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백만원력결집불사

종단소식

주요소식

전체1,748 목록
번호 제목 등록일 조회
1748
불기 2566(2022)년 종정예하 신년하례 new
불기2566(2022)년 종정예하 신년하례불기2566(2022)년 1월 11일(화) 오후 2시 팔공총림 동화사 통일대불전에서 종정예하 신년하례를 봉행했습니다.신년하례는 종정예하 진제스님의 헌향과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헌다, 통알의식으로 시작하였으며, 참석한 사부대중은 법상에 오른 종정예하를 향해 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종정예하 진제스님께서는 법어를 통해 "모두에게 희망찬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덕담했으며,새해에는 유마거사의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고, 중생이 나으면 보살도 낫는다."라는  대자대비 가르침으로종교와 이념, 남녀와 세대, 계층과 빈부를 초월한 보살심의 실천을 당부했습니다.이어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인사말씀을 통해 “그동안 종정예하께서 법력을 널리 그리고 깊게 드리워 주셨기에 우리 종단이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도 도량의 청정과 종도의 안녕을 성취할 수 있었다”며 “사람은 오고 감이 있으나 법은 여여하게 상주하니 종정예하께서 밝혀주신 투철한 법안은 길이길이 후대의 명성이요, 지남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이어 원행스님은 1월21일 예고된 전국승려대회를 언급하면서 “정부 여당의 종교편향과 불교왜곡으로 정법 수호의 결의가 전국적으로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며“전국승려대회와 불교도대회를 통해 정법 수호 의지를 천명하고 종교편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종정예하께서 세간과 출세간을 진동시키는 큰 사자후를 내려달라”고 청했습니다.또한 “소납을 비롯한 종단 소임자 모두는 종정예하와 원로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교단의 자존을 회복하고 종단의 화합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2022-01-12 274
1747
불기 2566(2022)년 총무원장 원행스님 임인년 신년사
신 년 사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귀한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이하여 국민과 불자여러분 모두에게 안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코로나19와 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인해일상으로의 회복은 더디기만 합니다. 마부위침(磨斧爲針)이라 하였습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듯이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일지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우리 국민들께서는 호랑이와도 같은 강직함과 인내심으로 지금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다름과 차별에 집착하는 갈등과 정쟁은 버리고 불이(不二)와 화쟁(和諍)의 정신으로 함께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합시다.  임인년 새해 우리 불교계는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민족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활용을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불기2566년 새해첫날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 행
2021-12-27 595
1746
불기 2566(2022)년 종정예하 진제법원 대종사 신년법어
壬寅年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新年法語佛祖場中不展戈 (불조장중불전과)後人剛地起嚆訛 (후인강지기효와)道泰不傳天子令 (도태불전천자령)時淸休唱太平歌 (시청휴창태평가)부처님과 조사가 계시는 곳에는 다툼이 없거늘후인이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함이로다.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법령을 전할 것도 없음이요,세상이 깨끗하고 깨끗한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임인년(壬寅年)의 새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전 세계에 가득한 코로나 질병과 지구촌의 갈등과 대립, 기아와 전쟁 등 칠흑(漆黑)의 무명(無明)을 몰아내고 국민의 가슴마다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원(祈願)합니다.부처님 가르침의 중심은 연기법(緣起法)입니다.즉 인연생기(因緣生起)입니다.“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입니다.모든 존재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성립하였다가 조건이 변함에 따라 사라지는 중중제망(重重帝網)의 연기세계입니다.