 마디 척 해야 되는데, 산승이 즉시 ‘할’을 한 것은 묻는 상대의 안목(眼目)을 한 번 흔들어 놓는 것이다. 즉 묻는 사람이 알고 묻느냐 알지 못하고 묻느냐, 상대의 안목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는 바로 낙처(落處)를 아시고는 ‘네가 만약 그렇게 후학을 지도한다면 앞으로 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간다’고 바르게 점검하신 것이다.   이렇게 흑백을 척척 가릴 수 있어야 선지식이 되고 만 사람의 바른 지도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눈이 없다면 태산(太山)이 가리고 있어서 선지식 노릇을 할 수 없는 법이다.   향곡선사의 말씀에 산승이 ‘소승의 허물입니다.’ 하고 바로 잘못을 거두니, 향곡선사께서도 ‘노승의 허물이니라.’ 하고 바로 거두셨으니, 이 얼마나 멋지게 주고받은 진리의 문답인가! 이처럼 남방의 불법과 북방의 불법의 심천(深淺)이 크게 있는 것이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이 대문(大文)을 바로 보시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2019-08-14 3,144
1699
제215회 중앙종회 임시회
    불기2563(2019)년 6월 25일(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제215회 중앙종회 임시회가 개원되었습니다.     종회의장 범해스님은 개회사를 통해 "정부는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면서 사찰 소유의 땅을 마치 자신의 땅을 무료로 개방한듯 국민에게 알렸다"면서 "정부는 이제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는 정당한 보상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번 문화재위원 위촉에 있어 일부 분과에서 스님을 배제한 것에 대해서도 깊은 유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정부는 그동안 전통사찰의 가치를 국립공원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국민의 불편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방치해와 그로 인한 비난과 지탄은 오롯이 불교가 감내해야 했다"며 "정부가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조속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각종 정부 위원회에 대한 불교 인사 배제 등 정부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중앙종회는 이날 안건 논의에 앞서 지난 11일에 갑작스럽게 입적하신 중앙종회의원 종민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입정을 진행했습니다.          
2019-06-25 4,056
1698
대한불교조계종 종조 도의국사 다례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 불기2563(2019)년 6월 4일(월)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를 봉행했습니다.   이날 다례는 삼귀의례, 반야심경,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의 행장소개,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추모사,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의 종정예하 법어 대독, 종사영반,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저희 후학들은 조사님의 가르침과 역대 선사들의 말씀을 지혜의 빛으로 삼아 더욱 정진해나갈 것을 서원한다”며 “뭇 중생의 고통을 나누고 화합하고 혁신하며 한국불교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정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불교 백만원력결집의 공덕이 내일로 이어져 온 세상 국토와 중생의 삶을 밝힐 것"이라며 “오롯이 탁마하는 수행으로 부족함을 채워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음은 종정예하 법어 전문입니다.   宗祖 道義國師 茶禮齋 宗正法語   海東(해동)의 初祖(초조)이신 道義國師(도의국사)시여! 國師(국사)께서는 童眞(동진)으로 出家(출가)하여 華嚴(화엄)의 바다에서 노닐다가 行布法門(항포법문)에 未洽(미흡)하여 홀연히 마음 길을 찾아 나서 求法入唐(구법입당)하니 曹溪(조계)의 庭園(정원)이었도다.   조사선은 六祖(육조)로 始原(시원)하는 曹溪(조계)의 本源(본원)이요, 三界(삼계)에 獨步(독보)하는 格外(격외)의 本心(본심)이라. 國師(국사)께서 五敎(오교)를 超越(초월)하여 最上昇(최상승)인 曹溪(조계)의 心印法(심인법)을 서당조사로 부터 咐囑(부촉)받으시니 佛祖(불조)의 明珠(명주)를 취함이로다.   宗祖(종조)의 法香(법향)이 時節因緣(시절인연)을 쫓으시니, 晦迹韜名(회적도명)타가 無爲任運(무위임운)으로 진리의 本體(본체)를 드러냄이라. 이로 좇아 曹溪宗旨(조계종지)가 東西(동서)와 古今(고금)을 넘어서 綿綿不絶(면면부절)하여 금일에 이름이라.   宗祖(종조)께서 念願(염원)하신 禪風振作(선풍진작)과 和合圓融(화합원융)의 願力(원력)으로 四海五湖(사해오호)의 만 중생들이 東西(동서)도 없고 南北(남북)도 없으며, 生死(생사)도 없고 涅槃(열반)도 없는 眞理(진리)의 樂(낙)을 永得(영득)하게 하여지이다.   이제 嫡孫(적손)眞際(진제)가 祖殿(조전)에 헌향하고 法(법)의 供養(공양)을 올립니다. 道義祖師(도의조사)시여! 歆饗(흠향)하소서.   旱地紅蓮遮日月(한지홍련차일월)이요 無根樹長翠成陰(무근수장취성음)이로다. 가문 땅에 붉은 연꽃으로 일월을 가림이요, 뿌리 없는 나무가 성장하여, 음지를 이룸이로다.     불기 2563년 6월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獻茶            
