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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종정예하 신축년 하안거 해제 법어
佛紀 2565年 辛丑年 夏安居大韓佛敎曹溪宗 宗正 解制法語[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자개주장자(這箇拄杖子)는 삼세불조명근(三世佛祖命根)이며열성겸추(列聖鉗鎚)라. 환두이성(換斗移星)하고 경천동지(驚天動地)로다. 십마인(什麽人) 임마래(恁麽來)오? 시거간(試擧看)하라.이 주장자는삼세불조의 생명의 뿌리이며 열성의 불집게와 쇠망치라.북두를 잡아 별을 옮기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함이로다.어떤 사람이 이렇게 오는 것인고?시험에 드는 것을 보라.금일(今日)은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입니다.결제(結制)와 반살림을 지나 어언간(於焉間)에 해제일이 도래하니,이처럼 시간(時間)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신속(迅速)하니결제, 해제가 반복되는 일상(日常)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금일은 있음이나 내일은 알 수 없으니, 금생에 대오견성(大悟見性) 하지못한다면 어느 생(生)에 부처님 심인법(心印法)을 만난다고 기약(期約)하겠는가.이 공부는 결제해제에 불상관(不相關)하고 일생을 걸고 신명(身命)을 바쳐 “금생에 기필코 이 일을 해결하겠다”는 간절(懇切)한 각오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면 누구라도 진리(眞理)의 문에 들어갈 수 있음이라.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화두가 없는 이는“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이 화두를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여 일념(一念)이 지속되도록 정진(精進)하고 또 정진할지어다.진리의 문(門)을 활짝 여니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고,진리의 문(門)을 닫으니북쪽에는 백두산(白頭山)이요, 남쪽에는 한라산(漢拏山)이로다.지금 이 자리는 범부(凡夫)와 도인(道人)을 가리는 선불장(選佛場)이다.누구든지 꾸준히 갈고 닦아 자신의 본분사(本分事)를 뚜렷이 밝혀낼 것 같으면, 도인과 범부를 가리는 이 관문(關門)을 통과하여 불법 정안(正眼)을 인증(印證)받을 수 있을 것이다.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깨달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자서 스스로 '알았다'고하면 모두 사견(邪見)에 빠지고 만다.그러므로 먼저 깨달으신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점검(點檢)받아야만 그 진위(眞僞)를 가릴 수가 있는 법이다.부처님께서도 “스승 없이 깨달은 자(者)는 모두 천마(天魔)이고 외도(外道)이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인증(印證)의 가풍(家風)을 확고히 세워놓으신 것이다.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은 할(喝)로 유명한 임제(臨濟)선사와 봉(棒)으로 유명한 덕산(德山)선사로 상징(象徵)된다.그 덕산 선사의 제자로 암두(巖頭)선사와 설봉(雪峰)선사를 두었다.암두선사께서 불법사태(佛法沙汰)를 당하여 속복(俗服)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뱃사공을 하면서 사셨던 적이 있었다.양쪽 강둑에 각각 목판(木板)을 하나씩 걸어놓고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와서 그 목판을 치면, 초막에서 노를 잡고 춤을 추며 나와서 강을 건네주곤 하였다.어느 날 한 보살이 아이를 업고 와서 목판을 쳤다.암두 선사께서 “누구요?”하고 나와서 여느 때처럼 춤추며 와서 배를대니, 보살이 갑자기 아이의 멱살을 잡아 쳐들고서 물었다.“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이 아이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일러 보시오.”암두 선사께서는 말없이 노를 가지고 뱃전을 세 번 쳤다.그러자 보살은, “내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어도 지금까지 아는 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일곱 번째 아이를 낳고 만난 이 자도 역시 신통치 못하구나.”하면서 쳐들고 있던 아이를 강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그런 후로 암두 선사께서는 뱃사공 일을 걷어치워 버리셨다.이것이 가장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보살이 귀한 아이를 강에다 던져버린 까닭은 무엇이며,또 어떻게 답을 했어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그러면, 암두 선사께서 뱃전을 세 번 친 그 답이 잘못된 것인가?