전(全) 세계적으로 창궐(猖獗)한 코로나 질병의 공포와 고통은 인간의 자만심(自慢心)으로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훼손에 대한 자연의 대응(對應)입니다이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은 인간이 자연에 대한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나와 더불어 남이 존재하고,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며 인간과 더불어 자연이 공존(共存)하는 만유동일체(萬有同一體)입니다.새해에는 유마거사의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고, 중생이 나으면 보살도 낫는다.”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가르침으로 종교와 이념, 남녀와 세대, 계층과 빈부를 초월(超越)하여 모두가 보살심(菩薩心)을 가져 개개인이 행복(幸福)하고 세상이 화평(和平)하기를 기원합니다.모든 인류(人類)시여!나고 날 적마다 영원한 행복과 복락(福樂)을 누리고자 한다면,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話頭)를 일상생활(日常生活)하는 가운데 하루에도 천번만번 챙기고 의심하면몰록 ‘참나’를 깨닫게 됩니다.그리하면 만유의 본질을 바로 보는 안목(眼目)이 열리어나와 남이 둘이 아닌 동체대비의 비원(悲願)을 실천하여인류가 하나 되어 태평성대를 누립시다.佛紀 2566年 1月 1日 새 아침에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2021-12-27 444
1745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예하에 중봉 성파 대종사 추대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예하에 중봉 성파 대종사 추대-평생을 수행 정진하고 후학들을 보듬은 종단의 큰 스승-불기2565(2021)년 12월 13일 오후 대한불교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는 종정예하에 중봉 성파 대종사가 추대되었습니다. 조계종 종정추대위원회(원로의원,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는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대회의실에서 추대위원회를 개최하고 새 종정에 중봉 성파 대종사를 모셨습니다. 종정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진 종단의 정신적 지도자입니다. 이에 대한불교조계종의 모든 종도들은 종정께는 ‘스님’이라는 호칭대신 그 가르침에 따른다는 의미로 ‘예하 猊下’라 칭하고 있습니다.  종정 예하의 자격은 승납 45년 이상, 세납 70세 이상의 대종사 법계를 받은 수행과 법력이 높은 비구스님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정 예하는 종단의 법을 상징하기 때문에 종단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으나 종단의 주요 행사와 안거 등을 맞아 종도들에게 법어를 내리며 종단의 모든 스님들에게 계를 전하는 전계대화상의 위촉권을 가집니다. 또한 종헌 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의 사면, 경감, 복권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통합종단이 출범한 1962년 제1대 종정으로 효봉 대종사를 모셨습니다. 그후 청담 대종사(2대), 고암 대종사(3~4대), 서옹 대종사(5대), 성철 대종사(6~7대), 서암 대종사(8대), 월하 대종사(9대), 혜암 대종사(10대), 법전 대종사(11~12대), 진제 대종사(13~14대)가 뒤를 이어 종단의 법을 상징하는 최고 어른으로 역할을 해 왔습니다. 현 종정이신 진제 법원 대종사는 2011년 추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되었고 2016년 재추대되어 연임하신 후 오는 2022년 3월 25일까지 소임을 임하게 됩니다. 아울러 새롭게 추대되는 종정예하는 2022년 3월 26일 임기시작일 이후 종단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후학들을 지도하시게 됩니다. 새롭게 종정으로 추대된 중봉 성파대종사는 1960년 통도사에서 출가하여, 1970년 구족계를 수지하였고, 2014년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품서되었습니다. 또한, 봉암사 태고선원, 극락호국선원 등지에서 수행을 계속해 오셨으며,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원효학원 및 영축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2013년부터 조계종 원로의원과 2018년부터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으로 주석하고 계신 종단 최고의 선지식입니다.
2021-12-13 999
1744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당 성진대종사 영결식
불기 2565(2021)년 12월 10일, 용주사에서 지난 12월 6일 입적하신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당 성진대종사 영결식이 봉행되었습니다.이날 영결식에서는 종단과 정관계, 신도 등을 대표해 조계종 호계원장 보광, 화엄  주지 덕문,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과 이원욱 국회정각회장, 민학기 제 2교구신도회장이 조사를 통해 원경당 성진대종사의 입적을 추모했습니다.