2019-06-04 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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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년 종정예하 하안거 결제 법어
己亥年 宗正猊下 夏安居 結制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若論此事(약론차사)일진댄 千聖靈機不易親(천성영기불이친)이라. 龍生龍子莫因循(용생용자막인순)하라. 眞際奪得蓮城壁(진제탈득연성벽)하니 秦主相如摠喪身(진주상여총상신)이로다.   이 일을 논할 진댄 일천성인의 신령한 기틀도 쉽게 친하지 못한지라. 용이 용새끼를 낳아서 따른다고 이르지 말라. 진제가 연성의 보배구슬을 빼앗아 가지니 진나라 임금과 상여가 다 생명을 잃음이로다.   금일(今日)은 기해년 하안거 결제일이라. 여름과 겨울에 사부대중이 모여서 결제하는 수행전통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훌륭한 전통이다.   그러면 대중이 이렇게 함께 모여서 수행(修行)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느냐?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천이백 대중을 모아놓고 물으시기를, “대중이 얼마나 공부를 시켜 주느냐?" 하니, 아난 존자(阿難尊者)가 일어나서 말씀드렸다. “대중이 반을 시켜줍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네가 잘 알지 못했다. 대중이 전체를 시켜주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대중의 힘이라는 것은 무섭다. 게으름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중이 모여서 공부를 하게 되면, 그 가운데는 용맹(勇猛)과 신심(信心)을 내어 애쓰고 애쓰는 이나,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참구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러한 이들을 보고 각자가 자신을 반성하여, 다시 신심(信心)을 내고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를 다져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대중이 공부를 전체 다 시켜 준다고 하셨던 것이다.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은 다시금 결제가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금번 결제에는 반드시 대오견성하겠다는 용맹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결제에 임해야 할 것이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상생활(日常生活)하는 가운데 챙기고 의심해야 할 것이라. 그리하다 보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여 보는 것도 잊고 듣는 것도 잊고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져 있다가,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고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됨이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설산(雪山)에서 6년의 용맹정진 끝에 일념삼매에 들어 납월 팔일 새벽 별을 보고 대오견성(大悟見性)하셨음이라. 그 후에 대중들에게 49년간 가지가지의 방편법문을 하셨다. 대중에게 세 번 특별한 법문을 하신 것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한 번은 인천(人天) 백만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좌정(坐定)하고 있을 때,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부처님께 우담바라 꽃을 올리니 부처님께서 그 꽃을 받아서 아무 말 없이 대중에게 보이시니 오직 가섭 존자(迦葉尊者)만이 빙그레 웃으셨다.   또 한 번은, 법회일에 모든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서 다 운집(雲集)해 있었는데 맨 마지막으로 가섭 존자(迦葉尊者)가 들어오니,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기 위해서 법상에 좌정해 계시다가 자리의 반을 비켜 앉으셨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그 뜻을 알고는 선뜻 그 자리에 가서 앉으니, 부처님께서 가사를 같이 두르시고 대중에게 말없이 보이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일주일 후에, 교화(敎化)를 위해 수백 리 밖의 타방(他方)에 가 있던 가섭 존자가 돌아와, 부처님의 시신을 향하여 위요삼잡(圍繞三匝)하고 합장 예배를 올리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의 자부시여! 