아이를 강물에 던진 보살은 어떠한 용심(用心)을 한 것인가?이러한 관문을 능히 통과해야만 과거장(科擧場)의 합격자로 인증(印證)을받아서 비로소 만인에게 불법의 진리를 펼 수 있는 사표(師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대중은 암두 선사와 보살을 알겠는가?[대중의 답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兩個惡賊相逢(양개악적상봉)에各設陷虎之機(각설함호지기)로다사나운 두 도적이 서로 만남에각각 범 잡는 함정을 베풂이로다.설봉(雪峰) 선사가 암자에 주석하고 계실 때에, 어떤 수좌 두 사람이 와서 예배하거늘, 설봉 선사가 보고 암자 문을 열고 나서서 말하되,“이것이 무엇인고?” 하니,수좌도 역시 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입니까?”함에, 설봉 선사가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그 수좌가 나중에 암두(巖頭) 선사에게 갔더니,암두 선사가 “어디에서 오는가?”하니,“영남(嶺南)에서 옵니다.”암두 선사가 묻되,“설봉 선사를 보았느냐?”하니,“설봉 선사의 처소를 다녀오는 길입니다.”암두 선사가 다시, “무어라 하던가?”함에,한 수좌가 앞의 이야기를 했더니,암두 선사가 묻되, “달리 무어라 하던가?”그 수좌가 대답하기를,“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하였다.암두 선사가 말하기를, “슬프도다! 내가 애초에 그를 향해 말후구(末後句)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사람이 설봉 노사를 어찌하지 못했으리라.”하였다.그 수좌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다시 이 이야기를 들어 이익(利益)을 청하니암두 선사가 말하되, “왜 진작 묻지 않았는가?”그 수좌가 대답하되, “용이(容易)하지 못했습니다.”하니,암두 선사가 말하기를,나와 설봉은 비록 삶[生]은 같이 했으나 죽음은 같이 하지 못함이로다.말후구를 알고자 할진댄, “다만 이 것이니라.”하였다.이 법은 천하 선지식들도 알기가 어렵다.산승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봉, 암두 두 분의 살림살이를 점검해서 제방(諸方)에 일임하노라.대중(大衆)은 설봉(雪峰)선사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간 것을 알겠는가? 설봉(雪峰)은 득편의시(得便宜時)에 실편의(失便宜)로다. 설봉 선사는 편의함을 얻은 때에 편의함을 잃었도다.암두(巖頭) 선사를 알겠는가? 암두 선사는 분명히 백염적(白拈賊)이로다. 비록 그러하나 말후구는 일렀으되, 다만 팔부(八部) 밖에 이르지 못함이로다.어떻게 일러야만 십부(十部)를 일러갈고?[양구(良久) 하신 후 이르시되,] 운재영두한불철(雲在嶺頭閑不撤) 유수간하태망생(流水澗下太忙生) 구름은 산마루에 한가로이 떠있는데 흐르는 물은 개울 아래에서 유달리도 바쁘더라.[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
2021-08-20 477
1739
제 17대, 28대 총무원장 태공당 월주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 봉행
불기 2565(2021)년 7월 26일(월), 금산사에서 지난 7월 22일 입적한 태공당 월주대종사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행되었습니다.이날 태공당 월주대종사 종단장 장의위원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대종사는 이 시대 진정한 보현보살이셨다”며 “1980년에는 광주로 달려가셨고, 최근엔 멀리 아프리카 지역까지 다녀오시기도 했으며 그 어느 누구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절, 경기도 광주에 나눔의집을 건립해 할머님들을 정성껏 돌봐주셨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종사께서 남기신 자취가 너무도 크고 무겁게 다가오는 오늘이다”며 은사 스님이자 한국불교 큰 스승인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속환사바를 발원했습니다.종정예하는 “대종사께서는 생사무상의 고통을 느끼고 출가를 단행하신 이래 수행과 포교, 중생구제가 불이(不異)함을 일생일관으로 실천하신 선지식이었다”며 “산중불교만이 아닌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중생교화를 위해 몸소 사바세계에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하며 동체대비 보현행원을 시현하였다”고 설하며 “대종사께서는 종단 안정과 발전을 위해 총무원장 소임을 맡아 종단 기틀을 마련했으며, 불교 역할이 편안과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늘지고 고통받는 중생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비행을 실천하신 종장이셨다”고 강조했습니다.월주 대종사의 49재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금산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8월 4일 2재, 8월 11일 3재 등에 이어 9월 8일 금산사에서 막재가 봉행됩니다.
