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3-01-24 11:42
[폴러첸어록] 내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이 사진입니다
주창웅
998 03-01-24 11:42  
제목: [내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이 사진입니다]

*주:이 글은 월간조선 2002년 6월호에서 다룬 <북한인권운동가 노베르트 폴러첸>박사의 대담 내용의 후반부를 전재한 것입니다. 이번 북한 보트피플 사건을 깊이있게 이해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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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러첸의 열변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탈북자를 돕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유고의 밀로셰비치와 마찬가지로 金正日을 헤이그의 국제법정에 세우는 것입니다. 수백만 주민을 굶어죽게 한 혐의입니다. 그는 내가 알게 된 최초의 독재자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애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주범입니다. 물론 판사는 남북한 사람들이어야겠죠. 그리고 분단의 역사를 가진 독일인으로서 한반도에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우리가 저지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는 북한의 보통 사람은 좋아합니다. 어느 의미로는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그 사람들은 무척 순수합니다. 물질적 경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죠.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지하철이 어떻고 주차장이 어떻고 하는 데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굶주리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을 당하고 있을 북한의 동포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한의 학생들은 이스라엘의 인권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70㎞ 북쪽에 있는 동포들의 실상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판문점에서 나를 체포해서 수갑을 채운 미군병사는 나보고 「말리나 남아공화국, 아프리카 등 상황이 더 심각한 곳이 많은 데 왜 북한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여기 목표가 달성되면 그곳으로 가겠다고. 나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믿고 있습니다. 나는 평생 그 목표를 위해서 일할 것입니다』

그는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제임스 모즐리의 「비탄: 버마의 민주화와 진실을 위한 투쟁」이었다.


『젊은 친구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 런던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부끄럼을 타는 사람인데 미얀마에서 인권운동을 하다가 3년 동안 투옥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꾸밈이 없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미얀마 당국과 싸웠습니다. 나는 이름난 정치가나 명사는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대개는 실망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아닙니다. 요즘에도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기발한 방법을 충고해 주기도 합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미국에서 反戰운동을 이끌었던 제리 루빈 같은 사람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폭력이나 유혈수단 대신 희극적인 활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일종의 정치적 광대였습니다. 나도 단식투쟁이나 폭력, 또는 분신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보다는 루빈처럼 텔레비전에 극적인 영상으로 비칠 수 있는 활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폴러첸은 모습은 전형적인 아리안계 서양인이지만, 사고방식은 동양적이다. 일찍부터 동양의 불교나 문화를 동경했고, 1960년대 말 독일에 간 한국 간호사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인 간호사들은 그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까지도 뒤셀도르프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세례를 받은 개신교 신도이지만, 불교의 윤회사상 같은 것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고, 인간이 에너지(氣)의 존재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나는 의사와 과학자로서 에너지법칙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죽어도 그 에너지는 어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2500만 년 전에 사라진 공룡의 에너지가 지금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에너지도 지금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은 절대로 파괴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네 살 난 아들이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 마당에 묻은 일이 있었습니다. 4주일 후 그 무덤에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개미와 작은 벌레들이 그 주위에 몰려 열심히 무엇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 것을 보고 땅에 묻힌 개가 꽃을 먹여 살리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그 의미는 몰랐겠지만, 나는 그것이 일종의 연속된 에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권운동을 하다가 죽어도 그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일부러 죽을 생각은 없지만, 때로는 死後의 세계가 어떤 것일지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합니다. 아마 의사로서 사람들의 죽음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 생명의 탄생이나 똑같은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환자 중에는 정말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의 다음 단계로 옮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 인터뷰가 끝나면 미국에서 온 인권운동가들과 만나 저녁을 같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곧 워싱턴으로 가서 5월1일 열리는 미국 종교지도자대회에 참석하고, 그 다음날에는 美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이 끝나면 기자들을 만나 새로운 계획을 이야기하고, 곧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고 한다. 월드컵 취재를 위해서 오는 독일 텔레비전 기자들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정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힘의 원천은 북한 아이들 사진



『아침은 독일식으로 커피 두 잔 정도로 간단히 먹습니다. 점심 역시 돌아다니다가 김밥 같은 것으로 간단히 때웁니다. 여기저기서 초청을 받을 때도 많은데, 대개 그런 자리에는 음식이 많이 나오죠. 그런 음식을 많이 먹고 나면 온몸이 피곤해지고, 녹초가 되어 쉬지 않을 수 없게 되더군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초청한 곳에 가면 불고기가 나오고, 성찬이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정부관리나 당 간부들이 초청했을 경우입니다. 그들은 돈도 있고, 뭐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식사를 간소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북한에서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꺼냈다.



『내 힘의 원천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고,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돌아다닙니다. 지금 이 일이 나에게는 생활의 전부입니다. 아내와 이혼한 뒤 외롭기는 하지만 이 일에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생활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북한이 사생활입니다.

독일을 떠나서 탈북자 돕는 운동을 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보고 싶죠. 그러나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협박이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 前妻는 나에게 가능한 한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있으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前妻는 내가 독일에서도 너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번 베이징에서 탈북자 25명이 스페인대사관으로 들어가 망명한 사건이 있은 다음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 가서도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두 시간이나 열변을 토한 그의 목소리는 어느덧 피로의 기색이 나타났다. 그는 다른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일어나면서도 말을 계속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세계의 시선이 모이는 자리이니까요. 이미 경기 시작 이틀 전에 독일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북한에 관한 토크쇼에 나갈 계획이 있습니다』●


@@@추신: 또 이번에 보트피플을 지원한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여러 단체와 개인들 가운데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千基元) 전도사님의 스토리를 싣고자 하였으나 너무 분량이 많아 질 것 같아서 생략하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일요시사> 2002년 9월 10일 제347호를 참조하여 주십시요.

www.ilyosisa.co.kr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