우리에게 항상 법문하시기를,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원래 없다. 하시더니, 이렇게 가신 것은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칠 푼 두께의 금관 속에서 두 발이 쑥 나왔다. 그래서 가섭 존자가 다시 합장 예배를 올리니, 두 발은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관이 그대로 중천(中天)에 떠올랐는데 이 때, 지혜삼매(智慧三昧)의 불이 일어나 허공중에서 화장(火葬)되어 팔곡사두의 사리가 나왔다.   이렇듯 당시에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오직 가섭 존자만이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를 알았기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마하 가섭에게 전해 주노라.” 하시어 가섭 존자에게 견성심인법(見性心印法)을 인가(認可)하여 전하셨다.   이 삼처전심의 법문을 알아야만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아는 것이고, 만 중생을 지도함에 있어서 눈을 멀게 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을 일생 따라 다니면서 모셨던 아난 존자(阿難尊者)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였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가섭 존자에게 가서 물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가사와 발우를 신표(信標)로 전했는데, 그 외에 따로 전하신 법이 있습니까?” 이에 가섭 존자가 “아난아” 하고 부르자, 아난이 “예” 하고 대답하니, “문전의 찰간(刹竿)을 거꾸러뜨려라.” 하고 가섭 존자가 한 마디 던졌다. 그러나 아난 존자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졸다가는 떨어져 죽게 되는 아주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3·7일간 용맹정진하여 그 도리를 깨달아서 가섭 존자의 법을 이어 받았다.   그 법이 제 3조인 상나화수 존자에 전해지고 등등상속(燈燈相續)하여 제 28조 달마 조사에 이르게 되었다.   달마 조사는 인도에서의 인연이 다함을 아시고 중국으로 건너와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을 하면서 시절인연을 기다렸다가 비로소 법을 전해줄 큰 그릇을 하나 만났는데, 그 분이 바로 혜가(慧可) 스님이다.   달마 대사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르셨다. “너희들이 이제까지 정진(精進)하여 증득(證得)한 바를 각자 말해 보아라.” 그러자 도부(道副) 스님이 일어나서 말씀드리기를, “제가 보는 바로는, 문자에도 국집(局執)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는 것으로 도(道)의 용(用)을 삼아야겠습니다.” 하니,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라고 점검하셨다. 다음에 총지(總持)라는 비구니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는 바로는 경희(慶喜)가 아촉불국(阿閦佛國)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려고 한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또, 도육(道育) 스님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空)한 것이고 오음(五陰)이 본래 있지 아니하니, 한 법도 마음에 둘 것이 없습니다.” 하니, 대사께서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라고 점검하셨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 스님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 하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심인법(心印法)을 혜가 스님에게 부촉(付囑)하시니 이조(二祖) 혜가가 되었다.   달마 조사는 “내가 동토(東土)에 와서 법을 전함으로 미혹(迷惑)됨을 풀어 주매, 마치 한 송이 연꽃에 다섯 송이가 핀 것 같은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라고 일화오엽(一花五葉)을 수기(受記)하셨다.   육조(六祖)인 혜능 선사는 나무꾼으로서 시장에서 탁발승이 금강경(金剛經)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 후 황매산의 오조(五祖) 홍인(弘忍) 대사 회상을 찾아가서 방앗간에서 행자(行者)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오조 대사께서 대중에게 이렇게 공포하였다. “모두 공부한 바 소견(所見)을 글로 지어 바쳐라. 만약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법(法)을 전해서 육대조(六代祖)로 봉(封)하리라.” 그러니 신수(神秀) 상좌가 게송을 벽에 붙여 놓았다. 오조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 게송대로 닦으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 하시며 향 피워 예배하게 하고 모두 외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 대중이 신수 상좌를 칭찬하며 그 게송을 외웠는데, 마침 한 사미승이 그 게송을 외우면서 노 행자(盧行者)가 방아를 찧고 있던 방앗간 앞을 지나갔다. 