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종정예하 기해년 동안거 해제법어
기해년(己亥年) 동안거(冬安居) 종정예하(宗正猊下)
해제법어(解制法語)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大衆)에게 보이시고]
이 주장자(拄杖子) 진리를 알 것 같으면,
쌍차쌍용(雙遮雙用)을 자재(自在)하게 쓰고 천상인간(天上人間)에 홀로 걸음 하리라.
금일(今日)은 기해년(己亥年) 동안거 해제일(解制日)이라.
결제(結制)와 더불어 반철이 지나는 듯하드니, 어느새 해제일이 도래했음이라.
세월의 흐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속(加速)으로 느껴짐이라. 그러니 내일, 모레로 미루다가는 어느새 백발이 되고, 눈과 귀가 멀어 지므로 허송세월하지 말고 해제일인 지금 재발심과 대분심(大憤心)으로 정진(精進)의 끈을 놓지 말고 가일층 분발하여야 할 것이라.
부처님께서 2,600년 전 납월(臘月) 8일에 새벽 별을 보고 깨달으신 광대무변한 진리의 법은 감출 수도 없고 덮을 수도 없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미래제(未來際)가 다해도 변함이 없음이라.
또한 부처님께서 일념삼매에 들어서 보는 것도 잊고, 듣는 것도 잊은 상태에서 새벽 별을 보는 찰나에 깨달으신 과정도 변함없는 진리이다.
일념삼매(一念三昧)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결제의 대중은 각자가 삼동구순(三冬九旬)의 결제기간 동안 얼마나 화두일념(話頭一念)을 이루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
습관처럼 좌복(坐服)에 앉아서 번뇌망상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혼침(昏沈)에 빠져 있거나, 게으른 마음으로 방일(放逸)한다면 천불(千佛) 만조사(萬祖師)가 출현해서 깨달을 수 없음이라.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또 챙기고 의심하여만 진의심(眞疑心)이 발동 걸리게 됨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참구하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할지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道人)이라면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를 꼽을 수 있는데, 달마 대사의 스승이신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께서
"네 밑으로 7대(代)의 아손(兒孫)에 이르러서 한 망아지가 출현하여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이다." 라고 예언하셨다.
실제 마조 선사의 탁월한 안목(眼目)은 감히 어느 누구도 능가할 사람이 없다 하겠다.
위대한 마조 선사의 지도하에 84인의 도인 제자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백장스님과 남전스님 등 너 댓 분의 기량이 아주 출중(出衆)하였다.
백장(百丈) 스님이 마조 선사의 시자(侍者)일 때, 하루는 마조 선사를 모시고 들판을 지나가게 되었다.
큰 저수지에서 들오리들이 놀다가 인기척을 듣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마조 선사께서 백장 스님에게 물으셨다.
"저기 날아가는 것이 무엇인고?"
"들 오리 떼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는고?"
"산 너머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조 선사께서는 백장 스님의 코를 잡고 세게 비틀어 버리셨다.
"아얏!"
백장 스님이 아파서 소리를 지르니,
마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일찍이 날아갔으리오."하였다. 날아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백장 스님은 절로 돌아와서 모든 것을 잊고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었다.
"오리들이 어디로 날아갔느냐고 물으셔서 산 너머로 날아갔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조 선사께서는 왜 코를 비트셨을까?"
이 한 의심(疑心)에 빠져 있다가 일주일이 지나서 그 의심이 홀연히 해결되었다. 마조 선사께서 코를 비트신 뜻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곧 조실방(祖室房)으로 달려가서,
"스님, 어제까지는 코가 아프더니 오늘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이 말에 마조 선사께서 백장 선사의 눈이 열렸음을 아시고 운집종(雲集鍾)을 치게 하시니, 몇 백 명 되는 대중들이 모두 법당에 모였다.
대중들이 운집하고 마조 선사께서 법상에 좌정(坐定)해 계시는데, 백장 스님이 맨 마지막에 들어오더니 절하는 돗자리를 걷어서 어깨에 메고 법당을 나가 버렸다.