2021-12-10 1,053
1743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기원법회
불기 2565(2021)년 11월 22일 오후 1시, 경주 열암곡에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기원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2021-11-23 423
1742
불기 2565(2021)년 종정예하 신축년 동안거 종정예하 결제 법어
辛丑年 冬安居 宗正猊下 結制法語[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向上向下自在用<향상향하자재용>하야사 天上人間無等匹<천상인간무등필>이로다.   향상구와 향하구의 진리를 자재하게 써야사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가 없음이로다.금일(今日)은 신축년(辛丑年) 동안거(冬安居) 결제일(結制日)입니다. 인생(人生)이 긴 것 같지만 흐르는 시냇물처럼 밤낮으로 쉼 없이 흘러감에 돌이켜 볼 때 그 빠르기가 쏜 화살처럼 신속(迅速)함이라.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이기에 사람의 몸을 받은 금생(今生)에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금일 결제에 임하는 대중(大衆)들은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각오로 화두(話頭)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운데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히, 화두의심이 뼈골에 사무치게 의심을 밀고 또 밀고 할 것 같으면 석 달 이내에 모두 다 견성(見性)할 수 있음이라.이 생각 저 생각으로 철저한 의심이 뼈골에 사무치지 않은 때문에 혼침(昏沈), 번뇌(煩惱), 망상(妄想)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허송세월(虛送歲月)만 하게 됨이라.  이 견성은 부처님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 선지식(善知識)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아서 바르게만 지어가면 일념(一念)이 지속(持續)되어 참의심이 시동이 걸리게 된다. 참의심이 한 달이고 일 년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됨이라. 그러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하를 종횡(縱橫)하게 됨이라.중국(中國)의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인 임제(臨濟)선사가 계셨다.임제 스님은 출가(出家)하여 경율(經律)을 익힌 후에 황벽(黃檗)선사 회상(會上)을 찾아가서, 3년 동안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고 참선정진에 전력(全力)을 다 쏟았다. 그 회상에 수백 명 대중(大衆)이 모여 수행생활을 했지만, 임제 스님과 같이 신심(信心)과 용맹(勇猛)으로 일거일동(一擧一動)에 화두와 씨름하는, 그러한 좋은 기틀을 가진 사람이 둘도 없었을 만큼 빈틈없이 정진(精進)하였다.당시에 입승(立繩)을 보던 목주(睦州) 스님이 임제 스님을 쭉 지켜보고는 큰 그릇으로 여겼다. 하루는 조실(祖室)인 황벽 선사를 찾아가서 말씀드리기를,“우리 회중(會中)에 장차 산마루에 큰 정자나무가 될 만한 인물이 있으니 조실 스님께서 자비로 제접(提接)하여 주십시오.”“내가 벌써 알고 있네.”황벽 선사께서는 이미 큰 법기(法器)가 하나 와서 진실하게 공부 해나가고 있는 것을 간파(看破)하고 계셨던 것이다.“오늘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 그 수좌(首座)를 보낼 터이니 잘 지도하여 주십시오.”목주 스님은 황벽 선사께 이렇게 청을 드려놓고, 임제 스님을 찾아가서“그대가 지금까지 열심히 참구(參究)하여 왔으니 이제는 조실 스님께 가서 한번 여쭈어 보게” 하니, 임제 스님이 물었다.“무엇을 여쭈어야 합니까?”“불법(佛法)의 가장 긴요(緊要)한 뜻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게.”임제 스님은 목주 스님이 시키는 대로 조실(祖室)방에 찾아가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서 여쭈었다.“스님, 어떠한 것이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벽 선사께서는 주장자(拄杖子)로 이십방(棒)을 후려 갈기셨다.임제 스님이 겨우 몸을 이끌고 나와 간병실에서 쉬고 있으니, 목주 스님이 찾아왔다.“조실스님을 친견(親見)했던가?”“예,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여쭈었다가 방망이만 흠씬 맞아 전신이 다 부서진 것 같습니다.”“이 대도(大道)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신명(身命)을 내던져야 하네. 설사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만 쪽이 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두어서는 안되네. 그러니 그대가 다시 한 번 큰 신심(信心)을 내어, 내일 아침에 조실 스님께 가서 종전과 같이 묻게.”이 경책에 힘입어 다음날, 임제 스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조실방에 들어갔다.“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이렇게 여쭈니,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이십방(棒)이 날아왔다.이번에도 목주 스님은 간병실에 누워 있는 임제 스님을 찾아와 사정얘기를 듣고 나서 거듭 힘주어 말했다.“이 법은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아는 선지식을 만나기도 어렵고 바른 지도를 받기도 어려운 것이니, 밤새 조리를 잘 하고 다시 용기와 신심을 가다듬어 내일 조실 스님을 찾아가게.”