노 행자가 그 게송을 들어보고, 그것이 견성(見性)한 사람의 글이 아니니, “나에게도 한 게송이 있는데, 나는 글자를 모르니 나를 위해서 대신 좀 적어다오.” 하고 게송을 읊었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 이 게송(偈頌)이 신수 상좌 글 옆에 붙으니 대중이 모두 놀라 서로들 웅성거렸다. 오조 대사께서 그 소란스러움 때문에 나오셔서 그 게송을 보시게 되었다. 보시니 그것은 진리의 눈이 열린 이의 글이라, 대중이 시기하여 해칠 것을 염려하셔서 손수 신짝으로 지워 버리면서 말씀하셨다. “이것도 견성한 이의 글이 아니다.”다음날, 오조 대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찾아가서 쌀을 찧고 있는 혜능에게 물었다. “방아를 다 찧었느냐?” “방아는 다 찧었는데 택미(擇米)를 못했습니다.” 이에 오조 대사께서 방앗대를 세 번 치고 돌아가셨는데, 노 행자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대중이 다 잠든 삼경(三更)에 조실방으로 갔다. 오조 대사께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가사(袈娑)로 방문을 두르시고 금강경(金剛經)을 쭉 설해 내려가시는데,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어다(應無所住 而生其心)’ 하는 구절에 이르러서, 노 행자가 다시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오조대사께 말씀드리기를, 何期自性 本自淸淨(하기자성 본자청정) 어찌 제성품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本不生滅(하기자성 본불생멸) 어찌 제 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本自具足(하기자성 본자구족) 어찌 제 성품이 본래 구족함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本無動搖(하기자성 본무동요) 어찌 제 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能生萬法(하기자성 능생만법) 어찌 제 성품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까 하니, 오조께서 노 행자가 크게 깨달았음을 아시고 법(法)을 전하시니, 이 분이 바로 육조 혜능 선사이다. 혜능 선사에 이르러 중국선종인 조사선이 확립되었다. 그 심인선법(禪法)이 홑[單]으로 전해지다가 육조(六祖) 혜능 선사에 이르러서는 그 문하(門下)에서 크게 흥성(興盛)하여 많은 도인(道人) 제자들이 배출되어 천하를 덮었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춘 분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와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이다. 이후 청원 행사, 남악 회양 두 분 선사의 계파(系派)를 좇아서 선가(禪家)의 오종(五宗)이 벌어졌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서 종풍(宗風)을 떨치고 있는 선법(禪法)은, 육조 혜능 선사의 이 두 상수(上首)제자의 법(法)이 면면(綿綿)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하루는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선사를 친견(親見)하니, “그대는 어디서 오는고?” 하고 물으셨다. “숭산(崇山)에서 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하는 물음에 답을 못하고 돌아가서는 6년간 용맹정진 후에 답을 알아 와서,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닦아 증득하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닦아서 얻음은 없지 아니하나 더러운 데 물드는 일은 없습니다.” “더러운 데 물들지 아니함은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이다. 너도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잘 두호(斗護)하라.?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렇게 쉽다. 묻고 답하는 데 두미(頭尾)가 이렇게 척척 맞게 되어 있는 법이다.   또 청원 행사 스님이 육조 선사를 처음 참예(參詣)하여 예 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어떻게 해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니, 육조 대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닦아 익혀왔는고?” “성인(聖人)의 법(法)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던고?” “성인의 법도 오히려 행하지 않았거늘, 어찌 계급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육조 선사께서 매우 흡족히 여기시고 행사 스님을 제자로 봉(封)하셨던 것이다.   육조 선사께서 이렇게 인증(印證)하셔서,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안목(眼目)을 갖춘 이 두 제자를 상수제자(上首弟子)로 봉(封)하셨다. 청원 행사 스님은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리의 체성(體性)을 전하셨고, 남악 회양스님은 향하(向下)의 대용(大用)의 법을 전하셨다. 