이에 마조 선사께서는 한 말씀도 설(說)하시지 않고 즉시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척척 통해야 되는 법이다. 마음 땅의 지혜가 열리면 이렇게 일거일동(一擧一動)의 낙처를 서로 아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마조 선사께서 법상(法床)에 앉아 계시던 차제(此際)에 백장 스님이 들어오니, 선사께서 법상 모서리에 걸어 놓은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다.
그러자 백장 스님이 여쭙기를,
"이를 바로 씁니까, 이를 여의고 씁니까?"
하니, 마조 선사께서 그 불자를 원래 걸려 있던 자리에다
도로 걸어 두셨다.
한동안 백장 스님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 마조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장차 대중을 위해서 어떻게 법을 설하려는고?"
그러자 이번에는 백장 스님이 걸려 있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마조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를 바로 씀인가, 여의고 씀인가?"
백장 스님이 아무 말 없이 불자를 도로 제자리에 걸자, 마조 선사께서
"억!"
하고 벽력같은 '일할(一喝)’을 하셨다.
이 '할'에 백장 스님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사흘 동안 귀가 먹었다가 깨어나서 마조 선사께서 '할'하신 뜻을 깨달았다.
그 법이 황벽스님으로 이어지고, 황벽스님에게서 임제스님으로 이어져서 임제종을 이루고, 중국의 당나라 천하를 풍미(風靡)하고 고려시대 때에 우리나라의 태고스님에게 전해져서 지금은 오직 한국에서만 오롯이 이어오고 있음이라.
마조선사의 또 다른 출중한 제자인 남전(南泉) 선사가 회상(會上)을 여니 각처에서 스님들과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하루는 한 노승(老僧)이 10세 미만의 동자승(童子僧)을 데리고 남전 선사를 친견하러 왔다. 노스님이 먼저 남전 선사를 친견하고 청(請)을 드리기를,
"제가 데려온 아이가 아주 영특한데, 저로서는 저 아이를 훌륭한 인재로 키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크신 법력(法力)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
하고는 물러 나와서 동자승을 조실 방으로 들여보냈다.
동자승이 인사를 올리니, 남전 선사께서는 누워 계시던 채로 인사를 받으며 물으셨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시는 부처님은 뵈었습니다."
남전 선사께서 누워 계시니 하는 말이다.
남전 선사께서 이 말에 놀라, 그제서야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沙彌)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스님, 정월이 대단히 추우니 스님께서는 귀하신 법체(法體) 유의하시옵소서."
그대로 아이 도인이 한 분 오신 것이다.
남전 선사께서 기특하게 여겨, 원주를 불러 이르셨다.
"이 아이를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부처님의 이 견성법(見性法)은 한 번 확철(廓撤)히 깨달을 것 같으면, 몸을 바꾸어 와도 결코 매(昧)하지 않고, 항상 밝아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이다.
이 사미승이 바로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는 조주스님인데, 이렇듯 도(道)를 깨달은 바 없이 10세 미만인데도 다 알았던 것이다.
조주 스님은 여기에서 남전(南泉) 선사의 제자가 되어 다년간 모시면서 부처님의 진안목(眞眼目)을 갖추어 남전 선사의 법(法)을 이었다.
그 후 조주 선사는 80세가 되도록 행각을 다닌 후에 회상(會上)을 여니, 한 수좌(首座)가 안거 석 달 동안 공부를 잘해오다가 해제일(解制日)에 이르러 하직 인사를 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이르셨다.
"부처 있는 곳에서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아나서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 들어 말하지 말라."
이에 그 수좌가,
"스님, 그러한즉 가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摘楊花摘楊花〕"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한즉 가지 않겠습니다." 하는데
어째서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고 하는가?
이러한 법문은 알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
만일 누구라도 각고정진(刻苦精進)하여 이 법문의 뜻을 알아낸다면,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의(無量妙意)를 한꺼번에 다 알아서 하늘과 땅에 홀로 걸음하리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적양화 적양화(摘楊花摘楊花)'를 알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스스로 답하시기를]
'적양화 적양화(摘楊花 摘楊花)여!
천리오추추부득(千里烏騅追不得)이라.'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땀이여!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오추마라도 따라잡기 어렵느니라.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