2021-08-20 401
1738
대한불교조계종 종조 도의국사 다례
불기2565(2021)년 6월 11일(금)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를 봉행했습니다. 이날 다례는 삼귀의례, 반야심경,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의 행장소개,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추모사,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의 종정예하 법어 대독, 종사영반,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습니다.총무원장 원행스님 추모사를 통해  종조의 뜻에 따라 선과 교를 아우르는 통섭과 함께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 세계불교사의 주역으로 우뚝 자리했고 종조의 후학들은 선의 전통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그 뜻을 만방에 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다음은 종정예하 법어 전문입니다.無相으로 体를 삼음에,相에서 相을 여의었고,無念으로 宗을 삼음에,생각에서 생각이 없어졌으며,無住로 本을 삼음에,一切를 놓아서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났도다.海東(해동)의 初祖(초조)이신 道義國師(도의국사)시여!國師(국사)께서는 童眞(동진)으로 出家(출가)하여 華嚴(화엄)의 바다에서노닐다가 行布法門(항포법문)에 未洽(미흡)하여 홀연히 마음 길을 찾아나서 求法入唐(구법입당)하니 曹溪(조계)의 庭園(정원)이었습니다.祖師禪(조사선)은 六祖(육조)로 始原(시원)하는 曹溪(조계)의 本源(본원)이요,三界(삼계)에 獨步(독보)하는 格外(격외)의 本心(본심)이라.國師(국사)께서 五敎(오교)를 超越(초월)하여 最上昇(최상승)인 曹溪(조계)의 心印法(심인법)을 서당조사로 부터 咐囑(부촉)받으시니 佛祖(불조)의明珠(명주)를 취함이로다.宗祖(종조)의 法香(법향)이 時節因緣(시절인연)을 쫓으시니,晦迹韜名(회적도명)하다가 無爲任運(무위임운)으로 진리의 本體(본체)를 드러냄이라.이로 좇아 曹溪宗旨(조계종지)가 東西(동서)와 古今(고금)을 넘어서 海東(해동)의 今日(금일)에 이르럼이라.宗祖(종조)께서 念願(염원)하신 禪風振作(선풍진작)과 和合圓融(화합원융)의 願力(원력)으로 四海五湖(사해오호)의 만중생들이 갈등과 대립,분열과 투쟁이 사라져서 東西(동서)도 없고 南北(남북)도 없으며,生死(생사)도 없고 涅槃(열반)도 없는 眞理(진리)의 樂(낙)을 永得(영득)하게 하여지이다. 이제 嫡孫(적손)眞際(진제)가 祖殿(조전)에 헌향하고 法(법)의 供養(공양)을 올립니다.道義祖師(도의조사)시여!歆饗(흠향)하소서.來年更有新條在(내년갱유신조재)하야惱亂春風卒未休(뇌란춘풍졸미휴)로다내년에 다시 새가지가 있어 봄바람에 어지러이 쉬지 못함이로다. 佛紀 2565年 6月 11日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獻茶
2021-06-11 965
1737
불기 2565년 연등회 및 유네스코 등재 기념식
불기 2565년 5월 15일(토) 오후 7시,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코로나19의 종식을 발원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연등회를 회향했습니다.올해 연등법회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여 언택트 방식으로 대폭 축소하여 진행되었습니다.총무원장 원행스님은 개회사에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찬탄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사태를 통한 변화와 성찰을 주문했습니다. 총무원장 스님은 “불기2565년 연등회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첫해를 맞이하는 특별한 날”이라며 “연등회 안에 함께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자발적 참여 정신은 전 세계적인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아가기 위한 해법”이라고 밝혔습니다.특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선지식을 맞아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고, 국경이라는 경계는 의미가 없으며, 분별심으로 어느 것 하나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며 “내 주변의 이웃과 동행하는 일이 나의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자비의 일상적 실천이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 강조했습니다.연등법회 후에는 연등회의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이 유네스코 등재 인증서를 전달하며 축하하고,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영상 축하 메시지도 이어졌습니다.마지막으로 조계사 일주문에서 출발해 안국사거리와 공평사거리를 거쳐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연등행렬로 연등회는 원만회향하였습니다.