이 진리 자체에는 체(體)와 용(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체가 용이 되기도 하고 용이 체가 되기도 하여 둘이 항상 일체이다. 그래서 구경법(究竟法)을 깨달아 향상(向上)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向下)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이다.   이후에 행사 선사의 문하에서는 조동종(曹洞宗), 법안종(法眼宗), 운문종(雲門宗)이 벌어지고, 회양 선사 문하에서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벌어져 선가오종(禪家五宗)을 형성하며 중국 천하를 풍미(風靡)했던 것이다.   행사 선사 밑으로 덕산(德山) 선사로 쭉 이어져 내려왔고, 회양 선사 밑으로 임제(臨濟) 선사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은 육조 문하의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려 말엽, 불법(佛法)이 쇠퇴일로를 걷고 있을 당시에 태고 보우(太古普愚) 스님이 각고정진(刻苦精進) 끝에 선지(禪旨)를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도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전수받아 와서, 바른 진리의 법을 펴야겠다는 큰 원[大願]을 세우고, 중국의 원나라에 들어가서 제방(諸方) 선지식들을 참방(參訪)하셨던 것이다.   하루는 제 56조 법손인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를 참방(參訪)하여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고려국에서 스님의 높으신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러자 청공 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시기를, “우두 법융(牛頭法融) 스님이 사조 도신(四祖道信) 선사를 친견하기 전에는, 어찌하여 천녀(天女)들이 공양을 지어 올리고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왔는고?" 하니, 태고 보우 스님이 “부귀(富貴)는 만인이 부러워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한 후로는, 어찌하여 천녀들이 공양을 올리지도 않고, 새들도 꽃을 물어오지 아니했는고?" “청빈(淸貧)함은 모든 분들에게 소외되기 쉽습니다." 그러자 청공 선사께서 두 번째 물음을 던지셨다. “공겁(空劫) 전에 태고(太古)가 있었는가?" 우주의 모든 세계가 벌어지기 전이 공겁(空劫)인데, 그 공겁 전에도 그대가 있었는가 하고 물으신 것이다. “공겁의 세계가 태고로 좇아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청공 선사께서 주장자(拄杖子)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일생토록 이 주장자를 써도 다 쓰지 못한 고로, 이제 그대에게 부치노니 잘 받아 가져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기 바라노라." 이렇게 태고 보우 스님이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부촉(付囑)받으니 제57조 법손이 되어서 그 법맥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 후, 조선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면면(綿綿)히 이어지고, 조선 중기의 제 63조 청허 휴정 선사로 이어지고 그 법이 편양 언기 선사로 이어진 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풍전등화(風前燈火)로 그 법맥이 이어져 왔다.   근세인 한말(韓末)에 제 75조 경허(鏡虛) 선사에 이르러 선풍(禪風)을 크게 중흥하여 상수제자인 혜월(慧月) 스님에게로 법(法)을 전했다.   혜월 스님은 동진(童眞)으로 출가하여 경허 선사로 부터 화두를 타서 3년간 불철주야정진을 했다. 어느 날, 짚신 한 켤레를 다 삼아놓고서 잘 고르기 위해 신골을 치는데, ‘탁’하는 소리에 화두가 타파되었다. 그길로 경허 선사를 찾아가니, 경허 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셨다. “눈앞에 홀로 밝은 한 물건이 무엇인고?” 이에 혜명 스님이 동쪽에서 몇 걸음 걸어서 서쪽에 가서 서니, 경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떠한 것이 혜명(慧明)인가?”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이에 경허 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시며 인가하시고 ‘혜월(慧月)’이란 법호와 함께 상수제자(上首弟子)로 봉(封)하시고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다.   혜월 선사께서는 남방으로 내려와서 천진도인으로 선풍을 날리시고 운봉(雲峰) 선사에게 그 법을 전해주었다. 운봉 스님은 동진(童眞)으로 출가하여 경전과 율장을 모두 섭렵하였지만 마음에서 흡족함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방의 위대한 선지식이신 혜월 선사를 찾아가서 10년 동안 열심히 참구하였다.