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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종정예하 하안거 결제 법어
2021-05-26 조회 332


佛紀 2565年 辛丑年 夏安居 宗正猊下 結制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


 불기섬호수학심(不起纖毫修學心)하면

 무상광중상자재(無相光中常自在)라.

 무한낙화수류거(無限落花隨流去)하고

 석양춘색만강호(夕陽春色滿江湖)로다.


 털끝만큼이라도 닦아 배울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상(相)이 없는 빛 가운데 항상 자재(自在)함이라.

 무한한 낙화(落花)는 흐름을 따라가고

 해 저문 봄빛이 강호(江湖)에 가득하도다.


금일(今日)은 신축년(辛丑年) 하안거(夏安居) 결제일(結制日)입니다.

이렇게 여름과 겨울에 대중(大衆)들이 모여서 안거(安居)를 하는 것은 오직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혜명(慧命)을 잇고 광도중생(廣度衆生)하기 위함이라.

이 대도(大道)의 진리(眞理)는 한 번의 발심(發心)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해보는 것으로는 불가능함이라.

태산(泰山)을 넘는 기상(氣像)의 신심(信心)과 바다를 건너는 불퇴전

(不退轉)의 일일발심(日日發心)이 있어야 함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

(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해야 할 것이라.


이렇게 일념(一念)이 되도록 노력하다보면 문득 참의심이 돈발(頓發)

하여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해결되어 불조(佛祖)의 백천공안

(百千公案)을 한 꼬챙이에 꿰어 버리게 됨이라.


그러면 누가 어떤 물음을 던지더라도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척척 바른 답을 내놓게 되고, 제불제조(諸佛諸祖)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살림살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억만년(億萬年)이 다하도록 깨달은 삼매(三昧)의 낙(樂)을 누리고 염라대왕이 잡으러 온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잡아 갈수가 없음이로다.


금일 결제대중은 이 여름한철동안 모든 반연(攀緣)은 끊고 시비(是非)

는 내려놓고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옆도 보지 말고 오직 화두타파에 목표를 두고 선지식(善知識)으로 인가(認可)받을 때까지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혼신(渾身)의 힘으로 정진(精進)에 정진(精進)을 거듭해야 함이로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는 조주(趙州)선사(禪師)

께서 행각차(行脚次) 임제사(臨濟寺)를 방문하여 발을 씻고 있는 차에,

종문(宗門)의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인 임제(臨濟)선사께서 다가와 물으시기를,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하시니,


조주 선사께서 “마침 노승(老僧)이 발을 씻는 중이니라.”하고 대답하셨다.


이에 임제 선사께서 가만히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듣는 시늉을 하니, 조주 선사께서

“알면 바로 알 것이지, 되씹어 무엇 하려는고?”

하심에 임제 선사께서 팔을 흔들며 가버리시니,


조주 선사께서

“30년간 행각(行脚)하다가 금일(今日)에야 처음으로 주각(注脚)을 잘못 내렸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석일(昔日)에 임제(臨濟)선사께서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

하시는데, 어느 집 앞에 가서 대문을 똑똑 두드리니,

한 노파가 문을 열고 나와 임제 선사를 보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 염치없는 스님이로구나!”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푼의 시주도 하지 않고서 어째서 염치없는 스님이라 하는고?”하니, 노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칵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에서 임제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절로 돌아가셨다.


대중(大衆)은 알겠는가?

만약 임제 선사께서 노파(老婆)가 문을 닫을 적에 한 마디 이르셨다면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면 임제 선사는 번갯불보다도 빠르고 돌불보다도 빠른 기봉(機鋒)을

갖춘 위대한 도인(道人)이신데, 노파가 대문(大門)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것에는 왜 한 마디도 못 하고 걸음을 돌리셨느냐?


이‘임제탁발화(臨濟鉢盂話)’법문은‘덕산탁발화(德山鉢盂話)’법문과 더불어 가장 고준(高峻)한 공안(公案)입니다.

다른 공안(公案)에 대해서는 역대(歷代) 선지식(善知識)들의 송(頌)과 평창(評唱)이 있었지만 이 공안에 대해서는 천 이백년 동안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입을 댄 이가 없었다.


산승(山僧)의 스승이신 향곡(香谷)선사께서 당시에 제방(諸方)의 조실(祖室)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이‘임제 탁발화’법문을 가지고 물었지만 흡족한 답을 내놓으신 분이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해운정사로 오셨을 때 산승이 도량(道場)을 포행(布行)하고 있었다. 도량에 들어서자마자, 선 채로 대뜸‘임제탁발화’법문을 물으셨다.


“네가 만약 임제선사가 되었던들 무엇이라 한마디 할려는고?”

하시기에,

산승이 즉시“삼십년래농마기(三十年來弄馬騎)러니

금일각피려자박(今日却被驢子搏)입니다.”

“ 삼십년간 말을 타고 희롱해왔더니

금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었습니다.”

라고 답을 하자,

향곡선사께서 크게 웃으시면서 산승의 손을 잡고

“과연 나의 제자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가 향곡선사 열반(涅槃) 나흘 전의 일이다. 향곡선사께서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멋진 삶을 사시다가 가신 것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를 아시겠습니까?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수구투정투저지안(須具透頂透底之眼)하야

처처상봉선지식 (處處相逢善知識)하니

당기일구천고휘(當機一句千古輝 )로다.

조주 선사는 모름지기 위를 뚫고 아래를 뚫어보는

그러한 눈을 갖추어서 처처에 선지식을 상봉하니

기틀에 다다른 일구가 천고에 빛남이로다.


대중(大衆)은 임제 선사를 아시겠습니까?

임제전기격조고 (臨濟全機格調高)라

봉두유안변추호 (棒頭有眼辨秋毫)로다.

소제호토가풍준 (掃除狐兎家風峻)이요

변화어룡전화소 (變化魚龍電火燒)로다.


활인도살인검 (活人刀殺人劍)이여!

의천조설이취모 (倚天照雪利吹毛)로다.

일등령행자미별 (一等令行滋味別)이니

십분통처시수조 (十分痛處是誰遭)오

환회임제마(還會臨濟麽)아?

창천 창천 (蒼天 蒼天)이로다.


임제 선사의 온전한 기틀은 격조가 정말로 높고 높은지라,

주장자 머리 위에 눈이 있어서 가을철 털끝을 가림이로다.

야호와 토끼를 쓸어 없애니 가풍이 준걸함이요,

변화의 어룡을 번갯불에 사름이로다.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검이여!

하늘을 비껴 번쩍이니 날카로운 취모검이로다.

일등 령(令)을 행함은 그 맛이 특별함이니,

십분 아픈 곳을 이 누가 알리요.

도리어 임제 선사를 알겠는가?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함이로다.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