2021-05-26 652
1736
불기 2565년 종정예하 신축년 하안거 결제 법어
佛紀 2565年 辛丑年 夏安居 宗正猊下 結制法語[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 불기섬호수학심(不起纖毫修學心)하면 무상광중상자재(無相光中常自在)라. 무한낙화수류거(無限落花隨流去)하고 석양춘색만강호(夕陽春色滿江湖)로다. 털끝만큼이라도 닦아 배울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상(相)이 없는 빛 가운데 항상 자재(自在)함이라. 무한한 낙화(落花)는 흐름을 따라가고 해 저문 봄빛이 강호(江湖)에 가득하도다.금일(今日)은 신축년(辛丑年) 하안거(夏安居) 결제일(結制日)입니다.이렇게 여름과 겨울에 대중(大衆)들이 모여서 안거(安居)를 하는 것은 오직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혜명(慧命)을 잇고 광도중생(廣度衆生)하기 위함이라.이 대도(大道)의 진리(眞理)는 한 번의 발심(發心)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해보는 것으로는 불가능함이라.태산(泰山)을 넘는 기상(氣像)의 신심(信心)과 바다를 건너는 불퇴전(不退轉)의 일일발심(日日發心)이 있어야 함이라.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해야 할 것이라.이렇게 일념(一念)이 되도록 노력하다보면 문득 참의심이 돈발(頓發)하여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해결되어 불조(佛祖)의 백천공안(百千公案)을 한 꼬챙이에 꿰어 버리게 됨이라.그러면 누가 어떤 물음을 던지더라도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척척 바른 답을 내놓게 되고, 제불제조(諸佛諸祖)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살림살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이렇게 되면 억만년(億萬年)이 다하도록 깨달은 삼매(三昧)의 낙(樂)을 누리고 염라대왕이 잡으러 온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잡아 갈수가 없음이로다.금일 결제대중은 이 여름한철동안 모든 반연(攀緣)은 끊고 시비(是非)는 내려놓고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옆도 보지 말고 오직 화두타파에 목표를 두고 선지식(善知識)으로 인가(認可)받을 때까지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혼신(渾身)의 힘으로 정진(精進)에 정진(精進)을 거듭해야 함이로다.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는 조주(趙州)선사(禪師)께서 행각차(行脚次) 임제사(臨濟寺)를 방문하여 발을 씻고 있는 차에,종문(宗門)의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인 임제(臨濟)선사께서 다가와 물으시기를,“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하시니,조주 선사께서 “마침 노승(老僧)이 발을 씻는 중이니라.”하고 대답하셨다.이에 임제 선사께서 가만히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듣는 시늉을 하니, 조주 선사께서“알면 바로 알 것이지, 되씹어 무엇 하려는고?”하심에 임제 선사께서 팔을 흔들며 가버리시니,조주 선사께서“30년간 행각(行脚)하다가 금일(今日)에야 처음으로 주각(注脚)을 잘못 내렸다.”라고 말씀하셨다.또한 석일(昔日)에 임제(臨濟)선사께서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하시는데, 어느 집 앞에 가서 대문을 똑똑 두드리니,한 노파가 문을 열고 나와 임제 선사를 보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이 염치없는 스님이로구나!”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한 푼의 시주도 하지 않고서 어째서 염치없는 스님이라 하는고?”하니, 노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칵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여기에서 임제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절로 돌아가셨다.대중(大衆)은 알겠는가?만약 임제 선사께서 노파(老婆)가 문을 닫을 적에 한 마디 이르셨다면문전박대((門前薄待)를 면했을 것이다.그러면 임제 선사는 번갯불보다도 빠르고 돌불보다도 빠른 기봉(機鋒)을갖춘 위대한 도인(道人)이신데, 노파가 대문(大門)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것에는 왜 한 마디도 못 하고 걸음을 돌리셨느냐?이‘임제탁발화(臨濟鉢盂話)’법문은‘덕산탁발화(德山鉢盂話)’법문과 더불어 가장 고준(高峻)한 공안(公案)입니다.다른 공안(公案)에 대해서는 역대(歷代) 선지식(善知識)들의 송(頌)과 평창(評唱)이 있었지만 이 공안에 대해서는 천 이백년 동안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입을 댄 이가 없었다.산승(山僧)의 스승이신 향곡(香谷)선사께서 당시에 제방(諸方)의 조실(祖室)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이‘임제 탁발화’법문을 가지고 물었지만 흡족한 답을 내놓으신 분이 없었다고 한다.마지막으로 해운정사로 오셨을 때 산승이 도량(道場)을 포행(布行)하고 있었다. 도량에 들어서자마자, 선 채로 대뜸‘임제탁발화’법문을 물으셨다.“네가 만약 임제선사가 되었던들 무엇이라 한마디 할려는고?”