하지만 화두순일(話頭純一)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며, ‘화두일념이 현전하고 견성대오하여 종풍을 드날려 광도중생 하여지이다’ 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기도를 드렸다. 100일기도를 회향하고 백양사 운문암에서 불철주야 정진한 끝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을 이루어, 어느 날 새벽 선방문을 열고 나오니 온 산하대지가 밝은 달에 환하게 밝은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으셨다.   出門驀然寒徹骨(출문맥연한철골) 豁然消却胸滯物(활연소각흉체물) 霜風月夜客散後(상풍월야객산후) 彩樓獨在空山水(채루독재공산수)   문을 열고 나서자 갑작스레 찬 기운이 뼈골에 사무침에 가슴 속에 막혔던 물건 활연히 사라져 버렸네. 서릿바람 날리는 밤에 객들은 다 돌아갔는데 단청누각은 홀로 섰고 빈 산에는 흐르는 물소리만 요란하더라.   그리하여 그 당시 부산 선암사에 계시던 혜월 선사를 참예하여 여쭈었다.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는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하고 계십니까?” 이에 혜월 선사께서 말없이 앉아 보이시므로 스님이 냅다 한 대 치면서 또 여쭈었다. “산 용이 어찌 죽은 물에 잠겨 있습니까?” “그러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하시는 물음에, 성수 스님이 문득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니, 혜월 선사께서는 “아니다!” 하셨다. 이에 스님이 다시 응수를 하셨다. “스님, 기러기가 창문 앞을 날아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혜월 선사께서 크게 한바탕 웃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흡족해 하셨다. “내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 그리하여 을축년에 ‘운봉(雲峰)’이라는 법호와 함께 상수제자로 봉(封)하시고 전법게를 내리셨다.   운봉 선사께서는 이 후에도 제방의 선원을 다니면서 후학을 지도하며 선풍을 크게 날리시고 그 법이 향곡(香谷) 선사에게로 전해졌음이라.   향곡 선사는 16세 때 스님이었던 형님을 만나러 어머니와 함께 운봉 선사께서 조실로 계시는 천성산 내원사에 가게 되었다. 그 때 많은 스님들이 모여서 참선을 하는 광경을 보고는 모친만 집으로 되돌아가시게 하고는 운봉 선사로부터 화두를 타서 공양주를 2년간 하면서 정진하였다.   어느 봄날에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와 열어놓은 문이 ‘왈카닥’ 닫히는 소리에 마음의 경계가 있어 운봉 선사를 찾아갔다. 조실방을 들어서는 그 모습이 당당하니 선사께서 이미 가늠하시고 목침을 내밀어 놓고 말씀하셨다. “한 마디 일러라!” 향곡 선사가 즉시에 목침을 발로 차버리니,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일러라.” 하셨다. 향곡 선사가 말하였다. “천언만어(千言萬語)가 다 몽중설몽(夢中說夢)이라. 모든 불조(佛祖)가 나를 속였습니다.” 이에 운봉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시었다. 그리하여 신사년 8월에 ‘향곡(香谷)’이란 법호와 함께 상수제자로 봉하시고 전법게를 내리셨다.   그리하여 임제정맥의 법등을 상속 부촉하여 가시니, 즉 임제, 양기, 밀암, 석옥, 태고, 휴정, 환성, 율봉, 경허의 적전(嫡傳)인 것이다.   그 후 정해년 문경 봉암사에서 도반들과 정진하던 중, 殺盡死人方見活人(살진사인방견활인) 活盡死人方見死人(활진사인방견사인)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만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다하여야만 비로소 죽은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번 일러보라.” 하는 한 도반의 말에 삼칠일동안 침식을 잊고 일념삼매에 들었다가 홀연히 자신의 양손이 들리는 것을 보고 활연대오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忽見兩手全體活(홀견양수전체활) 三世佛祖眼中花(삼세불조안중화) 千經萬論是何物(천경만론시하물) 從此佛祖總喪身(종차불조총상신)   鳳巖一笑千古喜(봉암일소천고희) 曦陽數曲萬劫閑(희양수곡만겁한) 來年更有一輪月(내년갱유일륜월) 金風吹處鶴唳新(금풍취처학려신)   홀연히 두 손을 보니 전체가 드러났네. 삼세제불도 눈[眼] 속의 꽃이로다. 천경만론은 이 무슨 물건인가. 이로 좇아 불조가 모두 몸을 잃어버렸도다.   봉암사에 한 번 웃음은 천고의 기쁨이요, 희양산 굽이굽이 만겁에 한가롭도다. 내년에 다시 한 수레바퀴 밝은 달이 있어서 금풍(金風:가을바람)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구나.   이로써 우리나라에도 당송(唐宋) 시대 조사스님들의 향상구(向上句)를 제창하게 되었다. 이후로는천하 노화상(老和尙)의 혀끝에 속임을 입지 않고 임운등등(任運騰騰), 등등임운(騰騰任運)하며 제방에서 대사자후를 하시며 후학을 지도하시며 선풍을 크게 날렸음이라.   산승은 향곡 선사 회상에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받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정진하였다. 이 화두를 들고 2년여 동안 신고(辛苦)하였는데, 28세 되던 가을에 새벽에 예불 드리러 올라가다가 마당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일어나는 차제에 ‘향엄상수화’ 화두관문(關門)을 뚫어내었다. 비로서 동문서답(東問西答)하던 종전의 미(迷)함이 걷혀지고 진리의 세계에 문답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향곡 선사께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올렸다.