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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당 녹원 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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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당 녹원 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


종정예하 스님2.JPG

 

불기2561년 12월 27일(수) 오전11시 직지사에서 지난 23일(음력 11월 6일) 오후 6시 40분 직지사에서 법랍 77세, 세납 90세로 원적하신 영허당 녹원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행됐습니다.

 

원장스님2.JPG

 

 

종정예하 진제 스님을 비롯해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과 원로의원 스님, 총무원장 설정 스님과 중앙종무기관 부실장 스님,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호성 스님과 교구본사주지 스님, 중앙종회의장 원행 스님과 종회의원 스님, 전국비구니회장 육문 스님,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등 사부대중 5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영결식은 명종, 종단 어산어장 인묵스님의 영결법요로 시작됐으며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의 행장소개, 실천행을 강조했던 녹원대종사의 생전 영상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추도입정 후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영결사, 종정예하 진제 스님의 법어,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의 추도사, 중앙종회 의장 원행 스님과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호성 스님 그리고 중앙신도회 이기흥 회장의 조사 후 종단대표 및 각계대표의 헌향으로 영결식이 진행됐습니다.

    


직지사 문도대표 혜창스님.JPG

녹원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이후 직지사 연화대로 이운되었으며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 삼신불번, 오방불번, 법성게, 만장, 위패, 영정, 법주,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자순으로 행렬을 이었습니다. 거화의식 후 사부대중은 합장을 한 채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녹원 스님의 다비식을 봉행했습니다.

 

다비식 인묵스님 염불.JPG


이운행렬1.JPG

거화3.JPG


만장1.JPG

다음은 종정예하 진제 스님의 법어와 총무원장 스님의 영결사 전문입니다.

綠園大宗師 覺靈前에

 

 

靈山會上拈花兮<영산회상염화혜>여

三千刹海優曇開<삼천찰해우담개>로다.

林際德山全機大用<임제덕산전기대용>이여

屍山潙潙血海濤濤<시산위위혈해도도>로다.

 

영산회상의 꽃 한 송이를 듦이여

삼천대천세계에 우담바라가 만개함이요.

임제와 덕산의 전기대용이여

송장산이 높고 높아 피바다가 출렁거림이로다.

 

綠園大宗師(녹원대종사)께서 남기신 구십년의 星霜(성상)은 理事(이사)에 구분이 없고, 世間(세간)과 出世間(출세간)에 걸림이 없던 이시대의 선지식이었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童眞出家(동진출가) 하시어 禪(선)과 敎(교)와 宗務(종무)를 두루 섭렵하시고, 오직 종단 발전과 후학 佛事(불사)와 가람 불사를 평생 願力(원력)으로 삼으시고 一路邁進(일로매진)하였습니다.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의 소임동안 오직 부처님의 正法(정법)으로써 종단을 이끄시고, 지혜와 덕망으로써 원융화합을 이루어 조계종을 반석 위에 우뚝 세움에 모든 宗徒(종도)들의 龜鑑(귀감)이 되니 실로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이셨습니다.

 

 

畢竟에 綠園大宗師任 진면목을 아시겠습니까?

 

初冬寒風縮形相(초동한풍축형상)이요

庭前落葉隨風轉(정전낙엽수풍전)이로다.

 

초겨울 찬바람은 형상을 움츠리게 함이요

뜰 앞의 낙엽은 바람 따라 구름이로다.

 

불기 2561(2017)년 12월 27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분향

 


 

 

 

 

영 결 사

 

영허당(暎虛堂) 녹원대종사(綠園大宗師)님!

 

오늘 이곳 동국제일가람 직지사는 큰스님을 여읜 깊은 슬픔이 가득합니다. 현대 한국불교의 산증인이자 살아있는 역사라고 존경받던 스님께서 이렇듯 홀연히 세연을 접으시니 종문의 종장을 잃은 비통함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출가하신 이래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던 황악산은 깊은 적막으로 스님의 원적을 애도하고 제자들은 더 이상 스승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원 큰스님!