하시기에,산승이 즉시“삼십년래농마기(三十年來弄馬騎)러니금일각피려자박(今日却被驢子搏)입니다.”“ 삼십년간 말을 타고 희롱해왔더니금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었습니다.”라고 답을 하자,향곡선사께서 크게 웃으시면서 산승의 손을 잡고“과연 나의 제자로다”라고 말씀하셨다.이 때가 향곡선사 열반(涅槃) 나흘 전의 일이다. 향곡선사께서는이렇게 마지막까지 멋진 삶을 사시다가 가신 것이다.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를 아시겠습니까?[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수구투정투저지안(須具透頂透底之眼)하야처처상봉선지식 (處處相逢善知識)하니당기일구천고휘(當機一句千古輝 )로다.조주 선사는 모름지기 위를 뚫고 아래를 뚫어보는그러한 눈을 갖추어서 처처에 선지식을 상봉하니기틀에 다다른 일구가 천고에 빛남이로다.대중(大衆)은 임제 선사를 아시겠습니까?임제전기격조고 (臨濟全機格調高)라봉두유안변추호 (棒頭有眼辨秋毫)로다.소제호토가풍준 (掃除狐兎家風峻)이요변화어룡전화소 (變化魚龍電火燒)로다.활인도살인검 (活人刀殺人劍)이여!의천조설이취모 (倚天照雪利吹毛)로다.일등령행자미별 (一等令行滋味別)이니십분통처시수조 (十分痛處是誰遭)오환회임제마(還會臨濟麽)아?창천 창천 (蒼天 蒼天)이로다.임제 선사의 온전한 기틀은 격조가 정말로 높고 높은지라,주장자 머리 위에 눈이 있어서 가을철 털끝을 가림이로다.야호와 토끼를 쓸어 없애니 가풍이 준걸함이요,변화의 어룡을 번갯불에 사름이로다.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검이여!하늘을 비껴 번쩍이니 날카로운 취모검이로다.일등 령(令)을 행함은 그 맛이 특별함이니,십분 아픈 곳을 이 누가 알리요.도리어 임제 선사를 알겠는가?아이고! 아이고! 곡을 함이로다.[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
2021-05-26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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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
불기2565(2021)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이 5월 19일(수) 오전10시,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되었습니다. 이번 봉축 법요식은 코로나19로 인해 방역 지침을 준수하여 봉행되었습니다.종정예하 진제 법원 대종사는 “자연과 인류는 상생하는 존재로서, 이 자연은 우리의 조상들이 건강하고 깨끗하게 보존하길 기원하며 물러준 것이며 또한 우리도 미래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이 코로나 질병으로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총무원장 원행스님은 봉축사에서 “여러 불전(佛典)을 살펴보면 눈앞에 금덩어리가 나타났지만, 지금까지 지고 왔던 삼 덩어리가 아까워 차마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담마기금(擔麻棄金)’ 표현이 등장한다”며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짊어진 삼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것, 내려놓으면 더 좋은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했습니다.또한 “비록 우리가 직면한 삶의 현실은 가볍지 않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부처님이 몸소 보여주신 삶의 길을 따라 가족·이웃과 함께 도반이 돼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이며,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관련, 미얀마 군부에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호소하며,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오늘도 세계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불길이 타오르는 가운데, 오랜 불교전통을 유지해 온 미얀마 사태는 우리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하고 있다”며 “미얀마 당국은 북방의 부처님오신날인 4월 초파일부터 남방의 부처님오신날인 4월 보름까지 모든 적대행위 중단을 선언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강조했습니다.이날 봉축법요식에는 사회 곳곳에서 불교 위상을 드높인 이들을 치하하는 불자대상 시상식도 함께 거행했습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수상자인 박권흠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장, 역사학자 한금순 씨,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에게 직접 상패와 상금을 수여하며 격려했습니다.이밖에도 이날 법요식은 △청의동자와 홍의동녀가 도량을 청정히 하고 장엄하는 도량결계(道場結界) △여섯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리는 육법공양(六法供養)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 북과 종을 울리는 명고(鳴鼓)와 명종(鳴鐘) △번뇌와 탐욕을 씻겨내는 관불(灌佛)의식 등이 진행됐습니다.