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 三世諸佛總不識(삼세제불총불식) 一條拄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하누나.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으로 화해서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하는구나.   이에 향곡 선사께서 앞 구절은 묻지 아니하고 뒷 구절을 들어서 물음을 던지셨다. “용이 홀연히 금시조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산승이 답하기를,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고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屈節當胸退身三步(굴절당흉퇴신삼보)]” 하니, 향곡 선사께서는 “옳고, 옳다.” 하시며 크게 기뻐하셨다.   그러나 다른 모든 공안에는 걸림 없이 해결되었는데 오직 ‘일면불 월면불(一面佛月面佛)’ 공안에만 다시 막혔다. 그래서 또 다시 5년여 동안 전력(全力)을 쏟아 참구(參究)함으로써 해결되어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측)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 벽력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그 후 산승은 33세이던 정미년 하안거 해제 법회일에 묘관음사 법당에서 향곡 선사와 법거량(法擧量)이 있었다.   향곡 선사께서 법상에 올라 묵묵히 앉아계시는 차에 산승이 나와 여쭈었습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선사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이에 산승이 선사께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향곡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으로 가셨다.   다음 날 선사님을 찾아가서 다시 여쭈었다. “부처의 눈과 지혜의 눈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사고원래여인주)]” “오늘에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親見)하였습니다.” 이에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산승이 이렇게 답하자, 향곡 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시며, 임제정맥의 법등을 부촉하시고 ‘진제(眞際)’라는 법호와 함께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법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하여 산승에 이르게 되어 부처님 심인법 제 79세 법손이 된 것이다.   향곡 선사께서는 열반하시기 전에 제방(諸方)의 조실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 법문을 들어 물으러 다니셨다. 임제탁발화는 덕산탁발화와 더불어 유명한 공안(公案) 중의 하나이다. 역대의 선지식들이 이 법문에 대해서 평을 해놓은 분이 없었다. 제방을 돌아본 뒤 마지막으로 해운정사에 오셨다. 마당에서 선 채로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를 들어 물으셨다.   하루는 임제 선사께서 발우를 들고 탁발을 나가셨다. 어느 집 앞에 가서 대문을 두드리니 노파(老婆)가 문을 열고 나왔다. 탁발 나온 임제 선사를 보더니 노파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염치없는 중이로구나” 그 말을 들은 임제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한 푼도 시주하지 않고 염치없는 중이라 하는가.” 임제 선사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노파는 대문을 왈칵 닫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임제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절로 돌아오셨다. 향곡 선사께서 임제탁발화를 들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승이 답을 올렸다.   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러니 今日却被驢子搏(금일각피려자박)이로다. 삼십년간 말을 타고 희롱해왔더니 금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향곡 선사께서 “과연 나의 제자로다”라고 하며 기뻐하셨음이라. 법거량이란 이와 같이 전광석화(電光石火)로 문답이 오고가야 하는 것이다.   역대(歷代)의 모든 불조(佛祖)께서 끊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한 부처님 심인법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진 후, 오직 한국에서만 오늘날까지 그 법이 우리의 선불장(選佛場)에서 오롯하게 남아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 귀하고 귀한 부처님의 심인법을 다시 세계에 널리 선양(宣揚)해야 할 것이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2019-05-17 4,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