그 다음날도 임제 스님은 조실방에 들어갔다가 역시 종전과 같이 혹독한 방망이만 이십방(棒) 맞고 물러나오게 되었다.임제 스님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주 스님에게 말했다.“저는 아마도 이 곳에 인연(因緣)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처소(處所)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가는 것은 좋으나 조실 스님께 하직인사나 올리고 가게. 갈 곳을 일러주실 것이네.”임제 스님이 떠날 채비를 다 해놓고서 황벽 선사께 가서,“스님, 스님께서는 큰 자비로 저에게 법(法)방망이를 내려 주셨는데, 제가 업(業)이 지중하여 미혹(迷惑)한 까닭에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고는 하직인사를 올렸다.“어디로 가려는가?”“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그러면 바로 고안(高安) 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선사를 찾게. 틀림없이 자네를 잘 지도해 주실 것이네.” 그리하여 임제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고안 대우 선사 처소(處所)를 향해 수백 리 길을 걸어가는 동안 걸음걸음이 의심이었다.무슨 의심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났는가 하면,'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어째서 황벽 선사께서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번 다 이십방(棒)씩 육십방을 내리셨을까?'그대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서 걷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수백 리 길을 걸어갔다. 팔만 사천 모공에 온통 그 의심뿐이었던 것이다.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참선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념(一念)을 지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구하는 한생각이 간절하게 지속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業)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다.참학인(參學人)들이 10년,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몰록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어 부동일념(不動一念)이 되면,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홀연히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된다.임제 스님이 여러 달을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고안에 당도하여 대우(大愚) 선사를 참예하였다.“그대가 어디서 오는고?”“황벽 선사 회상(會上)에서 지내다가 옵니다.”“황벽 선사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던가?”“제가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세 번이나 여쭈었다가, 세 번 다 몽둥이만 흠씬 맞았습니다. 대체 저에게 무슨 허물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그러자 대우 선사께서 무릎을 치시면서, “황벽 선사께서 그대를 위해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가르치셨는데, 그대는 여기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하시며 '허허'웃으셨다.순간, 웃는 그 소리에 임제 스님은 홀연히 진리의 눈을 떴다. 그토록 의심하던 '황벽 육십 방(棒)'의 낙처(落處)를 알았던 것이다.“황벽의 불법(佛法)이 별 것 아니구나!”임제 스님이 불쑥 이렇게 말하자, 대우 선사께서 임제 스님의 멱살을 잡고는 다그치셨다.“이 철없는 오줌싸개야! 네가 무슨 도리를 알았기에, 조금 전에는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더니 이제 와서는 황벽의 불법(佛法)이 별 것 아니라고 하느냐?”그러자 임제 스님이 대우 선사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으니, 대우 선사께서 잡았던 멱살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니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네.”임제 스님이 다시 황벽 선사께 돌아와, 여러 해 동안 모시면서 탁마(琢磨)하여 대종사(大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선(禪) 문중에서는 납자(衲子)가 종사(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면,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부촉(付囑)받고 분가(分家)하여서 다른 곳에 회상을 연다. 이 때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부촉하는 표시로 주장자(拄杖子)나 불자(拂子)를 부치는데, 이 주장자와 불자는 모든 부처님의 살림의 정안(正眼)인 것이다.하루는 임제 스님이 하직인사를 올리니, 황벽 선사께서 시자(侍者)를 불러 이르셨다.“주장자와 불자를 가져오너라.”그러자 임제 스님이 즉시 응수(應酬)하기를, “시자야, 불〔火〕 가져오너라.”하였다.이렇듯 기틀을 쓰는 데 있어서 돌불 보다도 빠르고 번개보다도 빨랐다.그 후 화북(華北)에 머물면서 후학(後學)을 지도하셨는데, 누구든지 법을 물으려고 문에 들어서면 벽력(霹靂) 같은 '할(喝)'을 하셨다.시회대중(時會大衆)은 황벽, 대우, 임제, 세 분 도인을 알겠는가?  [대중이 말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同坑無異土 (동갱무이토)千里同風 (천리동풍)萬里知音 (만리지음)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이 없음이나천 리 밖에서 바람을 같이 하고만 리 밖에서 소리를 앎이로다.[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2021-11-18 521