2021-05-19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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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총무원장스님 봉축사
봉 축 사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온 겨레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대광명이 충만하고,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온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감염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민과 세계인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협력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의료 체계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코로나 대응을 가장 잘 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조차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줄을 잇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희생이 아주 적은 선진의료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웃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좀 더 인내하고, 좀 더 신뢰하면서 팬데믹을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신종감염병과 지구의 기후 변화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구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금 덜 소비하고, 약간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인류를 살리는 길입니다. 탄소 중립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통해 생명의 건강한 순환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사부대중 여러분!부처님께서는 탐진치 삼독으로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이기적 욕망과 분노 질투는 나 자신과 우리 모두가 공동체 생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오늘도 세계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랜 불교전통을 유지해 온 미얀마 사태는 우리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인에게 호소합니다. 당신들의 무기가 나라 바깥을 향할 때 당신들은 군인이지만, 당신들의 무기가 국민을 향할 때는 당신들이 폭도가 됩니다.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당신들의 의무입니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 지혜이며 용기입니다. 미얀마 당국은 북방의 부처님오신날인 4월 초파일부터 남방의 부처님오신날인 4월 보름까지 모든 적대행위의 중단을 선언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갈등과 대립의 전환이 필요한 곳은 먼 외국만이 아닙니다. 한때나마 훈풍이 불었던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할 때 우리나라가 가장 안전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대화와 협력의 길이 열리도록 불교계가 힘을 모으겠습니다. 경전에 담마기금(擔麻棄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을 짊어지고 가던 사람이 금을 보았지만 지금까지 짊어진 삼이 아까워서 금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지혜와 자비 실천을 통해 평화와 행복을 이룩하는 것이 참 좋지만 욕망과 분노로 출렁이면서 살아온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짊어진 삼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것, 내려놓으면 더 좋은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삶의 현실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부처님이 몸소 보여주신 삶의 길을 따라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도반이 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지 못하면 여기가 고해이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여기가 불국토입니다. 코로나 19를 비롯한 모든 과제를 나 자신과 우리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디딤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의 봉축 법요식에 함께 해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온 누리에 충만하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65년 5월 1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벽산 원행
