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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자료

직지 한글 및 영문 번역서 발간
2021-01-28 조회 197

직지(直指) 한글 및 영문 번역서 발간

 -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다. 



1.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 도서의 한글 및 영문번역서를 발간하였다. 이 번역서는 2005년 종단에서 처음 번역서를 발간한 바 있으며 2020년 감수와 재편집을 통해 올해 보다 완결된 자료로 발간되었다. 


2. 2027년은 직지가 인쇄된 지 650주년이 되는 해로, 종단은 직지의 한글번역, 영어번역에 이어, 올해 불어 번역서 발간 등을 통하여 선불교의 핵심과 세계최초의 금속인쇄술을 가진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세계에 알려나갈 계획이다.  


3. 직지는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스님이 엮은 책으로, 금속활자로 주조된 책의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며 줄여서「직지」라고 불린다. 백운스님은 스승 석옥선사로부터 전해받은「불조직지심체요절」의 간략한 내용에 더하여 과거 7불과 인도 28조사祖師, 중국 110선사禪師들의 방대한 게·송·찬·가·명·서·법어·문답 등을 수록하였다. 부처님과 조사들의 선의 요체에 대한 가르침 중 핵심을 발췌해서 수록한 이 책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지침서이자 선의 교과서라고도 불리운다.  

   

4.. 직지의 내용이 세계 최초 금속 활자의 역사로 남겨진 것은 백운스님이 입적한 뒤 1377년에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백운화상의 제자스님들에 의해서였다. 직지의 인쇄술은 독일 쿠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서 제작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적, 기술적 역량이 고스란히 담긴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직지는 원래 상, 하 두권이었으나 현재는 하권 1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5. 직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교포 박병선 여사가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1972년 세계도서박람회때 최초로 공개되었다. 구한말 초대 주한프랑스 공사였던 꼴랭드쁠랑시에 의해 수집, 이후 경매를 거쳐 앙리베베르를 통해 1950년경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현재까지 보관되어 오고 있다. 


*붙임 1. 백운스님 행장,  2. 도서 표지 이미지 사본 



대한불교조게종 사회부 국제팀장 윤영희 ☏2011-1823  jokb@buddhism.or.kr

*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2021년 1월 27일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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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스님 행장


백운 경한(白雲 景閑, 1298 ~ 1374)스님은 전라도 고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일정한 스승 없이 명산대찰을 유력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10여 년 머물렀다. 백운스님은 1351년(충정왕 3) 중국의 하무산 천호암으로 가서 임제종의 거장인 석옥 청공스님을 만나 법을 묻고, 같은 해에 지공스님을 알현하여 게송을 바쳤다. 1352년 다시 청공스님을 만나 조석으로 참문한 끝에 무심무념의 참뜻에 대한 마음 문이 열렸다. 청공스님과 헤어진 후 백운스님은 휴휴암에 머물다가 1352년 3월 귀국하였다.  

백운스님은 1353년 1월 단좌하여 영가대사(永嘉大師)의 『증도가(證道歌)』를 읽던 중, “망상을 버리려 하지도 말고 진실을 구하려 하지도 마라. 무명(無明)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요, 환화(幻化)의 공신(空身)이 곧 법신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그 말을 깊이 음미하였을 때 무심(無心)이 되어 깨달음이 열렸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전과 후가 아주 끊어져 조금도 의지할 곳이 없어 망연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백운스님은 1357년 보우의 천거로 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병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1365년에는 혜근의 천거로 다시 공민왕의 부름을 받아 해주 신광사(神光寺)의 주지가 되었다. 1368년 왕비 노국공주(魯國公主)의 원당인 개풍 흥성사(興聖寺)의 주지가 되었고, 다음 해인 1369년 김포 고산암(孤山庵)에서 은거하였다가, 다시 나옹스님의 추천으로 1370년 9월 혜근스님이 주관하였던 공부선(功夫選)의 시관직(試官職)을 맡았다. 1374년 여주 혜목산 취암사(鷲巖寺)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입적하였다.  

백운스님의 생애에서 살펴보면 말년의 몇 년을 제외하고 왕실과 밀접했던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은 보우스님과 혜근스님이 왕실과 밀접했던 것과 비교가 된다. 백운스님은 “천진하고 거짓이 없어 형상을 빌려 이름을 팔지 않았으니 참다운 경계에 노니는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로는 『백운화상 어록』 2권과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발견된 그의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명하다. <이후 생략>




                          <출처: 조계종사 고중세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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