1741
대종사 법계품서식
불기 2565(2021)년 10월 21일(목) 수행력과 덕망을 겸비한 스님들에게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품서식이 봉행되었습니다.이날 비구스님 66명과 비구니 스님 16명이 대종사와 명사에 품서되었습니다.종정 진제 대종사는 " 금일 대종사와 명사 법계품서에 임하는 용상고덕 스님들께 사부대중과 더불어 찬탄하고 만심환희한다"며 "대종사와 명사는 일평생 올곧은 수행으로 지혜와 덕성을 두루 갖춤이니, 이는 수행력과 지도력의 상징이요, 만고의 귀감"이라고 축하하셨습니다.이어 "작금의 인연은 임운자재의 한가로움을 누리심과 동시에 종강을 바로 세워 부처님 수행가풍을 다시금 부양해 정법구주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하셨습니다.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종도들의 사표이신 대종사와 명사들께서는 종강을 바로 세워 대중이 화합하고 조계종풍을 선양하는데 일심으로 정진해 오셨다"며 "세상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정법의 당간지주를 드높여 불조의 혜명이 면면히 계승될 수 있도록 후학들을 이끌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1-10-22 1,218
1740
불기 2565(2021)년 종정예하 신축년 종정예하 하안거 해제 법어
佛紀 2565年 辛丑年 夏安居大韓佛敎曹溪宗 宗正 解制法語[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자개주장자(這箇拄杖子)는 삼세불조명근(三世佛祖命根)이며열성겸추(列聖鉗鎚)라. 환두이성(換斗移星)하고 경천동지(驚天動地)로다. 십마인(什麽人) 임마래(恁麽來)오? 시거간(試擧看)하라.이 주장자는삼세불조의 생명의 뿌리이며 열성의 불집게와 쇠망치라.북두를 잡아 별을 옮기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함이로다.어떤 사람이 이렇게 오는 것인고?시험에 드는 것을 보라.금일(今日)은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입니다.결제(結制)와 반살림을 지나 어언간(於焉間)에 해제일이 도래하니,이처럼 시간(時間)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신속(迅速)하니결제, 해제가 반복되는 일상(日常)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금일은 있음이나 내일은 알 수 없으니, 금생에 대오견성(大悟見性) 하지못한다면 어느 생(生)에 부처님 심인법(心印法)을 만난다고 기약(期約)하겠는가.이 공부는 결제해제에 불상관(不相關)하고 일생을 걸고 신명(身命)을 바쳐 “금생에 기필코 이 일을 해결하겠다”는 간절(懇切)한 각오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면 누구라도 진리(眞理)의 문에 들어갈 수 있음이라.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화두가 없는 이는“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이 화두를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여 일념(一念)이 지속되도록 정진(精進)하고 또 정진할지어다.진리의 문(門)을 활짝 여니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고,진리의 문(門)을 닫으니북쪽에는 백두산(白頭山)이요, 남쪽에는 한라산(漢拏山)이로다.지금 이 자리는 범부(凡夫)와 도인(道人)을 가리는 선불장(選佛場)이다.누구든지 꾸준히 갈고 닦아 자신의 본분사(本分事)를 뚜렷이 밝혀낼 것 같으면, 도인과 범부를 가리는 이 관문(關門)을 통과하여 불법 정안(正眼)을 인증(印證)받을 수 있을 것이다.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깨달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자서 스스로 '알았다'고하면 모두 사견(邪見)에 빠지고 만다.그러므로 먼저 깨달으신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점검(點檢)받아야만 그 진위(眞僞)를 가릴 수가 있는 법이다.부처님께서도 “스승 없이 깨달은 자(者)는 모두 천마(天魔)이고 외도(外道)이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인증(印證)의 가풍(家風)을 확고히 세워놓으신 것이다.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은 할(喝)로 유명한 임제(臨濟)선사와 봉(棒)으로 유명한 덕산(德山)선사로 상징(象徵)된다.그 덕산 선사의 제자로 암두(巖頭)선사와 설봉(雪峰)선사를 두었다.암두선사께서 불법사태(佛法沙汰)를 당하여 속복(俗服)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뱃사공을 하면서 사셨던 적이 있었다.양쪽 강둑에 각각 목판(木板)을 하나씩 걸어놓고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와서 그 목판을 치면, 초막에서 노를 잡고 춤을 추며 나와서 강을 건네주곤 하였다.어느 날 한 보살이 아이를 업고 와서 목판을 쳤다.암두 선사께서 “누구요?”하고 나와서 여느 때처럼 춤추며 와서 배를대니, 보살이 갑자기 아이의 멱살을 잡아 쳐들고서 물었다.“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이 아이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일러 보시오.”암두 선사께서는 말없이 노를 가지고 뱃전을 세 번 쳤다.