2021-05-12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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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종정예하 봉축 법어
佛紀 2565年 부처님오신날 宗正法語일과명주(一顆明珠)를 아는 이가 이 세상에 몇몇이나 될고.우리 부처님께서 일과명주를 뚜렷이 증득(證得)하여 도솔천에 계시다가 사바세계에 인연(因緣)이 도래하여 백상(白象)을 타고 마야부인의 태중(胎中)에 잉태(孕胎)하여 열달만에 우협(右脇)으로 출태(出胎)하심이라. 즉시 일곱 걸음 걸으신 후,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제일기(第一機)의 법(法)을 베푸시니,‘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높음이라’하심이여.(天上天下 唯我獨尊)고금(古今)을 통하여 이를 지나갈 성인(聖人)이 있으리오.거룩하고 거룩하십니다.모든 인류시여!합장예경(合掌禮敬)합시다.그러나 자세히 점검컨대, 다리아래 삼척(三尺)이로다.대중은 아시겠습니까?이렇게 독특한 안목(眼目)으로 진리(眞理)를 제시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 밝아 있는 것은 오직 불교(佛敎)의 진리(眞理)뿐이라.오늘은 부처님께서 대자대비(大慈大悲)로 무명(無明)의 사바세계에 지혜(智慧)의 광명(光明)으로 강탄(降誕)하신 날입니다.차별 없이 일체중생을 교화(敎化)하니 지옥문도 사라지고 유정(有情)들도 무정들도 법열(法悅)로 가득하니 시시(時時)가 호시(好時)이고, 일일(日日)이 환희가 충만한 날입니다.온 지구촌이 거년(去年)부터 코로나 질병으로 죽음의 공포와 고통 속에 빠져있습니다.이는‘인간우월적 사고(思考)’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당연한 결과입니다.자연과 인류(人類)는 상생(相生)하는 존재입니다.이 자연은 우리의 조상들이 건강하고 깨끗하게 보존하기를 기원(祈願)하며 물려준 것이며, 또한 우리도 미래의 후손에게 온전(穩全)하게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이 코로나 질병으로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계기(契機)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모든 인류시여!부처님 전에 등공양(燈供養)을 올려서 다생의 업(業)을 소멸하고 무량(無量)의 복덕을 받으소서.필경(畢竟)에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해서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로다한 주먹 버들가지 잡아 얻지 못해서봄바람에 옥난간에 걸어 둠이로다.佛紀 2565年 5月 19日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2021-05-12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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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대 총무원장 고산당 혜원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 봉행
불기 2565(2021)년 3월 27일(토), 쌍계사에서 지난 3월 23일 쌍계총림 방장실에서 입적한 고산당 혜원대종사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행되었습니다.영결식은 명정, 개식, 삼귀의, 영결법요, 헌향 헌다, 행장소개, 추도 입정,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추모가,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씀, 사홍서원, 발인, 다비식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조계종 종정예하 진제 법원 대종사는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 성진대종사가 대독한 법어를 통해 “대종사께서는 선과 경, 율을 두루 익히시고 수행 뿐만 아니라 총무원장으로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신 행정력을 겸비하신 선지식으로 후학들의 귀감이었다”면서 “대종사 각영 전에 운문 삼전어(三轉語) 진미(珍味)의 법공양을 올리오니 잘 받아 간직하시어 역겁(歷劫)에 매(昧)하지 않고 진리의 삼매락(三昧樂)을 누리소서”라고 애도했습니다.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영결사에서 “고산대종사는 선교율 삼장에 모두 투철한 안목을 갖추셨을 뿐만 아니라 종문의 의례종장이자 대가람을 창건하고 교화를 펼치셨으니 수행력을 수승하기 그지없으셨다”면서 “대종사께서 남겨주신 큰 염주는 저희들에게 수행과 전법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무언의 부촉(咐囑)일 것”이라고 추도했습니다.한편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49재는 3월29일 쌍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4월5일 2재(쌍계사), 12일 3재(석왕사), 19일 4재(혜원정사), 26일 5재(쌍계사), 5월3일 6재(연화사), 49재 막재는 5월10일 쌍계사에서 봉행됩니다.