법보종찰인 해인사 아랫마을에서 해주 오씨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신 스님께서는 일찍이 전생부터 불법과 인연이 깊었다고 회상하시곤 했습니다. 절이 좋았고, 스님을 보면 환희심이 났으며, 해인사에서 처음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던 날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깊은 인연은 스님을 불가로 이끌었습니다. 직지사로 출가한 스님은 열네 살 되던 해에 탄옹(炭翁)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수행자는 언제나 하심(下心)하고 과묵(寡默)하라’라고 가르치셨던 은사스님으로부터 배운 무심으로 정진하는 자세와 검약, 철저한 시간관념은 스님의 일생동안 지켜 온 삶의 자세가 되었습니다.

 

직지사 강원에서 5년에 걸쳐 대교과를 마친 스님께서는 선학원과 직지사 천불선원에서 이미 두 번의 안거를 성만했습니다. 1948년 한암 대종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후 보문선원과 천불선원 등에서 정진을 계속해 7안거를 성만하였습니다. 그리고 1954년 직지사 재무 소임을 시작으로 이(理)와 사(事)가 원융한 수행자의 길로 드셨습니다.

 

스님을 조계종 역사의 산증인이라 일컫는 헌사에서 알 수 있듯이 스님께서 역임하신 종단의 직함은 이루 헤아리기 힘듭니다. 1959년 교구본사로 승격된 직지사의 초대 본사주지에 취임한 이래 일곱 차례에 걸쳐 연임을 하셨으며, 1962년 불교재건비상종회의 비구의원, 1964년부터 20여 년간 학교법인 능인학원의 감사와 이사, 이사장, 1968년부터 동국학원 이사를 역임하는 가운데 1985년부터 2002년 12월 19일까지는 네 차례에 걸쳐 이사장직을 수행하셨습니다. 아울러 1981년부터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시면서 종단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시기는 우리 종단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큰스님께서는 난마처럼 얽혀있던 그 난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했습니다. 직지사를 명실상부한 동국제일가람으로 다시 중창하셨는가 하면, 정화운동 과정에서 종회의원, 총무원장 등 중책을 도맡아 종단에 바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또한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동국대학교를 세계적인 불교학의 산실로 발돋움시킴은 물론 불교병원 건립에 매진하여 경주, 포항, 분당에 이어 일산에 지금의 동국대학교 병원을 개원하며 이 땅에 최초의 불교종합병원을 만드셨습니다. 스님의 걸음걸음마다 대가람이 건립되고, 인재가 배출되며, 갈등이 사라지고, 자비의 도량이 일어나니 가는 곳마다 연꽃이 만개하는 맑고 향기로운 일생이셨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영허당 녹원 큰스님!

스님께서는 평생을 교육불사와 가람불사에 매진하셨습니다. 부처님을 위하는 일이 불사이고, 부처의 종자인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이 불사이니 중생을 위한 일에는 차별이 없고, 불사를 통해 지혜의 종자를 심었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불사라고 하셨습니다. 90평생, 70여 성상을 지혜의 종자를 심는 일에 매진하셨으니 이제 보리의 열매가 곳곳마다 열릴 것입니다.

 

큰 형상은 본래부터 형체가 없고(大象本無形)

지극한 허공은 만유를 포함한다(至虛包萬有)고 하였습니다.

허공을 비추는 그 자리(暎虛)에서 이제 평안하십니까?

행보하시던 푸른 동산(綠園)이 이제 고요하니

그 자취를 쓸고, 그 뿌리가 드러내면(掃蹤滅迹除根帶)

불속의 연꽃이 곳곳에서 피어날 것입니다.(火裡蓮花處處開)

큰 원력으로 속히 사바로 돌아오시어 다시 한 번 지혜의 종자를 심어 주소서.

 

불기 2561(2017)년 12월 27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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