그러자 보살은, “내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어도 지금까지 아는 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일곱 번째 아이를 낳고 만난 이 자도 역시 신통치 못하구나.”하면서 쳐들고 있던 아이를 강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그런 후로 암두 선사께서는 뱃사공 일을 걷어치워 버리셨다.이것이 가장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보살이 귀한 아이를 강에다 던져버린 까닭은 무엇이며,또 어떻게 답을 했어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그러면, 암두 선사께서 뱃전을 세 번 친 그 답이 잘못된 것인가?아이를 강물에 던진 보살은 어떠한 용심(用心)을 한 것인가?이러한 관문을 능히 통과해야만 과거장(科擧場)의 합격자로 인증(印證)을받아서 비로소 만인에게 불법의 진리를 펼 수 있는 사표(師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대중은 암두 선사와 보살을 알겠는가?[대중의 답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兩個惡賊相逢(양개악적상봉)에各設陷虎之機(각설함호지기)로다사나운 두 도적이 서로 만남에각각 범 잡는 함정을 베풂이로다.설봉(雪峰) 선사가 암자에 주석하고 계실 때에, 어떤 수좌 두 사람이 와서 예배하거늘, 설봉 선사가 보고 암자 문을 열고 나서서 말하되,“이것이 무엇인고?” 하니,수좌도 역시 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입니까?”함에, 설봉 선사가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그 수좌가 나중에 암두(巖頭) 선사에게 갔더니,암두 선사가 “어디에서 오는가?”하니,“영남(嶺南)에서 옵니다.”암두 선사가 묻되,“설봉 선사를 보았느냐?”하니,“설봉 선사의 처소를 다녀오는 길입니다.”암두 선사가 다시, “무어라 하던가?”함에,한 수좌가 앞의 이야기를 했더니,암두 선사가 묻되, “달리 무어라 하던가?”그 수좌가 대답하기를,“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하였다.암두 선사가 말하기를, “슬프도다! 내가 애초에 그를 향해 말후구(末後句)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사람이 설봉 노사를 어찌하지 못했으리라.”하였다.그 수좌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다시 이 이야기를 들어 이익(利益)을 청하니암두 선사가 말하되, “왜 진작 묻지 않았는가?”그 수좌가 대답하되, “용이(容易)하지 못했습니다.”하니,암두 선사가 말하기를,나와 설봉은 비록 삶[生]은 같이 했으나 죽음은 같이 하지 못함이로다.말후구를 알고자 할진댄, “다만 이 것이니라.”하였다.이 법은 천하 선지식들도 알기가 어렵다.산승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봉, 암두 두 분의 살림살이를 점검해서 제방(諸方)에 일임하노라.대중(大衆)은 설봉(雪峰)선사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간 것을 알겠는가? 설봉(雪峰)은 득편의시(得便宜時)에 실편의(失便宜)로다. 설봉 선사는 편의함을 얻은 때에 편의함을 잃었도다.암두(巖頭) 선사를 알겠는가? 암두 선사는 분명히 백염적(白拈賊)이로다. 비록 그러하나 말후구는 일렀으되, 다만 팔부(八部) 밖에 이르지 못함이로다.어떻게 일러야만 십부(十部)를 일러갈고?[양구(良久) 하신 후 이르시되,] 운재영두한불철(雲在嶺頭閑不撤) 유수간하태망생(流水澗下太忙生) 구름은 산마루에 한가로이 떠있는데 흐르는 물은 개울 아래에서 유달리도 바쁘더라.[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
2021-08-20 1,143
1739
제 17대, 28대 총무원장 태공당 월주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 봉행
불기 2565(2021)년 7월 26일(월), 금산사에서 지난 7월 22일 입적한 태공당 월주대종사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행되었습니다.이날 태공당 월주대종사 종단장 장의위원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대종사는 이 시대 진정한 보현보살이셨다”며 “1980년에는 광주로 달려가셨고, 최근엔 멀리 아프리카 지역까지 다녀오시기도 했으며 그 어느 누구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절, 경기도 광주에 나눔의집을 건립해 할머님들을 정성껏 돌봐주셨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종사께서 남기신 자취가 너무도 크고 무겁게 다가오는 오늘이다”며 은사 스님이자 한국불교 큰 스승인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속환사바를 발원했습니다.종정예하는 “대종사께서는 생사무상의 고통을 느끼고 출가를 단행하신 이래 수행과 포교, 중생구제가 불이(不異)함을 일생일관으로 실천하신 선지식이었다”며 “산중불교만이 아닌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중생교화를 위해 몸소 사바세계에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하며 동체대비 보현행원을 시현하였다”고 설하며 “대종사께서는 종단 안정과 발전을 위해 총무원장 소임을 맡아 종단 기틀을 마련했으며, 불교 역할이 편안과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늘지고 고통받는 중생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비행을 실천하신 종장이셨다”고 강조했습니다.월주 대종사의 49재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금산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8월 4일 2재, 8월 11일 3재 등에 이어 9월 8일 금산사에서 막재가 봉행됩니다.
2021-08-20 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