2021-03-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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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종정예하 경자년 동안거 해제법어
庚子年 冬安居 曹溪宗 宗正 解制法語〔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太平治業無像<태평치업무상>이요 野老家風至淳<야노가풍지순>이라. 只管村歌社飮<지관촌가사음>하니 那知舜德堯仁<나지순덕요인>이리요. 태평세월에 업을 다스리는 데는 상이 없음이요, 들 늙은이들의 가풍은 지극히 순함이라. 다못 촌에서 노래하고 모여서 마시는지라, 이에 순임금의 덕과 요임금의 어짊을 어찌 아리요.금일(今日)은 경자년(庚子年) 동안거 해제일이라.결제대중이 삼동구순(三冬九旬) 동안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세상과 단절(斷絶)하면서 밤낮없이 용맹정진한 것은 가상(嘉尙)한 일이나,대장부의 활개를 치고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음이라.어째서 그러한가?중생(衆生)들은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반연(攀緣)과 습기(習氣)의 업(業)으로 인해 혼침과 망상으로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라.나고 죽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 한 번의 발심(發心)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한번 해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가지고 결제와 해제에 무관하게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화두를 챙길 때는 살얼음 위를 걷듯이, 시퍼런 칼날 위를 걷듯이 온 정신을 화두에 모아야만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고 몰록 일념삼매에 들어 일기일경(一機一境)상에 홀연히 대오견성(大悟見性)하게 됨이라.이는 새벽이 오면 반드시 날이 밝듯이 화두일념이 현전(現前)하여 지속되기만 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게 됨이라.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들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챙기고 의심해야 함이로다.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선지식(善知識) 가운데 으뜸가는 위대한 선지식이고, 종문(宗門)의 귀감(龜鑑)이신 덕산(德山)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대중을 지도하고 계셨다.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두었는데, 한 분은 암두(岩頭) 선사로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또 한 분은 훗날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신 설봉(雪峰) 선사였다. 이로 좇아 운문종(雲門宗)과 법안종(法眼宗)이 출현했다.하루는 덕산 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발우(鉢盂)를 들고 공양실로 걸어가셨다. 공양주인 설봉 스님이 이 모습을 보고 여쭙기를,“조실스님,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하니, 덕산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그 광경을 설봉 스님이 사형(師兄) 되는 암두 스님에게 말하니, 암두 스님이 듣고는 대뜸 말하기를,“덕산 노인이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자신의 스승이건만 단번에 이렇게 평가를 하니, 법을 논(論)함에 있어서는 스승과 제자를 따지지 않는 법이로다.“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 뜻이 무엇이며, 암두 스님은 어째서 덕산 선사가 말후구 진리를 알지 못했다 했는지 알아야 함이로다.암두 스님의 그 말이 총림에 분분하여 덕산 선사의 귀에 들어가니 암두 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네가 왜 내가 말후구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고?”하시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다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은밀히 속삭였다.그런 후로 뒷날 덕산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을 하시는데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하게 법문하셨다. 법문을 다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손을 잡고,“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법은 천하도인이라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합니다.” 하니, 덕산 선사는 과연 3년 후에 열반(涅槃)에 드셨다.암두 스님의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 대문(大文)을 아시겠습니까?대체 무엇이라고 속삭였기에 덕산 선사께서 종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한 법문을 하신 것입니까?‘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이 공안은 백천(百千) 공안 가운데 가장 알기가 어려운 법문이라. 천하 선지식도 바로 보기가 어려워 이 법문에 대해서 평(評)을 한 이가 거의 없음이로다. 그래서 이 공안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 대오견성을 했다고 인정함이로다.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도저히 혼자서는 다 알았다고 할 수 없기에 반드시 먼저 깨달은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점검받고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로다.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 즉, 정법(正法)을 이은 선지식으로 부터 점검받은 바 없이 혼자서 ‘깨달았다’ 하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일 뿐이라고 못을 박아놓으신 것이로다.이렇듯 대오견성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와 탁마(琢磨) 아래 철두철미한 신심과 태산을 무너뜨릴 기상(氣像)이 있어야 함이로다.그러면 금일 모든 결제대중은 이 덕산탁발화 법문을 아시겠습니까?〔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하니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이로다.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그 위대한 임제 선사도 백염적(白拈賊)이 되지 못함이로다.산승이 어째서 이와 같이 점검하였는지 대중은 잘 살필지어다.〔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佛紀 2565年 2月 26日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2021-02-26 1,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